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량세태 속에 지켜낸 김정희와 이상적의 우정
알라딘 인문학스터디 3기 한국문화 편의 제1강은 박철상 선생님의 세한도에 관한 강의였습니다.
세한도를 그린 추사 김정희와 그것을 받게 된 우선 이상적의 관계, 김정희와 이상적의 역사적 위치 및 사상적 배경,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 스승인 옹방강과 제자인 김정희, 소동파와 옹방강 그리고 소동파와 김정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된 이유, 세한도 자체의 기법과 구성, 김정희의 심정과 의도, 세한도에 대한 제영 등등
조선 예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추사의 세한도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만 보고, 그냥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들이 좀 더 명확해졌고,
이유 없이 그저 그렇다 라고만 알고 있던 것들을,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걸 알 수 있는 강의였기에
너무나 반가운 느낌이었습니다.
단지 그림 하나로 이렇게나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니, 이 강의 이전에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고
세한도를 단순히 그림으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역사적 관계와 사상적 배경, 각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박철상 선생님의 '스토리텔링'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완벽하게 의도된 작품이다'
이번 강의의 출발점, 발상은 바로 이 한 문장인 듯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것이 왜 그런가를 밝혀내고 계시는데, 그저 상상이나 몇 개 자료를 본 후 짐작으로 말하시는 게 아니라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기존의 자료와 선생님께서 새로이 발굴하신 자료에 대한 철저한 고증,
수많은 고문서와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책과 강의를 통해 19세기 조선 학예의 총화로서, 세한도의 탄생과 유전 과정을 생생히 되살려냅니다.
김정희가 옹방강을 찾아가, 유배 당시에 소동파가 그린 <언송도>에 대한 찬문을 보고
- 古松偃蓋全綺戶 (고송언개전기호) : 고목이 된 소나무가 비스듬히 나뭇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어 있네
나중에 자신이 유배되자, 비슷한 처지와 유사한 상황 속에서, 공자가 말했던 <논어>의 구절을 떠올리며
-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한도 (歲寒圖, 국보 제180호)>를 그리게 된 상황을 하나의 '스토리'로서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세한도가 어떤 기법으로, 어떤 종이에, 어떤 글씨로, 어떤 인장이 사용되었으며
어떤 시기에, 왜 역관인 이상적에게 보내졌으며, 그림을 받은 이상적이 어떻게 했는가를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 때 김정희가 필연적으로, 세한도를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완벽하게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 자체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상적과 김정희의 우정 또한 이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이자 키워드일 텐데
그 많고 많은 선비와 역관 중에 유독 김정희와 이상적이 그렇게 특별한 우정을 가지게 된 과정 또는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그저 결과론적으로 두 사람은 특별한 관계였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자료와 해석이 좀 더 덧붙여졌다면, 보다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관해 강의 뒤에 질문을 할까 생각했으나, 원래 예정되었던 2시간이 아닌 단 1시간만에
강의를 급하게 마무리 지으셔서, 이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남습니다.
언제나 바라는 것이지만, 조금 더 꽉차고 알찬 강의를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멋진 강의를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하신
알라딘과 문학동네와 정독도서관, 박철상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P.S. 박철상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정조의 올바른 이름은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이 산'이 아니라, '이 성'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