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방외지사 열전 1 - 한세상 먹고사는 문제만 고민하다 죽는 것인가?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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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어… 아이의 생일 날, 또래 친구들이 찾아와 패러디한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만의 '생일빵' 잔치로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좋은 시절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왜 태어났을까?' 자문하게 된다. 깊이 잠들어 있던 나의 존재 의미에 대한 회의와 함께 딱히 뭐라 하기 힘든 초조함이 온 몸을 감싸고 약간의 한기마저 느끼게 한다. 나는 정말 왜 태어났을까? 가정을 꾸려 아들딸 낳고 그냥 무난하게 직장 다니며 이렇게 오손도손 살다가 가려고 왔을까? 이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전부일까? 이게 아닐 텐데…….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기쁨이 있다지만 이렇게 건조한 삶을 살다가 가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러한 삶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아닐 텐데…….

일탈이 아닌, 내면의 울림에 의한 나만의 삶을 살아야한다고 머리는 느끼고 있으나 현실의 몸은 강호의 '거친 바람'을 두려워하며 그냥 안주하고 만다.

 

조용헌의 <방외지사>! 읽고 싶었지만 바쁜 나날에 그냥 지나쳐 온 이 책이 <조용헌의 방외지사 열전>이란 제목으로 개정 증보되어 나왔다. 방외(方外)란 무엇인가? 조선생이 의미하는 방의 개념을 서문에서 짚어보면, "방은 원래 사방이란 뜻이지만, 그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층위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된다. 방은 테두리, 경계선, 고정관념, 조직사회를 의미한다. 방(方)은 또한 노래방, 빨래방, 찜질방의 방(房)과 같이 닫힌 공간, 구획된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방외'라는 것은 방으로 상징되는 이러한 고정관념과 경계선 너머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조선생은 이 책에서 방외로 먼저 나가본 사람들, 즉  조직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가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궤적을 진솔하게 소개하고 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사람마다 자신의 가슴 속에 알고도 모르는 듯이 잠재우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에게 은근히 '뭐 해? 당신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 탈출 해~' 이런 유혹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책이다.

 

<열전 1>은 "한세상 먹고사는 문제만 고민하다 죽는 것인가?"를 고민한 방외지사에 관한 소개로, 그 1부는 "밥걱정을 뛰어넘은 귀거래사"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은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고민거리이다. '밥이나 굶지 않는 백수'가 된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가장 먼저 소개된 죽설헌_竹雪軒, 나주시 금천면에 소재_의 박태후 화백의 공간은 부럽다 못해 그저 멍해지더라. 그 생활 이력이야 간단하게 요약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조선생의 찰진 필력이 붙으니 살짝 전율이 인다. "죽설헌에서 유리벽 너머로 대숲을 보고 있노라니 죽리관에 앉아있던 왕유가 부럽지 않다"는 글을 읽는 순간 고향집 뒷산의 대나무가 그리워지고 난 구름 위를 걷는다. 밥 굶지 않으면서 그런 풍광을 즐기며 사는 팔자는 정말로 어떤 팔자인가? 부.럽.다. 이외에도 오토바이 타고 강산을 떠도는 시인, 백수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처사, 산중무예 기천문 2대 문주, 인생 2막에 '갑'에서 '을'이 된 명리학 도사, 서권기 문자향의 '이불재' 주인 등이 천외천의 세상으로 이끌어 간다.

 

홀로 그윽한 대나무 숲에 앉아 / 거문고를 타면서 길게 휘파람 소리 내어본다. 깊은 숲 속이라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 밝은 달이 찾아와 비추어주는구나.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王維, 竹裏館

 

2부는 "사바세계에서 도를 찾다"이다. 1부가 귀거래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부는 자신의 타고난 소질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염라대왕의 대외비를 훔쳐본다는 역술가_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사주풀이가 흥미로웠다_, 무술 고수를 찾아 중국 천지를 방랑한 분, 의사이지만 '도통'을 추구한 월담거사_청화스님의 금강심론金剛心論은 꼭 읽어봐야겠다. 이 거사가 걷고 있는 길이 내가 추구하는 바와 비슷하다_, 파주 적군묘지 보살피는 탁월한 구라꾼_이분을 만나면 왠지 압도당할 듯만 같다_, 신화세계 탐구하는 쌍꺼풀수술 전문가_공력이 탁월한 분 같다_, 공자철학의 좌파적 해석자_좌파논어, 자신의 삶에서 체득한 해석이 참으로 싱그럽다. 진정한 고수의 경지를 느낌_, 80년대 운동권으로 도피생활 동안 강호학을 깨친 인문학자 등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곱 분의 삶이 펼쳐진다.

 

운이 좋지 않을 때는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한다. 그러려면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 고비만 지나면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인간은 참혹한 현실을 견뎌내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운명의 이치는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가면 반드시 밤이 온다는 것이다. 223쪽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네 삶이 애달프다. 살얼음판 같은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이렇게 살다가려고 태어났는지,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커피 한 잔으로 달랠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조선생도 이 책에서 이를 짚어두더라."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으나 소심함 때문에 가지 못한 길이 있다. 그럴 때 자신이 가보고 싶었던 길을 실제로 가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마련이다. (중략)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소심함을 한탄할 뿐이다.(65쪽)"……. 그 어느 누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고 싶지 않으랴. 나도 나의 길을 가고 싶다...
조용헌 선생의 글빨은 참으로 맛깔스러우면서도 품격이 있다. 그의 지적인 글을 읽노라면 무불통지(無不通知) 활연관통(豁然貫通)의 경지를 느낀다. 어찌 보면 방외거사 또한 그저 하나의 삶에 불과하건만, 자신의 철학을 방외지사의 삶 속에 적절히 녹여내어 '읽는 맛'과 '끌림'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조선생 또한 참 대단한 방외지사처럼 느껴진다.^^  (1,2권의 독후를 하나로 쓸려다가 따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권의 독후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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