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 오늘의 중국을 이끄는 힘 - 현대 중국의 중심에 선 2인자
이중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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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국의 고대사에서 특출한 2인자(주공, 관중, 이사, 소하, 진평, 제갈량, 장거정)들을 소개한 책을 읽었다. 이들은 탁월한 지혜와 계략으로 개성 강한 군왕을 보좌하며 위대한 대업을 이룩해 낸 시대의 책사들이다. 모두 대단한 분들이지만 여기에 한 분만 더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꼽는다. 앞서 언급한 일곱 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남음이 있는 분이다. 50여 년 중국의 혁명에 헌신했고, 27년간 총리로 중국의 건국과 현대화에 이바지했던 저우언라이. 중국의 신화통신은 "마오(毛)가 없었으면 중국 공산혁명의 불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저우(周)가 없었다면 혁명은 재가 됐을 것이다"며 그를 애도했다. 만약 저우 총리가 없었다면? 나는 G2의 위상을 자랑하는 오늘의 중국은 없었을 거라고 단언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 : 사실에서 진리를 찾는다)와 온중구진(穩中求進 : 안정 속에서 전진한다) 정신을 실천하는 그가 있었기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실용주의노선에 입각한 과감한 개방ㆍ개혁 조치를 단행할 수 있었고,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 등 실무현장경험이 풍부한 테크노크라트가 중국경제를 크게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지성과 통찰력, 인품과 정치적 수완까지 모두 갖춘 이런 최고의 리더가 중국 근현대사에 있었다는 것, 이념을 뛰어넘어 너무나 부럽다.


중국의 근현대사는 마오쩌둥-저우언라이-덩샤오핑으로 이어지는 건국 리더들의 이야기를 빼면 설명하기 힘들다. 흔히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혁명이라고 평한다. 마오쩌둥이 산이라면 저우언라이는 물이고, 덩샤오핑은 길이다. 마오는 중국 역사에 우뚝 솟은 산으로 그의 이념과 영도력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으며, 저우는 부드럽고 융통성 있는 정치로 강이 흐르듯 막힘이 없고, 덩은 중국을 부강한 나라로 인도하는 길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마오가 지난 세기 확실하게 우뚝 솟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저우를 징검다리 삼아 덩샤오핑의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따르지 않았더라면 그에 대한 평가는 정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은 문화혁명의 광풍에서 살아남은 저우언라이가 정치적 지향과 성격이 판이한 두 시대를 매개하는 역사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냄으로써, 마오가 문화혁명으로 후퇴시킨 중국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개혁개방의 새 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히 강물처럼 유연한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공산혁명이란 배는 움직이지 않았을 거란 찬사를 들을만한 위대한 업적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저우언라이, 오늘의 중국을 이끄는 힘』이다. 책의 띠지 카피를 보면 "지난 반세기, 중국은 마오쩌둥의 머릿속에 있었고, 저우언라이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중국의 히든 브레인 저우언라이, 세계를 넘보는 중국은 그의 손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되어있다. 이전에 저우언라이 평전을 읽기도 했지만, 이 책도 저자 나름의 상당한 연구와 감각이 괜찮게 다가왔다. 중국공산당 통설에 의한 일반적인 업적이나 위대함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저우와 관련된 인물들의 행동양식이나 행태, 특성에 주목하여 풀어나가는 것이 과장되지 않고 가깝게 느껴졌다. 연대기를 기본으로 사안에 중점을 두어 서술해 나가는데 긴 서문이 인상적 이었다.

1장은 운명의 파트너 마오쩌둥과의 만남과 마오를 선택하고 추대한 인과(因果), 덩샤오핑을 통해 그가 그려낸 중국의 미래, 그의 죽음 등 개괄적 감상이 적혀있다. 2장은 코뮤니스트로서의 저우언라이를 살펴보는데, 시안사변으로 억류된 장제스를 만나 항일 국공합작을 이뤄내는 대목은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손권과 담판, 조조군에 맞서 적벽대전을 치루는 이야기와 싱크로 100%니 언제 읽어도 흥미롭기만 하다. 3장은 중국 외교술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저우의 외교 업적을 조명하고 있다. 장제스와 마오의 충칭회담, 스탈린과의 모스크바 담판, 미국과의 핑퐁외교와 관련하여 저우의 기민한 외교술과 화술이 돋보인다. 이 장의 내용 중 중국 인공위성과 미사일의 대부인 첸쉐선(錢學森)박사와 중국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 젠-20을 만드는데 기여한 스창쉬(師昌緖)박사의 귀국에 저우가 관여한 대목은 박대통령 시절의 과학자 초빙과 오버랩 되었다.


