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
에이미 블룸 지음, 신혜빈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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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나의 죽음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과 지인의 죽음은 무엇보다 괴롭고 두렵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을 때마다 두려움은 더욱 불어났다. 두려움은 그런 것이다. 갑자기 중단되어야만 하는 사랑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존재들. 사랑의 대상을 상실한 우리를 짓누르는 슬픔을 몸과 마음으로 통과해내려 애쓰는 과정이 바로 애도일 것이다.

"남편은 죽기로 결심했고, 나는 그를 도왔다."

이 책은 사랑하는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삶을 떠나길 선택하려 하고 인정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 결정에 동의하고 그의 자유사를 도와주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말기 질병 또는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에게 조력 자살을 제공하는 스위스의 비영리 단체 디그니타스의 승인을 받은 뒤 취리히로 향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남편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채기 시작한 에이미. 무채색 셔츠만 입는 아니에게 튈 레이스가 달린 얼룩무늬 옷을 선물하고, 몇 년이나 참여했던 독서모임의 일정을 헷갈리고, 가까운 거리로 이사간 회원이 아주 멀리 이사갔다고 착각하기까지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신경외과에서 조밝성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의 문을 두드린다.

나이 듦에 따라 겪게 되는 소중한 이의 죽음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일이다.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될 죽음 앞에 무력한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잣대로 그 행위를 평가해야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세상이 주입한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모든 방식의 죽음을 부정하고 자유사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이들에게도 '일리'는 있다. 다만 그 이유가 당사자에게도 합당한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자유사를 선택한 사람은 삶의 부조리에 부딪쳤을 때, 그 정체를 고민하며 온몸으로 끌어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위로의 말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본인 외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죽음에 동의하며 그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존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의 옆에서 숨을 쉬고 그의 존재를 느끼는 이 감각을 나중에 잊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시선과 손을 그에게서 떼지 않는다. (나는 잊지 못한다. 다 일 분도.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리고 일어날 때마다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그는 내 손을 잡은 채 잠들고 그의 고개가 목베개에 살짝 떨어진다. 그의 숨소리가 바뀌고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그가 잠드는 소리를, 그의 깊고 고른 숨소리를, 지난 십오 년 가까이 그의 옆에 누워 듣던 소리를 듣는다. 그의 손을 잡는다. 여전히 그의 무게와 온기가 느껴진다. 그의 피부색이 불그스름한 빛에서 좀 더 창백한 분홍빛으로 바뀐다. 나는 그곳에 오래도록 앉아 기다린다. 이제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의 낯빛이 더 창백해지고 나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났음을 안다."

생에 대한 자기 결정권, 그 끝나지 않은 오랜 질문들 안에 숨겨진 문제들은 질병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 빈부 격차, 새로운 사회의 형태 등의 새로운 형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건 분명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자유사의 찬반양론은 첨예하게 맞서 있어 윤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국내에서도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으므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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