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이명랑의 글은 직설적이다 그리고 글에 이런 표현을 해도 된다면, 매우 차지다. <삼오식당>에서 맛본 차진 쫄깃함에 이끌려 그녀의 장편을 찾아봤다. 이 책은 삼오식당에서 조명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섧고 지난한 시장생활의 이면을 고스란히 담았다. 연민이나 동정따위가 비집고 들어가지 못할만큼 처음엔 차갑고 쌀쌀맞게 표현하지만, 그들과 생활하며 심적동요를 일으키는 화자 영원이의 시선대로 그들을 향한 연민은 서서히 드러난다. <삼오식당>에서 시장상인들의 억척스러움과 고단한 뒷이야기를 담았다면, <나의 이복형제들>에서는 상인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무책임한 폭력과 폭언에 노출된 이주노동자의 모습과 떠돌이 외지인, 불치병에 걸린 춘미언니의 일상을 통해 시장의 그늘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화자인 나(영원) 역시 성인이 되기 전에 시장에 흘러들어 자기 밑에 들어온 이상 가족이라 부르짖는 행복합시다 아저씨의 과일가게를 봐주고 담뱃값정도를 벌며 냉동창고에 잠자리를 제공받고 있다. 그러나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과거때문에 알 수 없는 불안과 어둠에 대치하고 있는 그녀 역시 영등포시장에 뿌리내릴 수 없는 주변인이다. 저임금의 힘든 육체노동을 견디고 갖은 천대과 굴욕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도 청년 깜뎅이,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인 국적때문에 폭력적인 남편밑에서 다방일까지 하며 차곡 차곡 돈을 모으는 머저리, 곁을 따르는 개가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난장이 왕눈이 아저씨, 불치병때문에 하반신에서 점점 상반신까지 마비되어가는 춘미언니의 눈물겨운 TV사수작전은 그저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게 되는 사람들의 고된 삶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희망이라는 어느 유명한 문구처럼 이렇게 힘든 사람들의 인생도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분명 위안을 얻을 사람들조차 존재할 것이다. 시장에서 나고 자란만큼 시장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작가이기에 시장사람들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고 그 이상의 애정 또한 남다르다. 화려한 것으로 치장하고 꾸며진 것에는 기쁨을 느낄 수 없고, 요란한 겉치레는 아름다움도 무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 나는 그녀의 글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미적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다양한 시장의 풍경과 사람들, 결코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비굴하게 웃는 인간들이 아니라, 돈에 대한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시선이 결코 밉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인과 이방인을 경계하고 좀처럼 곁을 잘 내주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불편했다. 결국 어느 곳에나 약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체념도 든다.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전기에 비유했다. 냉기와 온기의 간극을 쉽게 극복하고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어도 철저히 남이라는 구절은 책의 제목을 현실감있게 만들어준다. 이복형제, 피를 나누었지만 절대 너와 나는 돌아서면 남이라는 생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곳이 시장바닥이라는, 처절하고 냉정한 평가,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 곳이 단지 시장바닥의 이면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곳 또한 얼마든지 소설속 배경의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전기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둥지에는 전기로 냉기를 유지하는 냉동창고와 전기로 따뜻해지는 전기장판이 있다.
냉동창고와 전기장판, 이 두가지 제품만 놓고 봐도 전기가 가지는 주요한 특성을 알 수 있다.
전기는 냉기와 온기 사이의 간극을 쉽게 극복한다.
이곳 사람들은 전기의 이러한 특성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피를 나눈 형제이면서 동시에 철저히 남이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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