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청소법 - 걸레 한 장으로 삶을 닦는
마스노 슌묘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출간되는 스님들의 글을 읽으면 조금은 단순하군요. 그런데도 수행자 특유의 깨달음과 여유로움이 철철 흘러넘치는 게, 거친 삶을 따라가기 바쁜 나의 어수선한 마음에 탁! 탁! 정신을 바짝 들게 하는 죽비소리 같습니다. 수행자의 삶은 단조로워야 한다던가요? 단조로움은 있는 그대로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수행의 지혜이겠지요.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에 소개되었던 소창청기(小窓淸記)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시냇물은 흐르고 바위는 서 있다. 꽃은 새소리에 피어나고 골짜기는 나무꾼의 노래에 메아리친다. 온갖 자연은 이렇듯 스스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만 공연히 소란스럽구나."... 소란스레 들뜬 마음을 내려놓고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정말 단순함에서 삶의 철학이 꿰뚫어지나 봅니다. 그러기에 저토록 울림 있는 여유를 선사하는 거겠지요.

 

일본의 마스노 슌묘(枡野俊明)란 스님의 <스님의 청소법>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스님들은 수행에서 청소도 중요한 작무(作務)라는군요. 아침 근행(勤行, 시간을 정하여 부처님 앞에서 독경하거나 예배하는 일) 후 일제히 청소를 하고 아침 공양을 한답니다. 그 외에 오전 중과 점심 후, 하루에 최소 세 번은 청소를 한다는군요. 마루를 청소할 때는 걸레를 손에 쥔 여러 명의 수행승들이 나란히 줄지어 동시에 출발하여 십 수 미터나 되는 마루를 맹렬한 기세로 달려 나가면서 걸레질을 한다는데, 초등학교때 친구들과 골마루 닦던 옛날이 생각나는군요. 바람으로 먼지가 날리는 날이면 하루에 다섯 번씩 청소하는 일도 흔하답니다. 이러니 법당은 늘 깨끗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윤이 나는 복도를 볼 때의 상쾌함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답니다. 그 곳에는 자신들의 마음이 닦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책은 이렇게 풀어나갑니다.

 

좌선이 '정(靜)의 수행'이라면 청소는 동(動)의 수행입니다. (58쪽)

 

스님에 의하면 "청소란 마음을 닦는 것! 행복에 이르는 길은 새로운 것을 얻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뭔가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심히 몸을 움직이다보면 얻는 게 있다는군요. 고작 청소라 해도 한결같이 손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 이를 수 있는 경지가 반드시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비질하다가 깨어진 기왓장이 있어서 대나무 숲으로 던졌는데 그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향엄스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 책에도 비슷한 고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마다의 근기가 다르니 깨닫는 방법도 다른 거겠지요. 마음의 흐림을 제거하면 언젠가는 저절로 진실이 보이는 법, 그래서 매일매일 청소를 한다는군요. 자신의 마음을 닦듯이. 찌든 때를 벗겨내듯이...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한다. → 더러움을 제거한다. → 정리 정돈한다.’의 순서로 해나가면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83쪽)

 

일단 각각의 물건이 있어야 할 모습을 재점검하여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여 깨끗하고 심플한 공간을 만들라고 합니다. 필요 없는 물건을 모두 버리고 심플한 상태가 되었을 때,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답니다. 본래의 자신을 되찾으면 자유로운 경지에 접어든 답니다. 청소를 하고 환경을 바꾸고 심플한 상태가 되면,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변하고 풍요로움이 보이고 우주의 대진리를 깨달을 수 있답니다. 그때까지 덮여 있거나 깔려있던 흐림이 제거되어 마음의 거울이 깨끗해진다는군요. 아마 '본래의 자신'과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봅니다. 이거야말로 청소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의 전언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이렇게 권하는군요. "지금 바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먼 곳을 보지말고 발밑을 보세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뭔지, 그것을 찾아봅니다(212쪽)."라고...

 

무심히 청소하는 것은 곧 수행이다!!! 그렇군요. 그래서 육조혜능(六祖慧能) 조사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수스님의 글을 소개하고 있군요. 몸은 보리수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으니(心如明鏡臺), 자주자주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時時勤拂拭) 티끌과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勿使若塵埃)... 무심히 청소를 한다는 것은 '행동을 닦는 것', 즉 다름 아닌 '수행'이라는 겁니다. 이 정도 소개되면 책에는 없어도 혜능조사의 깨달음도 엿봐야지요.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菩提本無樹), 거울 또한 형상 없다네(明鏡亦非臺). 본래 한물건도 없거니(本來無一物)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何處惹塵埃)...

 

결국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새로운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뭔가를 내려놓는 것이라는 게 핵심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나는 마음을 닦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귀찮은 청소시간이 바뀌게 된답니다. 부끄러워지는군요. 제 책방은 정말 답이 없답니다. 이리저리 잡동사니가 꽉 쌓여있어 쉽게 치우질 못하고 있는지라...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더러움과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내다보면 정말 잃어버렸던 내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눈앞의 물건을 바르게 비추는 맑은 마음은 맑은 환경에서 생겨나는 법이라니 마음을 다잡아 주변 정리를 하긴 해야겠습니다. 청소를 통해 얻게 되는 작은 감동에서 저도 마음의 여유와 감사의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그래서 좋은 연(緣)이 엮이도록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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