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머니 - 전 세계 부를 쥐고 흔드는 위험한 괴물
사트야지트 다스 지음, 이진원 옮김 / 알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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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경제를 뒤흔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여파는 아직 진행형이다. 최근의 남유럽 국가(PIIGS :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남부의 돼지들이란 뜻) 재정 위기도 서브프라임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민간의 부채가 공공으로 이전되며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혹자들은 이런 일련의 현상을 두고 자본주의의 종말(Demise of capitalism)이라고도 한다. 경각성 발언이었겠지만 프리드만의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3.0'의 위기임에는 틀림없다. 지난 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거센 외침도 바로 지금까지의 탐욕과 부패에 찌든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에 대한 개혁 요구의 목소리였다. 이런 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자본주의 4.0’(Capitalism 4.0)이라하여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 즉 앞으로는 빈곤층을 보듬는 따뜻한 자본주의로 그 패러다임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니 또 한 번 속아보는 거다.


서브프라임 문제는 경제학자들에겐 살판 난 기회이기도 했다. 비록 금융 위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를 진단분석하고 대안을 내놓는 것 또한 학자들의 몫이니 여러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내가 읽은 대부분 책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탐욕과 모럴해저드(Moral Hazard)이다. High Risk, High Return! 고위험 고수익! 선진금융기법이란 미명아래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했다는 착각. 위험을 분산하면 분산할수록 제로에 가까워진다는 이상한 논리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단기고수익 파생상품. 위험 변동성이 큰데도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돈(헤지펀드). 자본주의의 근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탐욕으로 인해 거품을 만들어내고 그 거품의 끝은 실체 없는 추락이다. 그런데 많은 책들이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현상에 입각해 명쾌하게 다루고 있으나, 보다 근원적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깔끔하게 설명한 책은 보질 못했다.


이번에 읽은 <익스트림 머니 Extreme Money>도 여느 책과 같이 '서브프라임'으로 풀어나간다. 서브프라임! 이 단어는 불행한 개인들에게 제공되는 믿기 힘들 정도로 낮은 이자의 모기지 대출을 뜻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길거리로 나앉게 만든 은행과 브로커들의 기만적이면서 냉소적인 영업 관행의 동의어(7쪽)이다. 저자는 우리가 돈을 수단으로 하는 놀랍고 위험한 게임들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며, 익스트림 머니라는 단어로 그 위험을 경고 _ 익스트림 머니는 핵심이 사라진 현실이다. 즉 이는 실재하는 것들의 금전적인 그림자다 _ 한다. 이 책의 서문 '휴브리스(Hubris)'는 그리스어로 신의 영역까지 침범할 정도의 오만을 뜻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휴브리스는 신이나 법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 쓰이는데, 신의 보복(Nemesis)을 불러와 인간들의 필연적인 파멸로 끝난다. 저자는 인류가 사회와 경제를 잘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로서의 돈을 그 자체로 중요한 것으로 오인(돈의 숭배)함으로써 현대판 휴브리스가 재연되고 있다고 서문을 열어나간다.


인류가 창조한 돈과 금융. 1부의 <신뢰>편은 돈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20세기의 인류는 "돈은 우리 시대의 하느님이다(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며 돈의 신봉자들이 되었다. 개인의 삶은 금융화(화폐화)하였고, 이는 조작화(Manipulation)와 그 형제격인 착취화(Exploitations)가 생길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비와 부를 추구하고, 금융인들은 금융공학이란 이름 아래 헤지펀드, 사모펀드, 새로운 파생상품 및 구조화 투자상품 등등, 돈에 대한 사회적 개념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해 나간다. 이제 돈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다. 세계적인 돈의 흐름은 극단적 수준까지 레버리지를 확대한 전통적인 은행들의 존립 기반이 되었다. 돈이 전 세계로 흘러들어가 자산 가치를 끌어올림으로써 부에 대한 착시와 더불어 개인의 삶과 기업, 도시와 전체 국가들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자 지금까지 경제, 비즈니스,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돈의 힘이 크게 고평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똑같은 양의 돈이 여기저기 빠르게 움직였을 뿐 가용 가능한 돈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았던 것이다.


