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도세자! 조선 시대 몇 안 되는 성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 1694~1776)의 아들이며, 영조와 함께 18세기 조선을 중흥기로 이끌었다는 22대 왕 정조(正祖, 1752~1800)의 아버지이다. 왕세자임에도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었으며(임오화변 壬午禍變),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세자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록(閑中錄)을 남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히고설킨 속사정에 대해서 이 분야 학자들 간에 상당한 이견(異見)이 있는 듯하다. 역사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어질 수도 있겠으나 내막을 잘 모르는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중심잡기가 힘들어지는 사안이다.
사도세자에 대하여 나름 정립을 한 것은 오래 전 이덕일 선생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고 나서였다. 뚜렷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영조가 두 가지 콤플렉스(어머니 숙빈 최 씨의 비천한 신분, 경종 독살설)를 딛고 왕이 되기까지 노론 세력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다는 사실과, 이후 하나 뿐인 아들 사도세자가 노론의 횡포에 대항하여 소론을 가까이 하자 이를 우려한 노론의 공작으로 영조는 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줄거리였던 거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정병설 교수의 <권력과 인간: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은 이덕일 선생의 논지와 완전히 대척하는 관점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이선생의 논지는 사도세자가 미쳤기 때문에 영조가 뒤주에 가둬 죽였다고 기록한 혜경궁의 논리적 틀을 비판 _한중록은 혜경궁이 노론 가문이었던 친정을 옹호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왜곡한 거짓기록_ 하면서 이 사건을 붕당정치의 희생물로 보고 있으나, 정교수는 이런 당쟁희생설을 철저히 반박하고 있다. 사도세자의 '불쌍한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좀 더 공정하게 보자는 거다. 정교수는 광증설이건 당쟁희생설이건 영조가 세자를 죽인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로 '반역죄(역모)'를 들고 있다(211쪽). 세자는 이성을 잃으면 홧김에 '칼을 차고 가서 아무리나 하고 오고 싶다'는 _칼로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_ 등의 극언을 하곤 했던 모양이다. 영조는 아들이 미쳤다고 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세자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에 아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세자라는 막강한 권력의 속성상 그대로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뒤주에 가둘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인데,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가도 폭넓게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한 저자의 분석에 나름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현재의 권력(영조)이 광폭무도한 미래 권력(사도세자)을 징계한 사건으로 파악했다는 건데, 특히 아래에 인용한 부분을 읽었을 때 영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권력의 개념이 어슴프레 보이더라. 또한 저자가 풀어내는 '권력과 인간'에 얽힌 속성도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  
책 후반부의 전개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입장에서 풀어나간다. 사극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는 '금등지서의 비밀'이 흥미를 더하면서 세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 문제와 정조가 걸어간 길, 정조의 죽음과 한중록, 혜경궁 홍씨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한중록에 대한 정교수의 견해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중록은 일견 정조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조의 논리에 동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은 분명 정조가 조성한 논리에 대한 반박이다(319쪽)"…….

 

 권력은 아름다운 보석이다. (중략) 권력은 수중에 넣기 전에는 자기 것이 아니지만, 일단 소유하면 주체와 대상의 동일화가 일어난다. 내가 권력이 되고 권력이 내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원래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원래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니 오로지 자기만이 가질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논리가 비약하기도 한다. 동일화가 더욱 잘 진행되면 나중에는 그것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까지 생긴다. 자신은 그것을 지킬 책임이 있고 그 일이 자기의 의무라는 생각에 이른다. (중략) 책임으로 핑계를 대지만 따지고 보면 이 역시 권력욕이다. 권력과의 동일화는 임금도 다르지 않다. (325~326쪽)


이 책은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매주 한 꼭지씩 연재한 48회의 초고를 바탕으로 엮었다는데, 읽을수록 '우리시대의 명강의'에 부족함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 내용도 읽을거리였지만 무엇보다도 부록으로 소개되어진 <선행 저술 비판>이 백미였다. <사도세자 당쟁희생설 비판>, <길 잃은 역사대중화 ―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에 대한 비판>, <이덕일의 반박에 대한 비판> 중 두 번째 '길 잃은 역사대중화'는 <역사비평 2011년 봄호>에 실려 논란이 되었던 글로써 참으로 읽어둘만한 논지였다. 평소 이덕일 선생 등 비주류 사학자들의 소설 같은 역사서를 많이 읽는 나로서는 균형적 역사인식이 무엇인지 가늠해 보는 아주 좋은 책읽기였다.
나는 여기서 두 전문가의 어느 한쪽에 마음을 주기 어렵다. 조선의 르네상스라고도 일컫는 영·정조 시대의 밝음 이면에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어둠이 존재하고, 이를 바라보는 사학자 간의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했을 뿐이다. 간단하게 느낌을 정리한다면 이선생은 행간을, 정교수는 실증적 논거를 중시하여 담론을 이끌어간다고 느꼈다. 이선생의 관점도 신선했고, 정교수의 학자적 반론도 정말 탄탄해 보였다. 역사 전문가도 아닌 내가 누구 편을 들 처지도 아닌지라 영조의 편집증이 _자신의 태생적 불안에 의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한다_  낳은 사도세자의 광증과 그 비극적 결말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사건의 배경과 경과, 나아가 그에 대한 담론의 변화까지 알아야만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고 해석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거다. 이즈음에서 E. H. 카의 역사관을 다시 생각해 본다.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보다 객관적 사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첨언 : 사도세자의 광증에 대한 기술은 한중록, 승정원일기, 영조실록 등에서 나타나는데, 세자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천둥 공포증 증상을 보이다가 걸핏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계증(驚悸症)으로 이어지는 등 마치 '종이에 물이 젖듯' 병증이 깊어졌다고 한다. 아무 옷이나 입지 못하는 '의대증(衣帶症)'이 심해지면서 가학증으로 연결되는 대목은 사뭇 안쓰럽기만 하다. 옷을 입으려고 애쓰다가 여의치 않으면 충동적으로 시중드는 사람을 죽이곤 했다는데, 잔혹하기도 하려니와 그 수효가 여럿인지라 이미 군주로서의 품격과 자질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다는 후궁 ‘빙애’ 마저 죽였고 아내 혜경궁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며 자살을 시도하는 등 정신분열증까지 간 모양이니 더 말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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