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겐 일생에 한 번 냉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한상복 지음 / 예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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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제각각의 '섬'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나는 이쪽 편에서, 그는 저쪽 편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데만 집중하다가, 그 사이에 심연의 바다가 놓여 있음을 까맣게 망각해버리는 것이다... 생략 ... 상대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 느껴지므로, 두 섬의 어딘가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생략 ... 사랑에 빠진 남녀의 눈에는 상대방 외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연인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가 '흐린 배경'으로 취급된다. 그의 부모나 친구, 신념, 환경 같은 것들이 전부 뭉뚱그려진 채 흐린 배경으로 처리되어 멀찍이 물러나 보이는 셈이다. 그가 도드라져 보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처럼 '연인만이 눈에 들어오는'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결혼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우리는 연애와 결혼 사이에 튼튼한 다리가 놓여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건너면 그만이라고 믿는다.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사랑이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로맨틱한 기대를 품으며 어딘가에 있을 다리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다리가 없다.

그제야 알게 된다. 결혼이란 누군가가 놓아둔 다리를 통해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나'와 '그 사람'이라는 서로 다른 섬에서 제각각 다리를 놓아 양쪽을 연결시키는 일이라는 진실을. (서문 4~5쪽)

 

 

결혼을 해보니 알겠더라, 위 글이 얼마나 진실인지를... <여자에겐 일생에 한 번 냉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책 제목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용은 참 공감과 끌림이 있다. 결혼을 앞 둔 젊은 청춘 남녀, 아니 결혼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연애를 하고 있는 연인들의 필독서라고 해도 좋을 내용이다.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결혼 초기에 겪었던 우리 부부의 시행착오를 이 책에서 그대로 찾아낸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하나의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결혼할 때에야 아내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겠다는 마음이지만 그게 어디 그렇나. 집안일은 아무래도 여자가 더 많이(어쩌면 전적으로) 해야 하는데도 여성들은 이 달달한 거짓말에 그냥 넘어가 준다. 어쩌면 사랑하는 남자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혼 후 남자는 곧 바로 잊어버리는 게 현실 아닐까? (아니다. 고무장갑 하나 사주고 말에 책임을 다했다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
남자들끼리 있을 때 하는 말이 있다. 잡은 고기에 미끼 주는 낚시꾼 있느냐고. 이 말 들으면 여성분들 분노하리라. 그만큼 남자와 여자는 생각의 차이가 다르다. 특히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남자들 마음은 너무나 다르다. 일상생활 속에서 남녀 간의 각기 다른 심리와 행동은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 같은 TV프로그램을 통해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겠지만, 직접 겪어보면 서로에 대한 환상은 곧 깨어지게 된다.

 

 

정말 연애할 때의 사랑과 결혼 후의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애할 때야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치장하고 꾸미고, 그렇게 만나서는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게 된다. 사랑과 생활이 각각 따로따로이니 밝음 뒤에 감춰진 일상의 결점을 보지 못한다. 또한 두 사람의 감정이 중요할 뿐 주변 사람들의 눈치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이면 누가 뭐래도 자기 눈엔 상대방이 멋져 보이니 그 어느 누구의 조언도 '비방과 질투'로 여겨진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다.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나면 사랑도 중요하지만 생활이 먼저다. 그 생활은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삶이다. 오죽하면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35세 이하 부부의 이혼사유 가운데 1순위라고 했겠는가. 결혼 후의 사랑은 '생활과 결합된 사랑'인 것이다. 이걸 모르니 연애의 환상은 깨어지고 갈라서게 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유교문화에 젖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여성에게 많은 짐을 지운다. 그러니 무엇보다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결혼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녀는 불안한 것이다. 사랑의 최종 목적지처럼 여겨지는 결혼이, 특히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결정하는 결혼이. 정말로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겠다고 그는 비로소 인정한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지만 보이는 것은 대개 '보여주려는 것들' 뿐이니까.(14쪽)"
두 사람이 사랑한다지만 보이는 것은 대개 '보여주려는 것들' 뿐이었으니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게 되는 현실이 곧 다가온다. 결혼은 일생을 건 도박이라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알 수없는 미래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말 그렇다. 그러고 보면 Wedding이란 단어가 '경마에 돈을 건다'는 뜻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했던가. 도박이란 결국 몽탕 털리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짜릿함 속에 허탈함이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사랑에는 수명이 있다고 했던가. 상대의 어떤 단점도 좋아 보이는 게 호르몬(페닐에틸아민)의 영향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마법 같은 사랑의 봄날은 유효기간이 있어 길어야 3년 정도라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설렘과 흥분은 쉬이 사라지고 상대의 결점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은 깊어질수록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점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거야. 사랑하기 때문에 둘이 같기를 원하지만 달라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힘겹다는 거지(169쪽)". 그래서 이 시기에 헤어짐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과학적으로 보면 페닐에틸아민이 끝나게 되면 몸에서는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데, 이 호르몬은 서로에게 편안함과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거다. 좋은 사랑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발견해야 나의 일상 속에서 나의만족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나와의 좋은 관계'의 출발점이다(199쪽)". 잭 캔필드라는 작가는 사랑을 '손에 쥔 모래'에 비유했다고 한다. 모래는 손바닥을 편 채 가만히 있으면 흘러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더 꽉 잡으려고 손을 움켜쥐는 순간,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만다. 사랑도 그렇다는 것이다(245쪽). 책의 여러 곳에서 좋은 문구를 빼어 엮어봤지만 사랑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기에 속내를 제대로 풀어내기는 힘들어진다.

 

 

딸아이가 자랄수록 걱정도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 잡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바램이리라. 하지만 아이의 이성 사귐에 대해 오래 말하기 힘들다. 조금만 말이 길거나 감정이 깊어지면 그건 그냥 잔소리에 불과할 뿐일 테니까. 그렇다고 그냥 아이가 잘 판단할 것이라고 믿어버리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동료의 똑똑한 아이가 역시 똑똑한 남성을 만나 같이 유학을 떠났지만, 남자가 정착할 때쯤 갈라서고 말았다. 안쓰러운 일이지만 이런 일을 보게 되면 괜히 마음이 쓰인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남녀가 하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다툼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저 슬기롭게 상대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길 원하지만 이게 어렵다. 옛사람은 그래도 인내라는 것이 미덕으로 몸에 배여 있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성급하고 충동적이라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간단하게 보인다. 알고 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마리는 원인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그 끝이 보이는 법인데, 이 책은 그 원인을 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는 책 같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 후, 그 다름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유도하고 그 접점을 찾아가는 책이다. 조금 획일적 멘토성 글인지라 연애 초입의 콩깍지들에겐 조금 웃기는(?) 책 일 수도 있겠으나, 부모가 되어보면 이 책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딸에게 강추!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버지로서 직접 조언하기 힘든 내용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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