사실 1부까지는 짤막한 단상들이 이어져 그저 그랬다. 2부의 <시장 근본주의>에 접어들면서 보다 경제적 관점으로 파고든다. 1980년대 후반이 되자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가 경제사상의 주류가 되고, 주식보다 채권을 더 저렴하게 발행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레버리지와 사모펀드(LBO Leveraged Buyouts) 거래가 확대된다. 여기부터는 경제관련 상식이 없으면 조금 지겹고 머리 아픈 내용들이 이어지는데, 경제에 관련 있는 독자라면 정신이 맑아지면서 집중하게 될 것이다. 부채를 더 많은 부채로 자르고 써는데 필요한 요리법이라 할 수 있는 증권화! 증권화의 열쇠는 여러 투자자들 사이에서 위험을 분산시키는 능력이다. 이런 과정에서 각종 파생상품이 생겨나지만 알고 보면 투자자에게 위험이나 레버리지를 속이는 현란한 몸치장에 불과할 뿐이다. 종국에는 금융에 종사하는 그들 자신마저 속아 넘어가게 되고 결국 금융위기라는 이름으로 그 정체를 드러낸다. 파생상품의 위험은 이미 우리나라 기업들도 경험한 바 있다. 2008년, 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Knock-In Knock-Out) 통화옵션계약을 했던 중소기업들이 흑자도산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것이다.


부채를 사용해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 신경제가 오래갈리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품이 터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누구도 대비하지 않았다. 부채 시대의 종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대완화(Great Moderation, 안정적 성장)와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압력이 없는 상태)라는 가짜 즐거움이 무너진 것이 금융위기였던 것이다. 동시에 탈출하려던 트레이더들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빌린 돈으로 산 똑같은 증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동성은 한 순간에 사라졌고 공포에 질린 금융시장의 위기는 빠르게 실물경제로 확산되어 세계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세계 중앙은행과 정부는 보톡스 경제학을 받아들여 엄청난 양의 유동성을 투입하여 위기가 불황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데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모기지 대출시장은 여전히 불안하고,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 '클럽메드(Club Med)'의 채무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며, 중국 경제 역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경착륙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위험한 우상에 대한 성찰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과, "익스트림 머니는 경제를 오염 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돈을 창조한 인간이 이제 돈의 지배를 받게 된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금융시스템에 녹아들었는지, 위험한 머니게임이 어떻게 투자자를 농락하는지, 현대사회와 금융에 얽힌 이야기를 전문가로서의 혜안과 풍부한 경험으로 풀어놓는다. 조금은 익숙하지 않는 소테마식 편집이 읽는 처음 읽을땐 어색했지만 읽을수록 저자의 초고수의 통찰력에 매료되었다. 다만,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의 대안에 대해선 언급이 미약하다. 이 분야는 또 다른 관점이 필요하겠지. 사실 자본주의 4.0의 개념은 대략 잡힌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서 우파와 좌파의 해법은 각각 길을 달리한다. 우파는 시장에 맡기자(하이에크 자유주의)고 하고 좌파는 국가에 그 힘을 실어줘야 한다(케인지언 사민주의)고 주장한다. 어떤 방법이던 시장의 탐욕을 견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의 탐욕과 금융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잣대가 될 수 있는 역작 임에 틀림없다. 비 경제인에겐 어렵고 재미없는 책이겠지만, 이쪽 계통의 독자에겐 또 다른 개념의 금융비판서로 필독을 권해본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주식과 관련해 조언한 내용과 조금 상징적인 다른 내용 하나를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에 특별히 위험한 달 중의 하나다. 다른 위험한 달들로는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 (26쪽)

 

한 투자자가 LTCM은 어떻게 낮은 위험을 가지고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묻자 숄즈는 "당신 같은 바보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거칠게 말했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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