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국은 어른이 문제다. 사악한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인두겁을 뒤집어쓴 악마들이 너무 많은 사회. 우린 부끄럽게도, 아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인간껍데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타락의 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의 탈을 썼다면 그래도 지켜야 할 마지막 선(線)이란 게 있는 법인데...

 

청소년 소설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책이 있기에 무슨 내용인가 싶어 몇 장 읽어보다가, 그만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마음이 먹먹하였다. 비록 소설이라지만 그 내용이 언젠가 떠들썩했던 나영이 사건이나 인터넷 상에 올라왔던 일산 모 유치원의 아동 성폭력 사건과 겹쳐지다보니, 딸 가진 부모로서 참 마음 다스리기 힘들어지더라.

 

<유진과 유진>에서 유치원 원장이 유치원 여자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했네. 이때 성추행을 당한 동명의 두 유진이가 중2가 되어 같은 반이 된다. 큰 유진은 부모가 나름 잘 대처하여 밝게 자라왔으나, 전교 1등짜리 작은 유진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소설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은 아픔을 가감 없이 건드린다.

 

작가는 어떤 과도한 꾸밈이나 높낮이 없는 민낯의 문체로 피해자들의 무의식에 감춰진 수치감과 분노, 두려움과 자기 파괴적 상실감을 독자에게 들이댄다. 물론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고... 그런데 이런 턱턱 숨이 막히는 무거움이 청소년 성장소설로 자리매김하는 게 나는 마땅찮다. 문제는 이렇게 마땋찮아 외면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럴 수 없다는 거다.

 

어쨌거나 작가는 나무의 '옹이'를 통해 청소년과 피해자 가족들이 아픔을 승화시켰으면 하는 바램을 숨기지 않는다.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162쪽)."... "감추려고, 덮어 두려고만 들지 말고 함께 상처를 치료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볕도 쪼여 주었으면 외할머니가 말한 나무의 옹이처럼 단단하게 아물었을 텐데(275쪽)...

 

이런 성장소설을 보면 항상 도종환의 시가 떠오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시적인 언어로 달랠 수 없는 아픔도 있다. 상처를 쳐다보고 옹이처럼 단단하게, 아프지 않은 상처로 다스리라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그저 언어적 유희 일 뿐이다.

 

성적(性的) 방종 속에 움 튼 악의 싹은 빨리 잘라내어야 인간이 인간다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동 성폭력자는 공개리에 거세(去勢, 宮刑)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이 무르니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 거다. 성이 자유개방화 되고 처벌이 솜방망이니 아동에게까지 마수를 뻗칠 생각을 하는 거다.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자 자산이다. 그들을 보호하고 꾸밈없이 자라도록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이란 이름의 책임이고 의무이지 않겠는가.

 

이러나저러나 청소년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둡다. 에휴~ 심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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