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과학 -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1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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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란 재단((Edge Foundation Inc.)이 있는 모양이다. 이 재단은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들이 모여 자유롭게 학문적 성과와 견해를 나누고 지적 탐색을 벌이는 비공식 모임으로, 과학과 인문의 단절로 상징되는 '두 문화'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지식과 사고방식, 즉 '제3의 문화'를 추구한다고 한다. 요즘 회자하는 통섭(consilience, 統攝) 학문이나 융합과학의 개념이 여기서 나온 듯하다. 멤버의 면면히 정말 대단하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언어 본능』『빈 서판』의 스티븐 핑커,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생각의 지도』의 리처드 니스벳, 『몰입의 즐거움』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루시퍼 이펙트』의 필립 짐바르도, 『생각에 관한 생각』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등 이름만 들어도 짜릿한 분들이다. 가히 “지적 활동의 중심지”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엣지재단에서 그동안의 지적 성과를 담은 글들을 편집하여 마음, 문화, 생명, 우주, 생각의 다섯 분야로 집대성하였는데, 그 1권이 <마음의 과학>이다.


<마음의 과학>은 '마음'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1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원래 이 글들은 온라인 엣지(edge.org)에 실렸던 거라 한다. 첨단을 달리는 이론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신경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언어학자, 행동유전학자, 도덕심리학자가 '마음'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한다. 처음 책 표지를 봤을 땐 참 재미없겠다, 좀 어렵겠다 싶었다.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이란 부제나, "당대 최고 석학들이 모인 지식의 토론장, 엣지가 집대성한 최첨단 지식 프로젝트"란 띠지의 카피를 보더라도 쉽지 않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엮은 분은 엣지재단을 주도하며 '지식의 전도사', '지식의 지휘자'라고 불리는 존 브록만(John Brockman)인데, 그의 서문을 읽을 때만 하여도 '아~ 이 책, 머리 아프게 괜히 잡은 거 아니냐?'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 읽어나가자 '야~ 이 책 대단하다!!!'는 느낌이 팍팍 와 닿는다. 역시 석학은 명불허전이다. 테마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미래지향적이며, 정말 통섭의 진수가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18개 주제 모두가 흥미로웠지만, 가장 관심이 간 것은 로버트 새폴스키의 "톡소: 인간 행동을 좌우하는 기생생물"편 이었다. 톡소플라즈마(Toxoplasma)라는 원생동물은 흔히 '고양이 기생충'이라 하여 포유동물 세계에 살면서 포유동물의 행동을 바꾸는 기이한 특징을 보인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놀라운 대목은 서로 독자적인 두 연구진이 톡소에 감염된 사람이 무모하게 과속을 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3~4배 높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또한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톡소에 감염되어있을 비율이 높은 듯 하다는 것이다. 설치류의 실험 결과, 톡소가 공포와 불안의 신경회로를 망치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겁을 상실했다는 건데 미국 군대에서도 여기에 관심이 많은 듯하고(영화 Universal Soldier가 언뜻 떠오르넹), 톡소 감염과 정신분열증 사이에 통계적 연관성이 있다는 내용도 주목할 만했다. 정신분열증과 임신 중에 집고양이를 기른 산모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으며 그에 관해서도 많은 문헌이 있다고 한다. 톡소의 정신의학적 상태에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게 바로 고양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외에도 제프리 밀러의 "성선택(sexual selection)과 마음"도 재미있었다. 우리 마음이 생존 기계가 아니라 구애 기계로 진화했다는 주장인데, 진화 관점을 지금까지의 생존 위주에서 구애 위주로 바꿈으로써 마음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한마디로 짝을 고르는 성선택도 진화를 촉진한다는 이야기인데 역시 흥미롭다. 인지발달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앨리슨 고프닉의 "놀라운 아기"편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기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에 마음을 연다. 아기가 선천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보면 "아기는 아기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니컬러스 험프리의 "지닐 만한 자아"는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수술로 뇌 뒤쪽의 일차 시각피질을 전부 들어낸 눈먼 원숭이의 관찰에서 시각피질에 광범위한 손상을 입은 사람도 어느 정도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아내는 내용인데, 무의식의 시력(맹시 盲視)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엑스맨>의 뮤턴트(mutant)나 <토탈리콜>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도 있어 흥미로웠고, 인지과학도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었다.


마음은 본래 체화해 있다.
생각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추상 개념은 대개 은유적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몸의 철학"에서... 313쪽)


정말로 지적인 책이다. 문학소설이나 단편적 통섭학에서 느끼지 못한 지적 허영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책이었다. 특히 미래지향적 융합과학 연구의 흐름을 탐색하고자 하는 이에겐 보배와 같을 것이다. 하긴 이 정도의 지적 수준에 올라있는 분들은 엣지 사이트에 바로 접속하여 읽어보겠지만, 이렇게 문서화된 책으로 한번 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반쪽'에게도 추천하였다. 과학적 진보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을 볼 것을 권해 본다(수준이 좀 높다는 것을 감안하시길... 그래도 흥미롭다). 아 참, 여기서 하나 짚어둬야 할 게 있는데, 이 책의 곳곳에서 촘스키의 여러 이론이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히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시대의 지성인게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촘스키에 대해 공부 좀 해야겠다. 어쨌거나 이 책은 마음에 대해 평소 생각하고 있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사족 : 책 겉표지를 벗겨내면 하늘색의 양장표지가 나오는데 참 깔끔하다. 이게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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