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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여행 - 모두가 낯설고 유일한 세계에서
양주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평점 :
"여행은 나의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알려주었다. 책을 묶는 작업은 나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한지 일러주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글을 쓴다. 나의 미숙함이 누군가의 용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하늘이 흐린 탓이다. 베란다에 서서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본다. 눈을 뿌리던 하늘이 햇살을 땅에 내려놓는다. 아직은 뜨거운 여름이다. 베란다에 서면 손끝과 귓불로 뜨거움이 차오른다. 그동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그리움이고 아름다움이다. 때론 고독과 정적을 알게 해준다.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조용히 깊게 바라보는 외로움일 것이다. 무엇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가까이 당겨 앉아 향기를 맡게 된다.
외롭다고 느낄 때 오는 가슴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만 같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에게 외롭게 해 볼 만도 하다. 뚝 떨어져 나와 정처 없이 외롭고 쓸쓸하여 울먹여도 볼 일이다. 혼자서의 여행이 날들이 낡고 바래서 서로에게 무디어질 때 다시 한번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
빠른 것에 길들어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았던가. 길은 이어져 있었지만 계속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뒤돌아 보질 않았던 것은 아닐까. 여행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펼쳐 놓고 시간의 기억으로 들어가 본다. 기억이 꿈틀거리며 흔들리고 천천히 다가온다. 사진 속 시간에 그때의 외로움은 어딘지 사라지고 그리움만 남아 있다.
감각적인 사진에 이끌려 [ARTRAVEL] 몇 권을 친구에게서 받은 적이 있다. 사진도 사진이었지만 따뜻하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 한참이나 가슴에 남아 있었다. 양주안 작가의 '아주 사적인 여행'의 처음 접했을 때 그가 ARTRAVEL 소속 에디터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똑같은 삶은 세상에 없다. 나와 당신, 우리가 살아서 쓰는 모든 이야기는 위대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고유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서문 중에서
여행으로 삶을 변화시키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솔직함에 묻어있었다.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자신만의 이야기들. 시간에 저항하고 시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아름다운 고유의 기억들은 고달픈 현실에서 찾은 한순간의 행복을 영원히 묶어 놓고 싶은 바람같이 애잔하기까지 했다.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부여잡고 싶었다.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숱한 죽음 앞에서 이유도 모른 채 공허한 후회만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 그리움이 쌓여 삶을 짓누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몇 개의 기억으로 가는 길이 사라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주 작은 실마리들을 남겨놓을 뿐이다. - p256
화려한 여행담은 우리의 삶 도처에 흘러넘친다. 우리는 너무 화려한 이야기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과거의 그리움과 추억이 있는 그런 흑백사진 같은 소박함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양주안 작가가 혼자 떠난 할머니와 잠시 살았던 노동리의 작은 언덕 집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추억에 쓸쓸함이 베어드는 것은 세월에는 변화가 있고 죽음과 탄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순환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세월은 언제나 우리 인생의 끝을 생각하게 한다. 세월은 죽음이 기억의 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 여행의 기억은 그저 바람같이, 한때 왔다가 사라져 가는 덧없는 시간의 허상이라 했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순간의 신기루로 남을 여행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게 마련이다. 한때의 기억이 밀물처럼 다가와 삶의 흔적을 더듬게 한다. 우리는 낡은 사진의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그리운 그때를 그리워한다. 여행은 순간순간의 기억이다. 때론 우리를 그립게 하는 기억의 창고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