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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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빠가 죽었대요. 엄마는 원래 없고 내가 죽으면 누가 올까 해서요."

그동안 부모 없는 인생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껏 자신을 희생하신 부모님 덕에 어렵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는 부모가 당연한 전제처럼 있었다. 부모 때문에 행복하든 불행하든 말이다. 지금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부모라는 말을 쓰기 전에 망설이고 주춤하게 된다.

부모라는 말 뒤편에 감춰진 고아라는 말을 떠올린다. 유년 시절 그룹홈에서 등교하던 친구의 이상하리만큼 밝은 성격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녀석 나름의 아픔을 감추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부모의 죽음으로 혼자가 되어 버린 아이들은 어디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일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건강한 신생아의 경우 입양을 원하는 국내외의 가정에 보내진다. 그리고 3세 이상 18세 미만의 아이들 대부분이 학대, 이혼, 부모 사망, 수감 등의 이유로 각지의 고아원이나 그룹홈이라고 불리는 시설에서 자립할 때까지 공동으로 생활하게 된다. 18세가 되면 그룹홈에서 대부분 독립하여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부모 곁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완벽이 온다>는 학대받고 부모에게 버림받아 그룹홈에서 함께 생활했던 민서, 해서, 솔이 자립하게 되고 사회의 역경을 마주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더 가족다운 삶을 살아갈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상처받은 그녀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뿐일까? 그녀들이 대변하는 상처받은 이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아마도 주위의 관심과 애정이 아닐까.

애정을 필요로 하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애정과 의존,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이기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정서적인 요인들이 잘 채워지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되면 좋지 않은 환경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누군가 그 어머니 손을 잡아 주었는가와 그렇지 않았는가, 세상이 모두 등을 돌렸을 때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와 없었는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어색하게나마 누군가를 안아 주었다면, 그 사람의 생의 온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에 시작되어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민서와 해서, 솔 등 소설 속 인물들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 누구나 민서가 될 수 있고 민서에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민서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고 살아가기를, 그럴 수 있는 기화를 자주 만나기를 소망한다. P213 [작가의 말]

어떤 이유에서든 자식을 버린다는 그 무책임은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 짓을 저지른 부모가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자녀의 양육의 책임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만든 소중한 자식만큼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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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위로 - 카페, 계절과 삶의 리듬
정인한 지음 / 포르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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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손님 중에서 나에게 대뜸 부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카페 이름이 '좋아서 하는 카페'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런 손님들은 대개 나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유롭게 사는, 팔자 좋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카페 밖 풍경도 제법 그럴듯하다." - 프롤로그

따끈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놓이고 꼭 막혔던 가슴이 열린다. 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면 언제나 향이 좋은 커피가 그리워진다. 그런 커피향이 좋아서 언젠가 카페 창업을 꿈꿨지만 먼저 창업한 주위 친구와 지인의 폐점 소식에 현실의 벽을 실감하며 뒤돌아섰다. 그래서인지 카페를 본업으로 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하고 염려되는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스며든다.

율하 카페거리에서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정인한 작가의 <커피의 위로>는 담백한 문체로 카페의 희로애락을 풀어냈다. 10년 이상의 시간을 카페에 바치며 느낀 카페의 전반적인 노하우와 가게를 이어나가기 위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 그리고 바리스타 겸 사장으로서 겪게 되는 고충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여러 인연들과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상실감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새로 오는 이에게 가벼운 마음보다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더 좋지 싶다.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보다 우리의 태도를 납득시키고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카페의 내부자가 늘어갈수록 카페를 둘러싼 껍질 같은 것이 조금씩 얇아지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비한 것은 없어지고 어떻게 보면 본질인 장사꾼의 모습만 남게 될까 걱정된다." -p47

