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짧은 강의만 듣고 쓰려니 어렵네요.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당연하게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부정하는 일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인지 수업이 끝나고도 자꾸만 생각이 나네요.
다음엔 용기를 내서 질문도 해봐야지.. ^느^ 
 
 


언젠가 도로 위에서 여러대의 세○코(해충방제 전문업체) 차량들이 어디론가 바삐 가고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것들은 마치 화재 현장의 소방차처럼 진지했고, 한시가 급해보였다. 아파트에 바퀴벌레 떼들이 출몰하기라도 한 걸까. 빙그레 웃다가 문득, 차 안에 타고있는 해충방제 요원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그들 중 어려서부터 벌레잡는 일을 꿈으로 삼았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초등학교 재학 시절, 장래 희망을 적어내던 때가 생각났다. 선생님, 변호사, 의사, 대통령, 과학자……. 그땐 몰랐지만 어쩜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꿈을 써내었는지, 문제집처럼 꿈에도 모범 답안이 있을 줄 알았나 보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나서 직접 마주친 현실은 얼마나 다양한가 말이다. 이데아에는 마치 이러한 아이들의 답지같은 장래 희망처럼, 막연하게 보편 타당한 것을 따를 혐의가 있다. 그것은 진리, 실재, 궁극, 불변, 상수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둔갑해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 특히나 그것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 ㅡ 실체가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본다 ㅡ 언제나 매개체를 통해서 숨바꼭질 놀이를 걸어온다. 이렇듯 매개를 통해 진리(이데아)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을 재현의 논리, 혹은 재현의 사유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보편적인 것의 미흡함을 선선히 받아들이는 자들은 기꺼이 그 게임에 응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한다. 재현의 사유는 '유괴의 사유' 라고. 마치 어린 아이들에게 달콤한 초콜릿이나 사탕을 내밀며 '저기 좋은 거 있다, 따라가자'고 말하는 납치처럼, 재현의 논리 역시 그러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소수의 문제를 지닌다. 언제나 원본(이데아)에 우위를 두는 그것은, 자신의 논리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매장해버리는 흐름을 조성한다. 마치 가설에 어긋나는 범주는 보이지 않게 지워버리는 통계치처럼 말이다. 결국 다수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소수들은 열등한 인자로 취급받게 되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차이와 우열을 혼동하는 오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논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받아지면 받아질수록, 세상은 일률적으로 변하게 될 우려가 있다. 어떤 하나의 가치가 권위를 획득하게 되면 자연스레 그 판박이들이 양산되게 마련이다. 예컨대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사라는 직업이 안전한 이데아로 인식되면서, 많은 청춘들이 고시 공부에 뛰어든 현실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거다. 그들ㅡ모두는 아니지만ㅡ에게 자신의 흥미나 적성, 가치관 등의 문제는 뒷전으로 보인다. 판박이 양성은 곧 주체 부재의 문제를 낳는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셀수 없이 많은 종류의 것들이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며 살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채운 선생님이 하셨던 소요유의 새 '붕'의 이야기는 이러한 재현의 논리에 비추어 봤을 때, 세상을 넓게 보라는 얘기로 이해된다. 하나의 개념으로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보다는, 자기를 떠나서 다양하게 조망해볼 것. 그리고 다시 돌아와, 뜨겁게 살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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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10-01-1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과 '붕'의 비유처럼 우리도 깨닫게 되면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겠지요. 그런 날을 위해 오늘도 수행정진!!

froghong 2010-01-1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괴의 사유.....저 정말 유괴 당하고 살았나 봅니다...다음 시간이 기대 됩니다.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1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 모두는 소중하니까요. 저도 이제 그만 유괴 당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