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나체들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추리에서 호색(好色)으로
프로젝트를 끝내고 팀원과 함께 약간의 휴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이 뭐 없나~ 책장을 기웃기웃~. 안 읽은 책 더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은 추리소설 책이 한 권 보인다. "얼굴 없는 나체들"... 오~ 이거 재미있을 듯하다. 얼른 책꺼풀을 싸고_난 책커버로 A4용지의 묶음 포장지를 이용한다. 코팅이 되어 있어 여러 번 사용할 수도 있고 손때도 묻지 않아 여러모로 쓰임새 좋은 재활용지이다._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읽어갈수록 추리의 '추'자도 발견하기 힘들다. 오히려 저급한 일본풍의 19금 성애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저질 일본판 AV를 문자화 시킨 것에 다름없다. 아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런 '빨간 책'도 저술했나? 여직원들도 있는데 괜히 낯 뜨거워서 계속 읽어나가기가 좀 그렇다. 이러다가 "뭐 읽어요?"라고 묻기라도 한다면... 황망함을 감추고 얼른 가방 속으로 책을 숨긴다.

 

2. 바람 같은 변명
동료들이 없을 때 책꺼풀을 살짝 벗겨봤다. 오잉? 이거 뭐야!!!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니라 '히라노 게이치로'... 난 분명 게이고의 추리 책인 줄 알았는데 웬 게이치로의 19금 변태적 섹스탐구? 그 참 난감할세... 출판사를 보니 '문학동네' 책이다. 문동이 이런 수준 이하의 야설 책을?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하다. 일단 이 책을 어떻게 소지하게 되었는지 잠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먼저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증정' 같은 스탬프 도장은 없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연유로 출판사에서 받은 건 아닌가 보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인터넷서점에서 일정 금액 이상 구매자에게 주는 선물에 혹하여 금액 맞추느라 끼워 넣은  책일 확률이 다분하다. 때때로 정신이 깜빡깜빡 하다 보니 구입 당시 두 작가를 착각하였거나, 아니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게이치로의 <일식 日蝕>처럼 이유 있는 내용이 있을 거라 짐작하여 구매한 듯도 하고...

 

3. 쓰레기 속에서 진주 찾기
 내용이야 잡스런 외설에 가깝다고 하겠다. 주인공 여교사가 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만난 한 남자와 바로 섹스 관계를 맺는다. 고루한 삶을 살던 그녀는 사이버 속 자신의 캐릭터와 현실의 자기를 이원화하여 점점 원초적 욕망 속으로 빠져들고... 그러다가 인터넷에 자신의 사진이 유출된 것을 보고... 이 뒤의 이야기도 뻔하다. 뭐~ 요즘 흔하디흔한 삼류 소설 스토리 아닌가.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작가인데 어찌 괜찮은 말 한마디 없겠는가. 오물 더미에서 찾은 나름 괜찮은  문장을 건져본다.


○ 현실 사회와 접촉하는 것이 겉이며 외측이라면, 모자이크에 가려진 쪽은 안이며 내측이다. 이런 발상 때문에 인터넷 세계는 늘 간단히 내면화 된다. (15쪽)

○ 통증에도 형태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녀의 통증은 거꾸로 선 삼각형처럼 아래에 예각을 두고 위로는 음울하고 묵직한 저변의 뿌리를 뻗치고 있었다. (33쪽)
○ 결점이란 남에게 받아들여지기 바라는 자의 고민거리다. (38쪽)
○ 비밀은 자연히 사람을 내면화시킨다. 그러나 그 결과 사람이 신경 쓰게 되는 것은 오히려 외면이다. (42쪽)

 

4. 잘 봐주면 키치(Kitsch), 그러나...
하긴 꼭 인문서적만이 어디 책이겠는가. 이런 하위문화를 즐기는 사람 또한 많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야 가릴 수 없는 갈망 아니겠는가. 세계 모든 여성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만 보더라도 은밀한 성생활과 일탈은 때에 따라 로맨스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일본의 성문화는 참 이해하기 힘들다. 여성의 신체구조를 함부로 하고, 그들의 깊은 체액을 여성에게 처바르고 먹일 때 희열을 느끼는 가학적 변태의 습성이 내면화된 족속 같다. 알고 보면 섬나라 좀생이들의 왜소한 핸디캡_오랫동안 법과 규칙에 얽매여 철저히 개인을 억누르며 살아온_에서 나오는 불안의 가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하긴 우리나라도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방종이 제재 없이 일상화 되다보니, '수티 껌디 나무랜다(숯이 검정을 나무란다)’고 이제 그들을 뭐라고 하기엔 민망하긴 하다. 어쨌거나 어떤 문화적 다양성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나의 생각은 이 소설이 저급한 쓰레기 소설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