나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위해 보내는 시간은 갖고 있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아닌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긴 시간 집중하며 연마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긴 시간 동안 지킬 힘을 만들기 위해 섭취해야 할 영양소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다음에 오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상황과 사정에 따라 시작의 방법은 달라지겠지만, 첫 마음의 온도를 지키며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는 저자의 작은 바람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일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새로운 신입 사원을 맞이할 때도 온전히 진실 자체로 그 사람을 대하였던가, 상대의 배경이나 처지를 저울질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내 합리화가 우선시 된다. 누군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기를 소원할 뿐이다. 감성에 빠진 내가 때때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를 하더라도, 사회윤리와 관습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인간이니까,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독백하듯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도 돌아서서 그 말을 괜히 했어,라고 후회하지 않아도 될 사람, 옳고 그르다는 판단으로 나를 심판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 한 명만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다면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건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고,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되고, 그리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이때. 나잇살에 붙은 군살은 굳은살로 바뀌어 단단해지고 있다. 불안함은 초연함으로 바뀌고, 유약함은 유연함으로 바뀌어 간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며 감사이자 목표인 나이를 나는 지나고 있다. 여전히 꾸미지 않은 얼굴로, 가벼운 옷차림에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찾으면 다 있는 풍요. 엉키지 않고, 끊기지 않고 순조로이 돌아가는 일상. 용도에 맞는, 역할에 맞는 것들이 착하게 자리를 지켜 주는 안정감. 질릴 때쯤 새로운 것을 맛보게 해주는 설렘. 그런 여벌의 것들이 있다는 여유와 사치에 감사한다. 지금 이대로 조금의 여유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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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에이미 블룸 지음, 신혜빈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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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나의 죽음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과 지인의 죽음은 무엇보다 괴롭고 두렵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을 때마다 두려움은 더욱 불어났다. 두려움은 그런 것이다. 갑자기 중단되어야만 하는 사랑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존재들. 사랑의 대상을 상실한 우리를 짓누르는 슬픔을 몸과 마음으로 통과해내려 애쓰는 과정이 바로 애도일 것이다.

"남편은 죽기로 결심했고, 나는 그를 도왔다."

이 책은 사랑하는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삶을 떠나길 선택하려 하고 인정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 결정에 동의하고 그의 자유사를 도와주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말기 질병 또는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에게 조력 자살을 제공하는 스위스의 비영리 단체 디그니타스의 승인을 받은 뒤 취리히로 향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남편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채기 시작한 에이미. 무채색 셔츠만 입는 아니에게 튈 레이스가 달린 얼룩무늬 옷을 선물하고, 몇 년이나 참여했던 독서모임의 일정을 헷갈리고, 가까운 거리로 이사간 회원이 아주 멀리 이사갔다고 착각하기까지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신경외과에서 조밝성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의 문을 두드린다.

나이 듦에 따라 겪게 되는 소중한 이의 죽음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일이다.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될 죽음 앞에 무력한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잣대로 그 행위를 평가해야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세상이 주입한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모든 방식의 죽음을 부정하고 자유사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이들에게도 '일리'는 있다. 다만 그 이유가 당사자에게도 합당한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자유사를 선택한 사람은 삶의 부조리에 부딪쳤을 때, 그 정체를 고민하며 온몸으로 끌어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위로의 말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본인 외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죽음에 동의하며 그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존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의 옆에서 숨을 쉬고 그의 존재를 느끼는 이 감각을 나중에 잊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시선과 손을 그에게서 떼지 않는다. (나는 잊지 못한다. 다 일 분도.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리고 일어날 때마다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그는 내 손을 잡은 채 잠들고 그의 고개가 목베개에 살짝 떨어진다. 그의 숨소리가 바뀌고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그가 잠드는 소리를, 그의 깊고 고른 숨소리를, 지난 십오 년 가까이 그의 옆에 누워 듣던 소리를 듣는다. 그의 손을 잡는다. 여전히 그의 무게와 온기가 느껴진다. 그의 피부색이 불그스름한 빛에서 좀 더 창백한 분홍빛으로 바뀐다. 나는 그곳에 오래도록 앉아 기다린다. 이제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의 낯빛이 더 창백해지고 나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났음을 안다."

생에 대한 자기 결정권, 그 끝나지 않은 오랜 질문들 안에 숨겨진 문제들은 질병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 빈부 격차, 새로운 사회의 형태 등의 새로운 형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건 분명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자유사의 찬반양론은 첨예하게 맞서 있어 윤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국내에서도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으므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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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유전자 - 풍요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에드윈 게일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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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생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생물학 분야에서 진화를 고려하지 않고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사고와 신체는 자신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진화적 사고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생물의 탄생으로부터 흘러온 유전자의 사슬은 생존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존재다. 인간의 적응력은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 모두에 의해 강화된다. 옷, 불, 냉방을 사용해 가혹한 환경의 극단적인 온도를 누그러뜨리며, 새로운 농법과 혁신으로 식량난을 해결한다. 다른 동물들도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며 유연성을 발휘하지만, 문화에서 비롯되는 놀라운 유연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이 문화적 활동으로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지 못할 때는 자연 선택이 발생하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화적으로 유도된 자연선택은 빠르게 진행되고는 한다.

