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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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에 대한 기억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보라매 떳다 보아라... 시치미, 매섭다. 옹고집, 매몰차다... 이런 말이 매에서 유래된 말이라지요. 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몇 가지가 퍼뜩 떠오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형이 산에서 야생의 어린 매 한 마리를 잡아왔지요. 사냥용으로 길들인다나... 참매(수리과)인지 송골매(매과)인지 _이 둘의 차이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https://www.kfa.ne.kr:44302/content.php?db=koryo3 참조_ 모르겠으나 내가 한 일은 줄기차게 매의 먹이로 개구리를 잡아오는 일이었습니다. 참 많이도 잡았지요. (이 살생의 업을 내 어이 감당할거나...) 그래서 어이 되었냐구요? 두 번째 야외훈련(?)에서 다리에 묶은 줄이 끊어져 매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저 멀리 나무에 앉았는데 돌아오지 않더군요. 다리에 묶인 줄 때문에 매는 아마도 상당히 곤경에 처했을 겁니다.
두 번째 기억은 황석영의 <장길산> 초입에 나오는 '장산곶매' 입니다. 뭔가 울컥~ 하면서 짜르르르~ 전기가 통한 듯 강렬한 이미지가 뇌리에 팍! 박혀버렸지요. 그 용맹함과 처연함이 우리 민족의 역경과 투쟁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아프더군요. 잠도 안자고 소설을 읽어 내린 기억이 선연합니다. (장길산은 정말 강추하고픈 최고의 소설입니다.)

 

#2. 메이블?
약간 긴장한 듯한 날카로운 눈매의 매 한마리가 표지 전체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메이블 이야기>_원제 `H is for Hawk_인데, "2015 아마존 ‘올해의 책’ 1위", “이 책은 노래다. 도저히 읽기를 멈출 수 없다.” 이런 카피도 보입니다. 뭐~ 이 정도는 웬만한 책들의 광고용 카피 멘트이므로 그냥 스쳐 지나려다가, 그 밑에 2014 새뮤얼 존슨 논픽션상, 2014 코스타 문학상, <아마존> 종합 1위,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이런 문구에 눈길이 갔습니다. 새뮤얼 존슨 상은 논픽션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상 아닙니까. 얼른 구글링하니 회고록으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수상했다네요. 이 정도의 스펙(?)이라면 읽어주는 것이 독서가의 예의이겠지요.
책의 표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메이블 Mabel'은 저자가 길들이는 참매의 이름이더군요. 사랑스럽거나 귀엽다는 뜻이라는데, "구식의 느낌이 나는 약간 어리숙한 이름이고 유행이 지난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할머니 같은 분위기가, 장식 덮개와 애프터눈 티(영국 전통인 오후 3시경의 다과 시간) 같은 느낌이 풍긴다(148쪽)."고 작가가 설명하고 있네요.

 

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매! 저기 믿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동물이 있었다. 갈라진 부싯돌과 분필 같은 색깔, 등 위로 날렵하게 교차된 날개, 하늘을 향해 치켜든, 볏이 서 있는 검은 얼굴. (50쪽)


#3. 사냥 매 길들이기?
<메이블 이야기>의 주된 전개는 매를 길들이고 사냥에 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매 사육과 매사냥에 대한 체험기가 아니네요. 그랬다면 저렇게 많은 상을 수상하지는 않았을 것이겠지요. 이 책에는 매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깊은 상실감을 극복해 나가는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회자정리 생자필멸(會者定離 生者必滅)의 진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막상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이 꽤 오랫동안 마음을 짓누르더군요. 헬렌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아버지의 부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그러다가 어릴 때부터 관심 두었던 참매를 길들여 보겠다고 결심하게 되고, 메이블을 분양받아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키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야생의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헬렌 역시 자신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길들이게 됩니다. 이 책은 여기에 방점을 찍을 때, 왜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는지 알게 됩니다. 상실의 아픔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야생의 맹금류를 통해 그 고통의 심연을 관통하면서 슬픔을 견뎌나가는 모양새 입니다. 한마디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아픔을 치유하는 '인간 정신'이 서려있다는 거지요.

