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느리게 걷기 느리게 걷기 시리즈
이경원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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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통영! 동양의 나폴리라 일컫는 한려수도의 항구도시. 세계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를 가본 적 없는 나로서는 비교가 불가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리라. 사실 통영을 가보면 별로 볼게 없다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난 이렇게 말한다. "통영? 하루 볼거리만 찾으면 별 것 없지. 하지만 적어도 보름 정도 있어보면 저절로 알게 돼". 통영은 그런 도시다. 수려한 다도해의 경관과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간직한 곳, 자연과 역사 이상의 문화적 코드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곳이 통영이다. 몇 년 전인가 어떤 잡지에 "통영은 세계적으로 인구 대비 예술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도시"라고 소개된 적이 있다. 그렇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토지의 박경리, 청마 유치환과 동랑 유치진 형제,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전혁림 화백 등을 배출하였고, 이외에도 현재 수많은 문인과 음악인이 활동하고 있는 예향(藝鄕)이다. 체육인으로는 김호 감독, 고재욱 감독, 김호곤 감독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스타가 많은 도시이다. 풍수학에 의하면 주산(主山)인 여황산 보다 객산(客山)인 미륵산이 더 높아 그렇다고 하는데 이건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고……. 여하간 통영이란 도시가 가지고 있는 뭔가가 예술적 소양의 토대가 되기에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통영을 여행하고자하는 분들은 무얼 얻고자 할까? 단순 관광? 그렇다면 한려수도의 풍광과 세병관·충렬사 등 이순신 장군의 유적, 통영 주변의 비진도·매물도·한산도·욕지도·연화도·사량도 등의 아름다운 섬, 그리고 통영이 가지고 있는 동피랑 벽화마을이나 남망산공원·이순신공원 등을 한 바퀴 돌면 될 일이다. 여기에 문화적 코드를 곁들이면 위에 언급한 예술인들의 생가나 문학관, 기념관 등을 방문하면 되고, 여기에 향토색 짙은 '충무 뚱보할매 김밥'이나 계절에 따라 시락국밥이나 멍게비빔밥, 굴영양밥, 졸복국, 빼때기죽, 생선회 등을 선택해 보양한다면 또 다른 여행의 한 갈래가 될 것이다. 이것이 전부일까? 아니다. 통영의 문화적 토대는 정말 다양하다. 통영나전칠기, 통영소목, 통영누비, 통영연(鳶), 통영오광대, 통영 승전무, 통영 동백화장품 등등 아기자기하면서도 기품 있는 공예품을 살펴봐야한다. 바닷가 특유의 활기를 느끼려면 새벽 어시장에도 가봐야 한다. 적어도 용화사·도솔암·미륵산(461m) 정도는 걸어올라가 다도해를 느껴봐야 왜 이 산이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지 알 것이고, 그런 다음 효봉스님과 법정·구산스님, 그리고 고은 시인이 환속(還俗)하기 전 구도 정진의 길을 걷던 미래사(彌來寺)로 내려와 편백 숲 정도는 걸어 봐줘야 통영이 보인다.

 

<통영, 느리게 걷기>란 책이 나왔길래 얼른 손에 잡아보았다. 책이 배달되어오기까지 어떻게 통영을 풀어내었는지 너무나 궁금하고 기대에 차 있었다. 책을 받으니 의외로 얇은 두께(181쪽)에 얼핏 놀랬다. 빠르게 훑어본 후 다시 정독을 한다. 통영이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는 다 있는데 뭔가가 부족하다. 실망이 무더운 여름의 공기에 실려 부풀려진다. 적어도 <느리게 걷기>란 타이틀이 붙었으면 제주도 올레길 소개 책자 정도의 일정별, 취미별, 시간별 여행코스(그림지도 포함) 소개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통영 이얏길'에 대한 언급도 없고 이건 그냥 인터넷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나열에 불과하다. 즉,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통영 사람들은 내 글을 읽으면서 순 엉터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라고 했던 것일까? 물론 통영에 잘 모르는 외지인들에게는 이 정도의 책만으로도 통영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영은 이 책의 3배 이상 쪽수로도 담기 어려운 역사, 문화, 예술의 향취가 스며있는 곳이다. 정말 느리게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지, 왜 그들이 늦게 걷고자 하는지 이 책은 그 목적을 잃고 있다. 그냥 <통영 안내서>일뿐인지라 읽는 내가 난망하다.

 

통영! 해질녘, 남망산 공원 예능전수관 옆 벤치에 앉아 파도와 바람에 떠밀려온 공주섬 정도는 봐줘야하고 어둡지만 장좌섬쪽 방파제 정도는 걸어줘야 느리게 걷기가 아닐까. 통영음악제나 철인3종 경기는 매니아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충렬사나 세병관에서 북포루 까지 걷는 코스 정도는 소개해 줘야 하지 않을까. 경상대 통영캠퍼스까지 걸어가면서 운하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코스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김약국의 딸들의 명정골 걷기 이런 문화콘텐츠는 없는 걸까. 사진만 해도 그렇다. 세병관 현판이 어쩌다~하면서 정작 사진은 지과문(止戈門)을 소개하고 있다. 세병관의 중요도가 지과문에 떨어지는 걸까? 비진도만 해도 그렇다. 비진도의 특징은 두개의 다른 바다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는 거다. 한쪽은 백사장이요, 반대쪽은 자갈마당의 바다……. 소개된 사진은 비진도의 장점을 살려내지 못하는 이상한 풍경이다. 전체적으로 관공서에서 발간하는 지역관광소개 책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에, 단순 관광객의 안내서가 아닌 <느리게 걷기>에 도전하는 순례자를 위한 책자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함으로 와닿는다.

 

사실 나의 불만은 저자의 잘못이 아니다. 이러한 문화 콘텐츠는 시의 역량과 관련된 문제이다. 단순 관광 중심의 관광객 유입은 이제 내리막일 수밖에 없다. 스쳐가는 통영이 아니라 머물고 거닐 수 있는 문화예술적 여유의 공간으로 통영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통영이 대전통영 고속도로, 케이블카, 이순신 공원 등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된 인프라를 갖춘 것은 맞지만, 이제는 이들 인프라와 역사적 유산, 문화·예술적 자산을 아우르는 '통영 이얏길' 등 휠링 콘텐츠를 많이 개발하고 정형화하여 '슬로 시티(Slow City), 통영'이란 아이템으로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통영! 바닷가 특유의 거친 성향도 있지만 그 속에 강직함과 순박함을 내포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 정도의 책자를 발간하기까지 통영을 사랑하고 알리려는 저자의 노고야 말안해도 알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 통영 관련 책을 발간하고자 하는 분은 제주 올레길이나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이 머물고 싶고, 걷고 싶은 통영을 소개하였으면 한다. 통영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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