인간의 유전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유전자가 표현되는 각각의 형태를 '표현형'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덴마크의 식물학자 벨헬름 요한센이 제안한 것으로 이 책의 저자 에드윈 게일의 제시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난해할 수 있을 '표현형'을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만난 사람의 모든 특징을 말한다. 살아온 환경과 역정에 의해 변화된 유전자의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유명한 다윈의 말처럼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닌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다." 인간의 환경 적응의 유연성을 '표현형 가소성'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예부터 키가 작았다. 19세기에 남성 평균 신장은 161센티미터, 여성 평균 신장은 149센티미터였다. 육이오전쟁이 끝난 뒤 한반도는 자유 시장 경제와 억압적 전체주의 체제로 양분되었다. 195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삼팔선 이남에서든 이북에서든 같은 키로 성장했지만, 2002년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취학 전 아동은 남한에 비해 키가 13센티미터 작고 몸무게가 7킬로그램 가벼웠다. 북한 성인의 키는 달라지지 않은 반면에 남한 여성은 20.2센티미터 증가라는 세계 기록을 달성했으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기대 수명을 기록했다. 지도에 그은 선이 생물학적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p12~13

에드윈 게일은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인간이 변해온 과정과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존을 위한 기술의 발달로 기아로 허덕이던 과거를 뒤로한 채 많은 이들에게 풍부한 식량을 가져다주었고 식량 생산의 전 지구적인 산업화는 많은 후기 산업사회에 전례 없이 다채로운 식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당분과 지방으로 가득한 고밀도의 저렴한 고칼로리 음식을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비만율이 상승하고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이 급증한 '소비자 표현형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음식 섭취 적응과 오늘날의 풍족한 환경이 서로 어긋나는 것은 인류가 진화시켜 온 적응과 현재 환경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부조화들 중에서도 가장 쉽게 이해되는 예이다.

인간은 기생충과 질병 같은 자연선택으로부터 벗어나 눈 깜박할 순간에 진화하였다. 의료 기술의 발전과 생활 여건의 개선 등으로 질병에 대항하고 다른 동물에게서 관찰되지 않는 진화한 마음도 만들어냈다. 이것은 특정한 적응에 대한 자연선택을 발생시키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을 끊임없이 구축하며 자연선택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과정에서 서로 뒤얽히고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적 종이 아닌 나름의 문화를 지닌 인공적 존재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환경과 싸우며 적응해 왔다. 하지만 지금 인류의 미래는 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인류의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브랜드 박사는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류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 인류의 멸종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수정란을 가지고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간다. 인터스텔라의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이 되기 전에 인류는 인간만으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없음을 깨닫고 외계에서 새로운 환경을 찾기보다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 환경과 어울려 살 궁리를 하는 것이 파멸을 막을 첫걸음이지 않을까.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유연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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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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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인연설이란 게 있다. 한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다른 사람, 자연과 우주가 모두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깝고 알아보기 쉬운 인연이 있고, 만난 적 없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 이 모든 인연들이 모여 한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도, 앞으로 만날 사람도 모두 지금 나와 당신을 살아가게 해주는 고마운 인연이라는 것이다.

"나는 운명이니, 가야 할 길로 인도해 준다는 작은 신호니 그런 걸 믿지 않았어. 점쟁이의 말이나 미래를 점치는 타로도 믿지 않았고. 난 단순한 우연의 일치, 그 우연의 진실을 믿거든."

모든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앨리스와 그녀의 이웃에 살며 교차로를 그리는 것을 즐기는 화가 달드리의 이야기로 1950년대의 런던과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앨리스는 친구들과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다 점쟁이의 예언으로 평범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날 이후 매일 밤 낯설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언젠가부터 이웃 달드리(이든)와의 가까워진 앨리스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게 된 달드리의 도움으로 점쟁이가 예언한 운명을 찾아 이스탄불로 떠나게 된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그들은 가이드 칸을 만나 운명의 여정이 시작된다. 어느 날 우연히 들어선 골목길에서 악몽을 꿀 때마다 봤던 장소를 발견하게 되고 그동안 기억 속에서 지워졌었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4월 25일. 이스탄불에서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유력 인사들과 지식인, 신문기자, 의사, 교사 그리고 아르메니아 상인들까지 대거 검거되었어요. 그들 대부분은 재판 없이 처형되었고, 생존한 사람들은 아다나와 알레프로 끌려가서 강제 수용되었고요."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5년 4월 24일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이 강제추방 과정에서 엄청난 수가 목숨을 잃은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이 학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유대인 대량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비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확한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뒤로 미룬 채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 문제가 주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로맨스 소설 안에 감추어진 아픈 역사는 잊혀 가고 있던 비극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회색빛 런던의 평화로운 풍경과 아름다운 이스탄불 모습을 간직한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은 여러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매력적인 끌림으로 충만한 이스탄불을 배경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신비한 여정과 생각지도 못했던 진행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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