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Wisdom Classic 7
김경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학부 때 읽었는데, 젊은 혈기 때문이었겠지만 읽다가 분노가 일어 정말로 책을 던져버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군부독재 통치자가 행하는 모든 압박의 이론적 근거가 그 책에 그대로 다들어 있었다. 군주론의 핵심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확대하는 일이라면 모든 종교적, 윤리 도덕적, 논리적 가치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악해져야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밀어붙이라는 건데,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물론 혼잡한 당대 이탈리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이 분명 타당성을 가질지 몰라도, 이런 비민주적인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은 이해도 안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수치라 생각 했다. 민주와 인권은 오간 데 없고 폭압적 정치행위가 무슨 사상이란 말인가. 어쨌거나 이런 통치의 지침은 우리 시대의 독재자에게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래의 두 문장을 보면 이 무슨 조폭의 발상인지 그 저급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 (군주론 3장)
○ 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말고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려는 군주는 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군주론 15장)


졸업을 하고 세월이 흐르자 군주론을 조금 달리 보게 되는 일들이 생겼다.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인고의 시대가 도래하자 통치자의 행위와 경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권위주의 시대에 이룩한 경제 발전은 노동자의 착취와 세계 최고의 외화채무에 의한 빛 좋은 개살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직장인들이 거리로 쫓겨나는 현실에서 군사독재시대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나의 잣대가 편향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누적된 빚잔치의 결과라고 하지만 그 시대에 경제도약과 무역흑자, 그리고 역대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허상이었다고 애써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게다가 군부독재가 종식된 후 자유와 인권의 급격한 신장에 끼어든 '방종(放縱)'은 곳곳에서 역겨운 사회적 부조화 현상을 일으키니 처처에서 '과거가 좋았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는 판이다. 노예근성 몸에 배였다고 매도만 할 것이 아니라 정의롭고 강한 나라를 바라는 서민의 마음으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오늘의 리더십 부재는 묘하게도 과거의 압제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니 우리가 군주론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비난하였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래의 문장을 보면 꼭 누구의 변명 같지 않은가.


○ 악덕을 행사하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하기 힘든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오명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행사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미덕처럼 보이는 것도 실행했을 때는 파멸로 이어질 수 있고 반면에 악덕처럼 보이더라도 행하면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 15장)
○ 현명한 군주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일만이 아니고 먼 장래에 있을 분쟁까지도 배려해야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대처해야 한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그냥 보고만 있으면 그 병은 악화되어 불치병이 된다. (군주론 3장)


이야기가 군주론으로 흘러가 버렸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군주론>이 아니라 김경준씨의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이란 책이다. 저자는 불혹의 나이에 군주론에서 개인과 조직의 생존 및 번영을 위한 보편적 진리를 찾은 모양이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적 리더십을 중시하여 군주론을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로 치켜세우고 있는데, 그대로 수용하기엔 조금 불편하나 '이상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대체로 알아보겠다. 저자의 핵심은 선과 악의 피상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변화를 주도하고 번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군주론에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마키아벨리즘이 비열한 권모술수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였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까놓고 보면 정말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의 국경 없는 경쟁이나 복잡하게 얽히는 외교·국방의 영역에 들어서면 의외로 군주론의 내용에 많이 공감하게 되니 말이다.

○ 군주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나라와 손잡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것은 승리를 거두어도 그 자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군주는 될 수 있는 한 남의 뜻대로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군주론 21장)

○ 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때는 군주가 한 나라를 지지하는 데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렇게 한 쪽을 돕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면 구할 수도 있는 반대쪽을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지원을 받은 편이 적국을 물리쳤다고 하더라도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군주를 따르게 된다. (군주론 21장)


사실 직장의 간부가 되어보니 민주적인 방법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알겠더라. 당장 눈앞의 성과달성을 위해서는 단합된 팀웍으로 일사불란하게 나아가야 하는데, 항상 부정적인 발언으로 김을 빼는 직원이 있다. 좋은 결과를 위해 몇 번이나 '썩은 사과'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결국 내가 택한 것은... "군주가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가 하는 점이다. 누구나 양쪽을 갖추기를 원하겠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다. 만일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군주론 17장)". 이런 점에서 보면 군주론은 썩은 조직을 활성화 시키는데 일종의 지침이 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수단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군주 또한 모양새 좋게 챙길 것은 챙겨야 할 건데 이 점에 관한 군주론의 조언을 한번 보자. 어째 작금의 리더를 떠올리게 하는 뭔가가 있어 보인다.

 

○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군주는 귀족을 존중하는 한편 대중들의 미움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주론 19장)

○ 타인에 의존하는 경우는 항상 실패한다. 자력으로 추진할 때에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래서 무장한 예언자는 승리할 수 있으나, 말뿐인 예언자는 멸망하게 마련이다. (군주론 6장)


이 책이 군주론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여러 사례를 적절하게 소개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군주론을 지금 시대의 패러다임에 끼워 맞출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합종연횡과 전략적 제휴의 본질은 우정이 아니라 이익이다', '경쟁과 변화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지배하지 않으면 남이 지배한다.', '강한 자에게는 운명도 고개를 숙인다.', '멀리 내다보고 깊이 생각하라'는 제목만 봐도 군주론을 재해석하는 저자의 생각 깊이를 알 수 있으나, 당장의 이익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고 정도에서 벗어난다면 얻는 것보다 더한 상실과 파괴를 가져온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곧 대선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우리는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대선 후보군에서 군주론이 어울릴만한 분은 없어 보인다. 모두 민주적이며 자기 몸을 희생해 구국의 결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주론에 의거하여 건질만한 조언들은 몇몇이 있다. 서구의 속담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던가. 복지 포퓰리즘에 무너지고 있는 유럽의 몇몇 나라를 보면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선의(善意)가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 되고 말았다. 표심을 잡기 위해 남발하는 대중영합주의 공약은 공동체 전체를 회복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책 속에 나오는 내용 두 가지만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 마키아벨리는 리더가 관대한 정신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나, 물질을 베풀어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으려는 것은 파멸의 전주곡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으로 충분한 연예인이과는 달리, 리더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감수하더라도 공동체의 기초체력을 키우고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리더는 진정으로 관대해지기 위해서는 인색하다는 악평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리더란 대중의 인기에 울고 웃는 연예인이 아니라 올바르게 인정받는 리더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71쪽)

○ 마을에서 유부녀가 바람났을 때 모두가 아는데 단 한사람만 모르고 있다. 그 사람은 남편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정작 중요한 정보에서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지위가 높을수록 생생한 정보에서는 멀어지는 역설이 생겨난다. 리더는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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