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철학하기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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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학문은 참 설명하기 힘든 추상성이 있다. 보통 사람의 생각 있는 말은 개똥철학이 되고, 인지도 있는 사람의 개똥같은 허접한 말은 뭔가 있어 보이는 철학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잠시 철학이란 단어로 서핑을 해 보니 역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개념이 잡힌다. 인용해 보면, 소크라테스 및 플라톤은 철학을 단순한 “지식의 전달” 내지 “지식의 과시”로 보는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철학을 참다운 앎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정의하였으며, 이를 얻기 위해 대화를 통한 비판적 자기 검토를 통해 올바른 실천적 행위를 중요시했다고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인간 바깥의 자연세계 및 우주에 대한 이론적 앎, 그리고 인간의 올바른 행위를 다루는 실천적 앎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이렇게 적어 봐도 '철학은 이런 것이다'라고 딱 와 닿은 것은 아니지만, 대략 철학이란 '왜 사는가.'와 같은 원천적인 문제를 짚어보는 학문이라고 어림짐작은 된다.

 

이렇게 철학의 개념이 언제나 확실히 정립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한창 생각하고 배울 시간에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철학의 이론적 접근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사유(思惟)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늘상 시험용 영어문법만 배우다보니 정작 외국인 만나 말 한마디 못하는 거와 같은…. 그래서 회화를 중시하는 실천적 영어교육이 도입되는 것처럼, 철학도 언어가 아닌 '체험'으로 느끼게 하는(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배이게 하는) 책들을 근자에 많이 보게 된다. 체험은 생각의 바탕에 자신만의 형상을 만들고, 이것이 정립되어지는 과정에서 창조적 사유가 이루어지고 이는 곧 자신만의 철학이나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읽은 《일상에서 철학하기 : 101 Experience de philosophie quotidienne》는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문자화되어 고리타분하고 잠만 오는 철학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행동하고 생각함으로써 사유를 체화(體化)하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비트겐슈타인)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마음이 마치 개구쟁이 같은가 보다. 이 책에 제시하는 101가지의 철학 체험이 공부라기보다는, 일종의 엉뚱하고 이상한 '웃기는 짬뽕' 같은 놀이에 가깝다. 목차만 봐도 이 책이 얼마나 흥미로운 책인지 바로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낱말의 의미에 구멍 내기(일상용어라는 그 가느다란 그물 밖으로 빠져나가자마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낯선 존재로 변해 버린다)', '풍경을 그림처럼 접어보기(접히는 세상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오줌 누면서 물 마시기(돈 한 푼 안들이고 새로운 발견과 경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꼭 실천!)', '상상으로 사과 깎아보기(이거 쉽지 않다. 엄청난 훈련과 특출한 자제력이 필요하다)', '공원묘지에서 달려보기(이건 소싯적에 밤낮으로 해봤는데 정말 시간과 삶, 움직임과 멈춤의 경계가 없어진다)', '우연히 낯선 여인 발견하기(오해받기 십상이지만,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다)', '죽은 새를 무심하게 쳐다보기(오로지 현재만 있다)', 파란색 음식물 찾기(파란색이여, 너의 이름은 수수께끼!)', '순간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삶의 한 조각을 기록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간 속에서 아주 작은 삶의 파편을 도려내는 행위임을 기억하라.)' 등이 인상적이었다.

 

 

 

추석 때 고향에 가면서 이 책을 가지고 갔다. 집안 자랑 같지만 이번에 중3 조카 녀석이 서울과학고에 합격을 했다(한국과학영재학교에도 1차 되었는데 부산에 안내려 오려고 해서… 음... 자랑 맞구나.^^...). 요 녀석에게 이 책을 던져주면서 퍼뜩 읽고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부담(?)을 좀 줬더랬는데... 반응이 의외로 '자신이 원하던 책이다.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이러는 거 아닌가. 그래서 현실에서 이런 행동을 실제로 하면 남들이 어떻게 보겠냐? 물었더니 '아마도 4차원 인간' 취급받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철학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스스로 느끼는 것'이라고 결론 내려주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책의 독자층이 중학생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어쩌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즈음에서 읽어줘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작은 그릇 속에 많이 담는 용도의 책이 아니라, 많이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드는 게 목적인 책이기 때문이다(이건 딸 아이와의 논쟁에서 아이가 한 말이다). 이래저래 지각(知覺)있는 학생들에게 권장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런 목적을 따지지 않더라도 학습하고 이해해야하는 철학이 아닌, 지쳐가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유쾌한 철학실천서가 분명하다.

 

덧붙임 :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찾아보니 2003년에 출간된 《101가지 철학 체험》의 개정판이었다. 그래도 몇몇 내용만 기억날 뿐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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