4장의 문화혁명 10년. 이 광폭한 기간에 저우는 비서나 보좌관도 거느리지 못한 채 혼자서 시대의 역풍에 맞서야 했다. 이 기간 그의 좌우명이 "국궁진췌(鞠躬盡?) 사이후이(死而後已)"였다고 한다. 이 말은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가 원전으로 "삼가 공경스럽게 저의 몸을 바쳐 수고로움을 다할지니, 다만 죽은 뒤에나 그칠 따름입니다"라는 뜻이다. 목숨이 붙어있는한 신명을 다해 인민을 위하겠다는 비통한 절규에서 그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 기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총리가 당직실에 두 명의 간사만 두고 24시간 일에 매달려야 했던 것이 문화혁명이었다. 저우는 인내의 달인이기도 했지만 시기포착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장칭(江靑 마오의 부인)과 4인방의 견제를 뚫고 덩샤오핑을 부총리로 복직시킴으로써 저우의 '4개 현대화 목표'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또한 문혁의 회오리 속에서도 미국대통령을 불러들여 대미 관계를 풀었고, 유엔에도 가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무렵 저우는 소변에 비정상적 적혈구가 나타나면서 건강이 안좋아졌고, 마오쩌둥이 죽기 8개월 전인 1976년에 세상을 떴다.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몸보다 조국의 운명과 당의 미래를 걱정했던 저우언라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장 '중국인 저우언라이, 혁명가 저우언라이'편은 그의 성장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이 장에서 "양탄일성과 저우언라이"에 대한 부분이 읽을 꺼리였다. '양탄'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며 '일성'은 미사일을 의미한다. 문혁으로 지식인들이 죽임을 당할 때 저우는 '보호 명단'을 만들어 한 무리의 과학자들을 보호한다. 이 중 로켓 전문가 투서우어(屠守鍔)는 중국 첫 대륙간탄도탄과 '장정-2호'로켓의 설계사이며 뒷날 유도탄 '비어 飛魚'를 성공시킨 사람이다. 중국의 양탄일성 개발에 핵심역할을 했던 녜룽전(??臻)은 이 모든 공을 저우언라이에게 돌리고 있다. 핵무기 개발을 넘어서서 항공우주산업 분야까지 중국의 군사적 약진 중심에 저우언라이 총리의 방향제시와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는 대목을 읽노라니 "나는 공산주의자이기 전에 중국인이다"라고 말했던 그의 애국충성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2011년 6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저우의 <육무 六無 : 여섯 가지가 없음>를 기사화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사불유회(死不留灰) : 저우 총리는 죽어 뼛가루도 남기지 않았다. 둘째, 생이무후(生而無後) : 생전에 후손도 두지 않았다. 셋째, 관이부현(官而不顯) : 관직에 있으면서 스스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넷째, 당이불사(黨而不私) : 당 사업을 하면서 사조직을 꾸리지 않았다. 다섯째, 노이무원(勞而無怨) : 고생을 하면서도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끝으로 사불유언(死不留言) : 유언을 남기지 않아 정치풍파를 막았다는 내용인데 이런 육무(六無)의 지도자를 가졌기에 중국은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로 이어지면서 강력한 중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공산당 창립 90주년 기념식에서 후진타오는 중국 공산당의 업적으로 신민주주의혁명, 사회주의 혁명, 개혁개방을 들었는데, 저우는 신민주주의혁명의 1등 전도사이자 중국사회주의 혁명의 1등 공신이다. 개혁개방 정책도 그의 유훈이라고 보면 공산중국 건설에 있어 사실상의 주역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언론들은 그가 숨졌을 때 부부의 저축액이 5,100위안(한화 65만원)이 전부였다며 청빈한 무산자의 삶을 칭송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인물로 중국의 독립과 번영, 소박하게는 '인민'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불굴의 열정 그리고 애국심, 지분보다는 역할을, 권력보다는 임무를 더 중요시 여긴 저우언라이.


중국의 현대사에서 극과 극의 대립과 협상, 그 현장에 늘 그가 있었다. 그는 설득과 협력, 단합과 화해를 지향하는 스타일이었다(83쪽). 역사학자인 화이트는 그를 금세기 공산주의운동이 낳은 가장 탁월하면서 가장 비정한 인물이며, 그러면서도 따뜻한 가슴, 거역하기 힘든 인간미, 비단결 같이 부드러운 예의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평했다. 어쨌거나 그가 그렸던 밑그림을 덩샤오핑이 다듬고 빛깔을 얹혀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대국굴기(大國堀起)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의 G2 중국을 만들었다. 인격과 품격, 격조와 역사적 업적, 이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저우언라이. 중국 인민은 저우가 있어 더 없는 행운이요 축복이었다고 한다.
저우를 통해 우리의 3부요인을 들여다 보면 어떠한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국민 보기를 우습게 여기는 듯한, 자기영달만을 위해 위만 바라보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 먼저 든다. 우리 정치는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많이 흔들리고 있다. 그 누가 균형과 조화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 과연 우리에겐 겸허하고 겸손하게 간절히 다가오는 리더가 있기나 한가? 저우와 같은 지도자의 덕목을 갖춘 지도자가 있는지 당최 난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책을 우리의 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한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어떠한 마음가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앞으로 저우언라이와 같은 인재들이 많이 나타나 '그가 있어 행복했다'는 찬사를 보내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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