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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2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1월
평점 :
이제 죽는 일만 남았는가.
나무 사이로 건너뛰며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죽는 일만 남았는가.
1권과 2권이 참 절묘하게 나누어졌다. 1권이 개마고원과 백두산을 배경으로 열정적이면서도 장엄한 자연의 풍광을 담았다면, 2권은 경성을 무대로 냉정하면서도 나라 잃은 민족의 잿빛 현실이 담겨있다. 경성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또 하나의 밀림, 즉 '비겁하게 꾸며진 밀림'으로 풀어나간다.
일본엔 호랑이가 없었단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호랑이는 '한민족의 정신'이요 신성한 영물(산군, 산군자, 산주, 산신령, 영대)이지만, 제국주의적 일본에게 조선의 호랑이는 그저 깔아뭉개야할 해수(害獸), 조선의 잠재적 힘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하나의 대상 일뿐이다. "그들이 탐내는 건 호랑이를 죽인 뒤 그 시체에 발을 딛고 찍은 사진 한 장과 비싼 털가죽이 전부"일 뿐인 것이다. 나쁜 시끼들...
히데오가 산에게 말한다.
- 다음에 널 만나면 사살명령을 내리고 가장 먼저 내가 방아쇠를 당길 거다."
- 하나만 더. 지금 내게 주 선생을 넘기면 넌 영영 주 선생과 만날 수 없다.
- …… 알고 있소.
- 주 선생을 사랑하지 않나?
- 밀림은 정이 없소.
밀림은 원래 정이 없는 곳인가? "밀림은 본디 정이 없다. 산도 들도 계곡도 나무도 새도 꽃도 호랑이도 정을 주고받는다면 죽고 죽이며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굶주리고 다친, 게다가 환경이 달라져 불안한 호랑이가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녀석은 살기 위해 자신의 위엄을 드러낸 것뿐이다."... 원래 의미의 밀림은 그런 곳이겠지만 인간의 감정이 개입된 중의적 의미의 밀림도 그러할까? "그 짓이 유정하다 무정하다 논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어리석은 시선"일 뿐이겠지만, 여기까지 읽었을 때 뭔가 회색빛 결말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다음의 엔딩 크레딧이 너무 멋있다. 가슴이 짜아~안 하더라. 헤살꾼이 될 수는 없는 것... 이 부분과 '주홍'과의 러브라인은 읽을 독자들의 감흥을 위해 남겨두어야겠지... 입이 간질간질...^^
너무나 멋진 소설이다. 구성도 치밀하고 매우 사실적인 묘사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사랑은 또 어떠하고... 나중에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으나, 허먼 멜빌 장편소설 <모비딕> 보다도 한 단계 위의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모비딕의 향유고래도 대단하지만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흰머리도 만만치 않다. 몸길이 487센티미터, 어깨높이 140센티미터, 몸무게 463킬로그램! 지금까지 보고 된 호랑이 중 가장 크고 무거운 호랑이로 그 위협성은 훨씬 더 긴박하다(글 중 일본인 부대가 흰머리에 의해 몰살하기도 한다).
어설픈 인문서적 보다 겨울 대자연의 장엄함(왜 장엄이라 하는지 '찬바람이 입천장을 송곳으로 찌르듯 들이닥치는' 눈 덮인 겨울산을 다녀본 사람은 안다. '눈과 바람에 휩싸인 산에는 10미터가 1킬로미터 같고, 1킬로미터가 100킬로미터' 같다.) 속에서 쫓고 쫓기는 인간과 흰 호랑이의 치열한 투쟁이 더 인간 본연을 생각하게 하더라. 필독!
'당신은 이런 남자랍니다'라고 정의하는 순간,
산은 훌쩍 그 울타리를 넘어 더 큰 어둠을 보여준다.
이 남자는 숫눈이다.

* 새판의 표지는 1권과 2권을 붙여보면 그 느낌이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