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 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
장한식 지음 / 산수야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참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읽고 나니 의외로 재미있고 괜찮은 책이란 걸 느끼게 되더라. 흥미로웠다는 말의 의미는 무협소설계에서 신필이라 일컫는 김용金庸의 벽혈검碧血劍과 녹정기鹿鼎記가 책을 읽는 곳곳에서 떠오르더라는 거다. 명의 명장으로 후금 누르하치의 침공을 막아낸 원숭환_이분은 명 왕조 내부의 알력 다툼으로 처형된다. 우리의 이순신 장군과 비슷한 이미지. 이순신 장군은 그나마 살아남았기에 조선을 구해내지만, 원 장군의 죽음은 명의 망국으로 이어지니 망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_ 이야기나 강희제가 4명의 어린 장사를 동원해 늙은 오배를 잡는 이야기에서 절로 무협지가 오버랩 되더만._김용의 모든 작품을 읽었는데... 무협지를 천박하다고 우습게 여기는 분들에게 <소설 영웅문>을 권해 본다. 삼국지와는 다른 면에서 중국을 느낄 수 있다._

 

아~ 무슨 책을 읽었냐면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 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로, 여진족이 후금後金을 세우고 나중에 중국을 집어삼켜 청나라를 건설하기까지 그 창업세대의 성공스토리를 조명하는 책이다. 책의 핵심은 누르하치에서 홍타이지로 이어지는 후금의 ‘나쁜 오랑캐 정신_대국이라고 겁내고 조아릴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정면으로 부딪치는 기상_을 배워 우리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좀 잘하자~ 뭐 이런 거다. 이 당시의 조선은 오랑캐이면서도 오랑캐 근성을 버린 유교이념의 구현되는 순이順夷, 즉 '착한 오랑캐'였다는 건데 그 결과가 병자호란의 '삼전도 굴욕'이란다. 다르게 말하면 홍타이지가 한반도를 정복했다는 거지. 공자 왈 맹자 왈 사대주의 명분만 따지다가 현실의 힘 한 방에 나가떨어진 조선... 잊어버리고 싶은, 아니 망각해 버린 그 치욕의 역사 속에서 내실 있는 교훈을 얻자고 그러네.

 

○ 중국 북방을 지배했던 금나라가 1234년 몽골에 망한 이후 여진족은 나라 없는 설움을 톡톡히 맛보았다. 원과 명의 분할통제정책에 걸려들어 통합된 정치조직을 세우지 못한 채 소규모 부락단위로 갈래갈래 찢어져 살아야 했다. 그 결과 여진족은 수백 년간 조선과 명의 변경을 약탈하거나 원조를 받아 살아가는 따분한 시절을 보냈다. 그런 여진족이 17세기가 열리자마자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만주 땅을 통일해 독립 국가를 건설한 다음 몽골과 조선을 굴복시키고 중국을 정복해 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불과 40년 세월에 기적처럼 이뤄낸 성과이다. 도대체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 글은 17세기 초, 동시대에 이뤄진 만주(여진)족의 흥기와 조선의 몰락에 대한 나의 의문에서 시작하였다. 1600년까지만 해도 조선에 비해 인구수나 생산력, 문화전통에서 한참 뒤졌던 가난한 만주족이 불과 한 세대 뒤에 한민족을 무릎 꿇리고 주인 노릇을 하게 된 사실, 더 나아가 드넓은 중원의 패권자(覇權者)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하였다.(7쪽)

 

○ 만주족의 성공 비결, 오랑캐 전략의 핵심은 '허리 굽혀 살지 않겠다'는 굳센 자존심과 투지, 두려움 없는 용기와 지칠 줄 모르는 정력, 수렵민족 특유의 발 빠른 지략, 호화사치를 배격하는 내핍과 검약 기풍, 명분보다 실질 중시, 개인보다 조직 우선 등으로 요약된다. 집단사냥으로 먹고사는 늑대 무리의 습성과 유사하다고 할까? 춥고 배고픈 데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최악의 환경에서 발전시킨 극한의 생존전략이다. 적은 인구에 생산력도 보잘 것 없었지만 오랑캐 전략으로 날을 세운 만주의 집요한 공세에 중국은 무너지고 말았다.(11쪽)

