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작년 즈음인가? 모 신문에 허허당(虛虛堂)스님의 '백만동자' 그림 이야기가 기사화되었지요. 그 때 소개된 그림이 '화엄법계도'와 '생명의 축제'라는 그림이었는데, 전 '생명의 축제'에 푸욱~ 빠졌더랬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서핑을 통해 스님에 대해 알아보았고 스님의 그림세계에 조금은 알게되었습니다. 스님은 1978년 문득 깨달은 바 있어 붓을 잡기 시작하여 1983년 지리산 벽송사 방장선원에서 선수행과 함께 본격적인 선화작업을 하였고, 그 이듬 해 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꾸준히 선화전을 열고 계신다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예담에서 스님의 시화를 엮은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란 책이 나왔길래 손에 잡았습니다.


일단 그림에 대해 느낀 점을 보자면, 역시 '생명 축제'란 제목은 전부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생명 축제 시(始), 생명의 축제 자(慈)!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단풍진 가을 숲에 스린 생명의 기운이 도심의 허무로 가득찬 가슴을 빠르게 채웁니다. 왜 이 시리즈에 제가 공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화엄법계도 또한 놀랍기만 합니다. 마치 점묘화나 그 옛날 타자기로 찍어낸 그래픽 같은 느낌도 나지만 유심히 바라보면 모두 동자상입니다. 백만동자가 뭔지 바로 알게 됩니다.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동자로 가득찬 소녀나 아이들은 어째 두렵기도 합니다. 긴 목이 주는 시원함 보다는 기이함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드는군요. 배경이 자연이면 수용되면서도 동자를 품은 그들은 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얼른 그 마음을 알아채기 힘듭니다.

 

생명의 축제 자(慈)

 생명 축제 시(始)

 

허허당(虛虛堂). 그 의미를 찾아보니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허허당, 비고 빈 집. 비워 사는 길, 부처도 진리도 일체 모든 것, 진리는 결코 내가 찾는다고 해서 찾아 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 버리면 스스로 찾아온다. 드러난다. 텅 비어있으면 우주 만상이 이것이 진리다. 하고 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어느 날 문득 깨달음에 스님 스스로 비워 사는 삶을 선택하면서 생긴 이름이라는 군요. 허허(이건 그냥 제가 웃는 의성어 입니다)~ ^^* 스님의 글(시라고 해야 하나요?)은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찾지 마라, 잃기 쉽다> <지금 그대는 무얼하고 노는가> <마음 감옥에서 나오니 눈이 떠지네> <마음이 헛헛할 때 허허하기> 이렇게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글이 첫 마당의 제목입니다.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고 / 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는다 /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이렇게 단순한 듯한 삶의 깨달음이 스님의 감성으로 풀어져 나옵니다. 허황한 말의 유희가 아니라 자유로운 무애(無碍)의 삶에서 울려나오는 스님의 글인지라 꾸밈없이 순박한 진리가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쥐와 사자가 있군요. "항상 약자의 편에서 용기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 / 그 모습은 포효하는 사자와 같고 / 아무리 강자의 편에서 사자와 같이 어슬렁거려도 / 그 꼬라지는 쥐 꼬라지다. //" 참 명료하게 인간 속을 들여다봅니다. 말도 자란다는 글도 명쾌하게 묻습니다. "말도 자라고 글도 자란다 / 어떤 말은 한 송이 꽃처럼 자라고 / 어떤 글은 가시덤불처럼 자란다 / 오늘 그대가 한 말과 글은 /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가 //"... 불교에서 가장 큰 죄는 말로서 말을 함부로 하는 죄(口業)이라했던가요? 그래서 스님은 또 말합니다. "간혹 말을 하다 멈추는 순간 / 그 순간 마음이 깬다 / 언어도 생명인 까닭 / 말도 쉬어야 한다 // 묵언으로 마음을 보라는 그겠지요. 어째 글이 뒤로 넘어올수록 더 마음이 공감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글 제목의 의미가 조금은 눈에 보입니다. 사람의 삶에 관한 성찰을 전해주는 거군요. "지금 그대는 어쩌면 홀로 외롭고 쓸쓸한 길을 가며 / 혹 하늘을 보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 이유없는 존재의 슬픔과 고독을 느낄 수도 있으리 / 그러나 이 슬픔과 고독이야말로 참으로 그대가 / 인간다운 인간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 그렇군요. 마음이 헛헛할 때 그냥 허허하면 되는거였군요.

 

(마왕이 되고싶은 아이, 비천상2)

부드러운 그림은 아니었지만, 글에는 꾸밈이 없어 화려하진 않지만 생명의 자유와 경건함이 숨어있음을 느꼈습니다. 스님은 "고되고 힘든 나날이지만 아이처럼 순수하고 재미나게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소녀와 아이들 그림을 많이 수록하였다는데, 안목 낮은 저는 조금 두려운 느낌의 그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삶과 일치하는 스님의 글에서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느꼈습니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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