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 러시아 고전산책 6
막심 고리키 지음, 이수경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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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러시아 문학을 읽지 않고서는 뭘 좀 읽었다~ 말하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푸시킨, 고리키, 파스테르나크, 고골리, 솔제니친, 투르게네프, 숄로호프, 벨린스키……  젊은 그 한 때에 이런 문호의 글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라 말 할 수도 있으리라. 이들의 대단함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문학적 깊이가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세상사 이런저런 풍파를 겪어 보니 그들 문학의 근저가 '인간의 본질', 즉 인간다움에 있다는 걸 새삼 인식하게 되더란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내 정도 되는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참 이중적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그 풍부하고 유려함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건만, 그놈의 이데올로기 시대_미국과 소련의 세력 다툼_를 거치면서 잘못 접근하다가는 다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머리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을 듯하다. 여하튼 러시아의 모스코바와 생떼페테르부르크는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이고, 가능하다면 시베리아 횡단열차 그거 꼭 한번 타보고 싶다.

 

각설하고……. 이번에 읽은 책은 건국대 러시아어문학과_이거 옛날 프로필인데 책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이수경 교수가 번역한 막심 고리키의 <마부>. 고리키의 초기 단편소설 10편을 묶어놓았는데, 역시 명불허전.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문학성이 나를 기쁘게 했다. 표제작인 「마부」도 대단했지만, '으잉~? 이거 진짜 괜찮다'라고 느낀 작품은 「지난해」와 「시간」이었다. 이 두 작품은 확실히 독특하다. 둘 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관조하게 하는 수작이다. 마치 파스칼의 <팡세>나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는데, 읽을수록 스스로를 가다듬게 된다. 특히 「지난해」에서 느끼는 아포리즘은 짜리리~ 하기까지 했다. 지난해는 자신의 마지막 날_12월31일_, 영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모든 인간적 특성을 불러 모아 운명적인 죽음의 순간이자 새로운 해가 탄생하는 순간인 밤 열두 시까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위선이 겸손의 손을 잡고 도착하고, 우둔의 정중한 보호 아래 야심이 등장하고, 의젓하나 기력이 쇠한 이성, 감수성 풍부하나 사고의 불꽃이 타오르지 않는 사랑, 이리저리 깨지고 망가진 믿음 등 수많은 인간 감정의 찌꺼기가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희망은 침묵을 지키고 진리는 희미해져 권태만이 함께 하는 자화상. 바로 내 자신의 얼굴 같은 작품이었다.

 

드디어 권태가 도착했다. 모두들 정중하게 그에게 인사했는데 그가 시간의 총애를 받기 때문이었다. 「지난해」169쪽.

 

똑딱, 똑딱! 추의 움직임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흘러간 순간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어디서 나타나,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이런 물음으로 시작하는 작품이 「시간」이다. 똑딱! 한 번에 삶이 조명되고, 똑딱! 한 번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똑딱! 똑딱!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고리키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그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을까? 그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정'을 삶의 목적으로 꼽고 있다. 삶이 열정적이라면 그 삶에서 멋진 시간이 펼쳐질 것이라 하면서 '자신의 열망을 소유한 인간 만세!'라 했다. 팁으로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조언하네. 이것이 지상에서 가장 도도하면서도 아름다운 용기라 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인간 만세! 자신의 시간을 강렬한 도도함으로 가득 채워 아름다운 인생을 살라는 메시지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똑딱! 여러분은 행복하다. 똑딱! 고통스런 슬픔이 여러분 마음을 가득 채운다. 삶의 매 순간을 무언가 새롭고 살아 있는 것으로 채우지 않는 한 그 고통은 평생 동안, 당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 내내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고통은 유혹적이면서도 위험한 특권이다. 「시간」179쪽.

 

「이제르길 노파」를 읽다가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잠시 눈길을 멈춘다. 그리고 한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사람들은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저울질하며 재기만 하면서 평생을 낭비한다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도둑질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낸 후에야 운명을 한탄하기 시작하지. 운명이란 뭘까? 각자가 자신의 운명이야! (218쪽)". 내 자신의 삶이 이러함을 자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의 흐름에 언제나 저울질만 하다가 많은 기회를 놓쳐버렸음을 이제야 나는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회한으로 변하여 바람처럼 잠시 온 몸을 훑는다. 전율이 일고 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만다.

 

신은 오랫동안 인간의 희생을 참아왔다. 이제 너무 역겨워진 신은 인간의 희생을 거부했다. 「종」78쪽.
신이 나를 용서해도 ......, 사람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지상에 사니까...... 「종」81쪽.

 

결국 고리키의 주제는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하겠다. 돈의 노예가 되어 타인의 눈물과 노동을 착취하거나 살인을 하고도 무덤덤한 인간 군상에 대한 질타와 인간의 인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마부」,「환영」,「종」. 가난이란 단어 속에 스며든, 어둠기만 한 삶의 이면에 깃든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아쿨리나 할머니」와 「푸른 눈의 여인」.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로맨스」와 「아름다움」……. 이 모든 게 '어떻게 살아 왔는가?' 하는 자기반성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하는 자아성찰로 귀결된다. 1890년대의 작품에서 오늘날 삶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다는 이것이 인문학의 진수요 힘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것은 젊은 독자들에게 별로 크게 어필하지 않으리란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젊은 열기로 보면 그저 패배주의적 연약함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결국 러시아 문학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어느 정도의 연륜이 필요하다고 보겠다.) 어쨌거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런 책 꼭 한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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