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김.연.수.!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벗님 중 김연수 작가에 매료된 분을 여러 보았다. 특히 인상적인 분으론 미국에 거주하는 여성 블로거 hong님이다. 이 분은 김연수 작가의 작품은 안읽은 게 없을 뿐만 아니라 꿈속에서 작가를 만나기도 하였고, 지금도 작가의 최근 작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을 신청해 놓고 책이 빨리 태평양을 건너오길 엄청 고대하고 있는 분이다. 책이 도착할 때까지 그 허전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아쉬운 대로 북트레일러를 링크해 놓고 틈나는 대로 보고 들으면서 도착하면 바로 읽겠다고 벼루고 있다. 이 분의 블로그에 들렸다가 이런 내용을 보고 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출판사에서 서평단 모집을 하기에 어찌어찌 지원을 하게 되었는데 바램이 통했는지 이렇게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연수 씨는 나에겐 생소한 소설가다. 평소 소설보다는 비소설 분야의 책을 더 많이 읽고, 소설을 읽더라도 작가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소설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껏 이 작가의 글을 안본 것은 아니다.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사거나 빌려보거나 매번 읽기에 몇 편의 소설을 봤을 터지만 작가의 이름으로 소설을 연결시키기엔 무리가 좀 있다.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소설 마니아가 아니다보니 그런 걸….


어쨌든 큰 기대를 가지고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을 손에 잡았다. 표지는 조금 촌스럽지만 그런 대로 나쁘진 않고, 하드커버의 양장이 일단 마음에 든다. 책장을 펼치니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는 문장이 나의 눈을 끈다.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바닷가에 살고 있는지라 이 글이 성장기 나의 추억의 한 편린으로 재해석되어 잠시 옛 연인을 떠올린다. 흠….
제 1부 '카밀라'를 읽어나가면서 약간의 실망감이 마음을 채운다. 열일곱 여고생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생후 6개월쯤 미국으로 입양된 주인공 카밀라 포트만. 그녀가 낸 책의 한 사진에 주목한 어떤 출판사의 제의로 사진 속 엄마를 찾아 한국의 '진남'이란 항구도시로 찾아온다. 입양 당시의 낡은 사진과 8년 전 친모의 오빠에게서 온 편지 한 장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가지만, 자신의 출생 비밀에 대한 묘한 외면에 당황한다. 그 와중에 엄마가 재학했던 진남여고의 도서반 문집에서 엄마 정지은의 앙케이트 글을 읽고 자신의 이름이 '희재'라는 것을 알아낸다. 또한 자신이 입양된 그 해 여름의 어느 밤, 바다에 투신자살하였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평범하고 진부하다. 일본계 미국인 약혼자 유이치와의 관계나 진남으로 동행한 서 교수의 이야기가 주인공이 풀어나가는 주된 스토리와 그다지 연결되지 않는다. 기대만큼의 훌륭한 문장력이 아니지 않은가….


제 2부 '지은'을 읽으면서 김연수 작가가 왜 인기 있는 작가인지 알아챈다. 유이치가 보낸 마지막 메일에서 작가의 글맛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전체적으로 글을 짜가는 재능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다. 화자는 희재의 엄마 '지은'이다. 희재의 동선과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서 출생의 진실이 무엇인지 읽는 사람의 궁금증을 최대한 끌어당긴다. 희재의 아버지는 정말 누굴까? 왜 엄마는 희재를 낳았을까? "짧게 네 번, 길게 세 번, 짧고 길고 길고 짧게, 짧게 한 번"이나 " 태풍이 불어오기 전 날의 검모래", "그대가 들려주는 말들을 내 귀로도 들리고"란 소제목에 어울리는 글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 3부는 '우리'다. 지은의 자살이 있기까지 직, 간접적으로 공기의 흐름을 나누었던 여고시절의 친구들이 진실의 문을 열어 나간다. 글이 다시 재미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람의 말'이 긴장의 끈을 잡아챈다. 바람의 말이 바로 풍문임을 왜 나는 얼른 알아채지 못했을까? '바람의 말 아카이브'에서 정은의 친구였던 영화감독 조유진은 "심연"을 이야기 한다. 의미가 깊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날개는 꿈과 같은 거라고,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거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걸 말하고 싶은 거다. 가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고 있는 거다. 주제가 있는 소설, 우리의 결핍을 보담는 인간 본연을 이야기하는 소설인 것이다.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심연을 건너가는 것, 우리가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는 것, 혹은 당신이 내 소설을 읽는 것, 심연 속으로 떨어진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327쪽 작가의 말 끝부분)." 작가는 조유진의 말을 통해 이 책의 의미를 살푼 내비친 것이다. 심연은 그 깊이만큼 무수한 말들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독자가 직접 그 심연에서 뭔가를 찾아내길 바라고 있다. 서 교수의 어머니가 부당해고 투쟁 끝에 돌아가시는 장면에서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노랫말이 입가를 스치고, 지은의 아버지가 타워 크레인에서 투신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극한의 비인간적 노동환경에서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찾으려고 애를 써본다. 우리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고 했던가. 이즈음에서 문득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떠올린다. 그의 저서 <고백>에서 "한 인간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그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10.3.3)."고 하였다. '의식의 심연'은 이렇게 가장 불투명할 것 같은 영역이지만, 자신의 영혼만은 오히려 가장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연수 작가는 은근히 독자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혼란과 좌절, 미움과 단절을 들여다봄으로써 피상(superficiality)이 아닌 깊이(depth), 즉 텍스트뿐만 아니라 컨텍스트를 살펴보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심연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까.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기에 때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느끼는 법이다. 내가 찾은 것은 무얼까? 나는 희재가 희재를 만나는 마지막 부분에서 서로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저자의 생각을 짚어본다. 그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두 도시를 대입시켰다. 여수와 통영이다. 두 도시는 참 비슷하다.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행정적 이질감만 떼어버리면 형제나 다름없는 도시 같다. 둘 다 매우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엇비슷한 조선소가 있으며, 두 곳 모두 남도 동백으로 유명한 생태환경에, 모두 배 김밥(충무김밥)의 고향이며, 조선시대 통제영의 진이 있어 곳곳에 '진남'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비슷하게 양관(일제 때 지은 서양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여고 또한 비슷한 역사와 분위기이다. 하지만 소설은 두 도시 중 여수를 더 배경으로 한다는 느낌이다. 작가는 어느 도시를 더 생각하였을까?

연재소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의외로 잘 짜여진 여백의 미에 여운을 즐겨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마음의 만족도 변화를 한번 그래프화 해봤다(아래 참조). 느낌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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