 

나는 세상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내 매는 나를 다시 구했고 모든 공포심은 사라져 버렸다.(436쪽)


#4. 고독의 힘?
헬렌이 인용한 문장을 하나 볼까요. "푸르고 고요한 숲 속에서 자연은 모든 고통을 치유하고 달래 준다. 땅에는 땅이 치유 못 하는 슬픔이 없다(342쪽)."... 정말 그럴까요. 문맥만으로는 굉장히 아름다워 보이지만 자연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죠. 자연의 야성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을 때에야 그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무릇 치유라는 것은 철저하게 그 본질에 접근했을 때 길이 보이는 법이지요. 헬렌은 거친 메이블을 통해 자연에 순화하고 동화되어갑니다. "나는 매가 되어가고 있었다(142쪽). 나는 매로 변해 버렸다(332쪽)"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태 _290쪽 하단에 의식의 해체를 잘 표현하고 있네요_ 즉, 자연과 내가 하나인 상태, 물아일체(物我一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경지를 체득한 듯합니다. 이를 반영한 헬렌의 감정을 조심스레 옮겨봅니다. "나는 본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매가 가져오는 계속되는 마음의 끌림, 매의 눈을 갖고 싶은 내 오랜 갈망, 안전하고 고독한 삶을 사는 것,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속 세상을 거기에 두는 것, 지켜보는 사람이 되는 것. 상처받지 않고 거리를 두고 온전하게.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생각한다. '난 여기 있어. 그리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300쪽)." 
시인 매리앤 무어가 "외로움을 치유하는 것은 고독이다.(60쪽)"라고 했다네요. 저는 헬렌의 의식 흐름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바로 고독의 힘이지요.

 

출처: http://www.thetimes.co.uk/tto/multimedia/archive/00845/Costa_Book_Awards_2_845193a.jpg 

 
#5. H is~ ?
헬렌은 참매를 훈련시키고 사냥하게 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치유해 나간다고 했는데요. 그 과정을 부풀리거나 포장하지 않고 참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묘미입니다. 진정성이 전해져 온다는 거지요.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매 순간 일어나는 현상에 따른 마음의 흐름을 참 섬세하게 짚어내지요. 그런데 건조하거나 지겹지 않습니다. 참매 메이블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거친 야생의 메이블이 헬렌의 손을 통하여 사냥매로 거듭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과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가 꽤 흡입력을 가지게 하더라구요.
이즈음에서 이 책의 원제를 생각해 봅니다. 원제목은 <메이블 이야기>가 아니라 <H is for Hawk>입니다. H의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책의 본문에서는 H의 의미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물론 H가 Hawk의 H라는 거야 알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여기서  Humanity를 떠올립니다. 부재, 상실... 이런 삶의 구멍을 겪으면서 한걸음 더 성숙하게 되는 게 우리 인간 아니겠습니까. 가장 외로운 상태에서 참매에 의지(?)하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각각의 삶을 공유함으로써 아픔을 딛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바로 휴머니티의 다른 표현이라 여겨지네요. 상당히 중의적으로 보여집니다. 아무튼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임은 분명하네요. 좋은 책입니다.

 

#6. 에필로그

그냥 매사냥에 관한 동영상 하나를 링크합니다. 일람하시면 이 책의 느낌을 조금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겁니다. <참매, 송골매, 해리스 동영상>입니다.

 

#7. 저자 헬렌에게 답을 구하다.^^
위 #6 까지 독후기를 적고나니 <H is for Hawk>의 H가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더욱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을 서핑하여 저자 헬렌 맥도널드의 트윗 계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멘션을 날렸지요. 워낙 유명해진 분이라 답변이 오리라 크게 기대는 안했습니다. 그런데... 우와와~ 곧 바로 리플라이... 너무나 고맙고 기쁘더군요. 저자의 말씀은 제가 생각한 바와 거의 같이 중의적이더군요. H는 희망이기도 하고 헬렌이기도 하고 화이트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고 가정이기도 하며 참매이기도 하고 인간성이기도 한...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독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거겠지요. 여기 그대로 캡쳐하여 소개해 봅니다. 이 책의 제목에 의문을 가진 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캡쳐하면서 보니 제 영어가 엉망. 한번 더 검토하고 보낼 걸... 너무 서둘러 멘션한게 후회가 되네요. 에궁~ )
사족으로 한마디만 덧붙이면, 우리나라 SNS 대표적 시사평론, 문화비평 논객으로 꼽히는 진모 교수의 책을 읽고 의문점을 멘션으로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감감무소식이더군요. 제 질문의 수준이 낮아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자신의 책을 직접 구입하여 읽은 독자의 간단한 질의에 쌩까는 것은 정말 뒷맛이 별로였습니다. (물론 그 뒤로 이 분 책 안 사고 안 읽습니다.)
이번에 저자의 답신을 보면서 권위적이지 않고 친절한 저자의 성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뭐~ 그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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