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판도라의 상자! 인류가 겪는 온갖 불행의 시작이며 한줄기 희망의 상징.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릴 적부터 두어 번 이상 보고 자라나는 시대인지라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고 본다. 인간을 몹시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고, 이를 신성모독으로 여긴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묶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게 하는 형벌을 가한다. 그럭고도 화가 안 풀린 제우스는 불을 함부로 선물 받은 인간들에게도 벌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비밀병기 '최초의 여인 판도라'를 탄생시켜 프로메테우스(미리 보는 자)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나중에 알게 되는 자)에게 보낸다. 어찌어찌하여 판도라는 제우스가 보내온 상자를 호기심에 열자마자 상자 안에 있던 불행, 고통, 탐욕 등 나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제우스의 고단수 전략으로 인류에게 재앙이 주어진 것이다. 물론 희망이란 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은 짜임이 참 신선하다. 나는 지금껏 판도라 상자에서 어떤 재앙이 어떤 순서로 튀어나왔는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오히려 이런 부분에 유의하여 그 하나하나의 저주를 나열하고 이를 신화 속의 주인공들과 연결시켜 글을 풀어나간다. 희망과 함께 상자 속에 들어있다가 세상으로 튀어나와 고통과 시련으로 만들었던 것, 이 세상에 남아 인간을 지배하는 것들, 그리고 인간에게 끊임없이 불행과 희망의 역사를 선물한 판도라 상자의 상징성에 주목하여 우리네 고단한 삶과 연결을 시도한다. 그래서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신화 속 영웅은 주어진 변화에 창조적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인물임을 이야기 한다. 결국 저자는 신화에 기대어 자기경영의 해법, 즉 인간은 신화 속의 영웅처럼 '창조적 변화로서의 변신'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제야 이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그렇다. 이 책은 이렇게 자기관리를 지향하는 책이다.

 

과연 판도라 상자 속에 들어있던 불행과 악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순서로 튀어 나왔단 말인가?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번 나열해 보자. 시간(인간이 시간을 알자 유한해졌다), 욕정(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변화(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 자아에 대한 무지(누구나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자기애(자신을 사랑하느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배고픔(인간은 결핍 속에서도 기쁨을 건져낸다), 분노(무모함에 발화하고 언제나 후회라는 재를 남긴다), 혐오(끊임없이 잘못을 찾고 결점을 들추어낸다), 희망 없는 일의 반복(이보다 더 무서운 형벌도 드물다), 아름다움이라는 유혹(제우스가 남자에게 준 가장 멋진 저주이다. 맞다.) 열한 번 째 부터는 그냥 타이틀만 적자. 허영, 거짓말, 탐욕, 집착, 과도함과 지나침, 오만, 비웃음, 골육상쟁, 잔혹함, 폭력, 운명, 불복종, 실타래(사람들은 희망만 상자 속에 남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하나 더 있다. 오직 아는 자만이 안다), 사유의 불능, 이별, 탯줄(탯줄이 있어 인간은 의존하고 늙고 죽는다), 교활, 복수, 불균형……. 참 많기도 한 인간 슬픔의 존재들이다.

 

어쨌거나 신화 속에 저자의 동서양 철학지식을 접목시켜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거기에서 자신의 변화에너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상당히 독창적으로 느껴진다. 저자의 의도야 우리 안에 신이 있고, 신은 우리 안에 자신을 숨겨두었기에 인간은 영웅적인 내면 여정을 통해 갈등과 충돌을 대통합하여 위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수 있다는 건데, 그리스로마 신화로 이렇게 체계적으로 자기관리 영역에 접근하는 책을 어디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뭔가 설익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신화를 재해석하고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데 까지는 잘 엮어나가다가 자기경영, 자기관리의 경계에 이르면 매끄럽지가 않다. 꼭 시간에 쫓겨 원고지를 마감한 느낌, 바로 그 서걱거림이 뒷맛으로 남는다. 자신의 일상적 이야기와 정제된 해법이 혼재되어 판도라 상자가 펼쳐놓은 고해(苦海)에서 우리가 건져야 할 의미의 일관된 흐름을 놓치게 된다는 거다. 자신의 생각을 '인간 독법 바이블'로 승화시키기엔 보다 간결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미완의 보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조금만 간결하게 다듬으면 아주 좋은 명품의 책이 될…….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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