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유전자 - 풍요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에드윈 게일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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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생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생물학 분야에서 진화를 고려하지 않고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사고와 신체는 자신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진화적 사고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생물의 탄생으로부터 흘러온 유전자의 사슬은 생존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존재다. 인간의 적응력은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 모두에 의해 강화된다. 옷, 불, 냉방을 사용해 가혹한 환경의 극단적인 온도를 누그러뜨리며, 새로운 농법과 혁신으로 식량난을 해결한다. 다른 동물들도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며 유연성을 발휘하지만, 문화에서 비롯되는 놀라운 유연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이 문화적 활동으로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지 못할 때는 자연 선택이 발생하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화적으로 유도된 자연선택은 빠르게 진행되고는 한다.

인간의 유전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유전자가 표현되는 각각의 형태를 '표현형'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덴마크의 식물학자 벨헬름 요한센이 제안한 것으로 이 책의 저자 에드윈 게일의 제시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난해할 수 있을 '표현형'을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만난 사람의 모든 특징을 말한다. 살아온 환경과 역정에 의해 변화된 유전자의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유명한 다윈의 말처럼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닌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다." 인간의 환경 적응의 유연성을 '표현형 가소성'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예부터 키가 작았다. 19세기에 남성 평균 신장은 161센티미터, 여성 평균 신장은 149센티미터였다. 육이오전쟁이 끝난 뒤 한반도는 자유 시장 경제와 억압적 전체주의 체제로 양분되었다. 195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삼팔선 이남에서든 이북에서든 같은 키로 성장했지만, 2002년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취학 전 아동은 남한에 비해 키가 13센티미터 작고 몸무게가 7킬로그램 가벼웠다. 북한 성인의 키는 달라지지 않은 반면에 남한 여성은 20.2센티미터 증가라는 세계 기록을 달성했으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기대 수명을 기록했다. 지도에 그은 선이 생물학적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p12~13

에드윈 게일은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인간이 변해온 과정과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존을 위한 기술의 발달로 기아로 허덕이던 과거를 뒤로한 채 많은 이들에게 풍부한 식량을 가져다주었고 식량 생산의 전 지구적인 산업화는 많은 후기 산업사회에 전례 없이 다채로운 식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당분과 지방으로 가득한 고밀도의 저렴한 고칼로리 음식을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비만율이 상승하고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이 급증한 '소비자 표현형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음식 섭취 적응과 오늘날의 풍족한 환경이 서로 어긋나는 것은 인류가 진화시켜 온 적응과 현재 환경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부조화들 중에서도 가장 쉽게 이해되는 예이다.

인간은 기생충과 질병 같은 자연선택으로부터 벗어나 눈 깜박할 순간에 진화하였다. 의료 기술의 발전과 생활 여건의 개선 등으로 질병에 대항하고 다른 동물에게서 관찰되지 않는 진화한 마음도 만들어냈다. 이것은 특정한 적응에 대한 자연선택을 발생시키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을 끊임없이 구축하며 자연선택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과정에서 서로 뒤얽히고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적 종이 아닌 나름의 문화를 지닌 인공적 존재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환경과 싸우며 적응해 왔다. 하지만 지금 인류의 미래는 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인류의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브랜드 박사는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류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 인류의 멸종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수정란을 가지고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간다. 인터스텔라의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이 되기 전에 인류는 인간만으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없음을 깨닫고 외계에서 새로운 환경을 찾기보다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 환경과 어울려 살 궁리를 하는 것이 파멸을 막을 첫걸음이지 않을까.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유연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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