 

조고관금照古觀今이라... '옛 것을 비추어 지금을 본다'라는 뜻인데, 치욕은 치욕이고 배울 건 배워야지 아암~... 이 책의 요지를 다시 더듬어 보면, 후금의 초대 황제이자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하고 나라를 세우기까지는 성공했지만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후속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수년을 보내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권력을 이어받은 홍타이지는 정치군사적 수완과 경제문화 방면의 역량을 발휘하여 청을 세움으로써 부친 누르하치를 능가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거다. 굳건한 창업정신으로 '창업주를 능가하는 2세 경영'을 이뤄냈다는 것에 저자는 방점을 찍고 있네. 결국 홍타이지 성공의 키워드는 '창업정신의 견지'라는 거고, 현대 기업인들에게도 시사한 바가 크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은가봐.

 

어쨌든 '창업주를 넘어서는 창업정신'이야말로 질서 없는 신생국의 혼란상을 조기에 수습하고 단일대오를 갖춘 강국으로 만든 비결이었다는데(100쪽), 이즈음에서 삼성의 이병철-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지는 성공신화가 떠오르더라. 그런데 저자는 '중소기업을 물려받아 10여년 사이에 세계최대기업으로 키워낸 2세 경영인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네. 다르게 표현하면 선대로 물려받은 작은 것을 완전히 새롭고 큰 것으로 발전시킨 경우를 말하는 거지. 이 정도로 기업을 키운 분이 우리나라에 누가 있나? 순간 딱 한 분이 떠오르더라. 화장품 대표주자 아모레퍼시픽 정도면 어떨까? 서성환-서경배 회장으로 이어지는 창업 1, 2세대 성공스토리 정도면 기준에 거의 엇비슷하지 않을까? 하여튼 누르하치도 대단했지만 청의 기틀을 만든 2대 황제 홍타이지, 정말 대단하이...

 

책을 읽다가 아주 관심이 증폭되는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인삼 전쟁'이었다. 고대 무역사 강의에서 배우거나 듣지 못한 내용인지라 대단히 흥미로웠다. 이건 그냥 책의 내용을 옮겨 기록해 둬야겠다. _이 부분의 배움 때문에 별 다섯 평점을 주었다. 이게 아니었으면 별 넷..._
○ 16세기 후반, 중국으로 밀어닥친 은의 물결은 만주 땅에도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은의 효력을 실감하게 되면서 여진사회에도 하얀색 금속을 구하려는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45쪽)
○ 은의 물결 속에 인삼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조선과 심마니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삼을 캐기 시작했다. 귀한 만큼 인삼채집과 판매를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도 달아올랐다. 이는 곧 조선과 만주 간의 '인삼전쟁'으로 발전하였고, 두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수십 년 간 지속된 인삼전쟁은 '더 악착같았던' 만주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중원 시장에서 조선을 제치고 주도권을 잡았다. 인삼전쟁에서 승리한 만주는 덕분에 거만(巨萬?)의 백은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은의 힘으로 민족통일과 독립국가 건설의 한 길로 매진할 수 있었다.(46쪽) 

 

이 인삼 전쟁의 이면을 생각해 보니 결국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거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이라 하여 유교 먹물과 농업을 중시하고 상공업을 억압했다가 강한 힘에 굴복한 과거의 아픔에서 지금의 우리는 무얼 느끼고 배워야할까? 일본의 재무장, 중국의 겁난 굴기, 핵 보유의 호전적 북한, 미국의 서운함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도출하여야만 나라가 융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같은 과거회귀형 소모전을 만들어내는 정치인들은 도대체 뭐하는 인간들인지...  용략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홍타이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정치의 유치찬란함에 그냥 부아가 치밀고 만다. 정말로 국회의원을 한 100명 정도로 줄이면 좋겠다. 그러면 다툼이 좀 줄어들까?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도 그렇지만 그 장단에 놀아나는 국민들도 정신 차려야 할 텐데……. 아이고~아이고~~ 곡소리만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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