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회학의 쟁점들
김환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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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기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되는 동시에 인류문명 진보의 척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국가는 곧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공계 학생 육성을 위해 각종 장학금과 특혜가 신설되고, 기업에서도 우수한 이공계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힘을 기울인다. 바야흐로 과학기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기술 지배현상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핵물리학의 급속한 발전은 결국 핵무기라는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외에도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수많은 질병과 환경오염을 낳았다.

그렇다면 이제 성장과 진보의 도구라는 과학기술의 환상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정립해야 하지는 않을까. 이 책도 바로 그러한 목적에서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사회학(STS)이라는 학문영역이다. STS의 인식은 과학이 보편적이고 탈 맥락적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거부한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사회적 과정의 결과물, 즉 인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또한 과학기술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있는 그대로의 과학'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들의 작업은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라고 불리우며 과학기술이라는 '암흑상자'를 열기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STS의 이론적 흐름을 살펴보는 1장에서 STS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머튼의 기능주의 사회학, 과학지식사회학(SSK), 기술 사회학, 행위자-연결망 이론(ANT)등을 살펴본다. 여기에 더해 STS에 많은 기여를 한 부르디외의 이론을 설명하고, ANT이론을 중심으로 구성주의 과학사회학의 변천을 되 집는다. 이론적 논의가 중심이 되는 장이라 이해하기에 약간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바탕이 되는 이론들이기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론들은 과학기술의 '암흑상자'를 해체하며 과학기술과 상관없다고 생각되어오던 민주주의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저자는 과학기술이 가져온 여러 폐해를 지적하며 과학기술이 가져온 이런 결과를 결코 사회의 다수 구성원인 시민은 인정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시민은 단지 과학기술의 수동적 수용자가 되었을 뿐인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분명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일이며, 이러한 과학기술의 독점은 이윤의 발생이라는 논리와 군사력이라는 권력과 만났을 때 더욱 심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구성주의에 입각한 과학기술적 전문성과 시민적 전문성의 결합을 주장하고 이러한 결합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사례로 합의회의, 과학상점, 참여설계 등을 설명한다. 이러한 과학의 민주주의를 위해 과학의 윤리화라는 문제도 거론된다. 과학의 영역이 과거와 다르게 생명의 근본적인 문제,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기에 과학에 있어서의 윤리 문제는 과학의 민주화를 위해 필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적 과학기술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과학기술의 정책 결정과 폭넓은 사회적 구성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때 과학 기술은 보다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제 과학기술이 현대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정보화분야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정보사회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은 기술이 사회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술 결정론적 사고였다고 비판하고 사회적 맥락에 따른 기술의 변화를 고찰하는 사회적 구성론의 입장에서 정보사회를 분석한다. 이에 따르면 기술이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의 참여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유동적인 결론이 나온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정보사회에서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분권화, 연계성, 부응성,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공분야와 민간분야에서의 현황을 살펴본 후, 한국 사회가 정보사회가 요청하는 사회, 제도적 개혁을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정보사회의 기술적 측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 비해,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불충분하다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특히 한국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족한 근원적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뿌리 깊은 '두 문화'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생명윤리 기본법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두 문화'문제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라는 두 문화에 있어서 자기 문화 중심주의에 빠져 있으며, 두 문화 사이의 의사소통이 부재하고, 공통적으로 일반 대중의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두 문화' 문제는 여기에 더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분리로 더욱 심한 의사소통의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 인문과학의 벽을 허물기 위한 해결책으로 STS를 고급,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기 위한 해결책으로는 문화연구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더욱더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창출되는 다문화주의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을 다진다면 과학기술에 대한 탈신성화와 사회적 성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근대 계몽주의의 기획, 과학기술로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산업화 시기 성장위주의 국가주의 논리, 신자유주의 시대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자본의 논리가 합쳐져 과학기술은 도저히 비판 불가능한 성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학은 그 탄생부터 사회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었고, 사용에 있어서도 사회와 분리해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에 대한 사회적 고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문다는 의도를 가진 책들이 간간히 출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두 문화'의 융합은 과학에 관심 있는 인문학자, 인문학에 관심 있는 과학자의 대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사회학의 여러 쟁점들을 살핀 이 책은 과학이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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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8
장귀연 지음 / 책세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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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더 이상 노동시장에서 특수한 형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자가 되어 임금을 벌어야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면 비정규직은 곧 나의 현재이며, 미래인 것이다.

장귀연의 이 책은 비정규직에 대한 충실한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1방에서는 노동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종류 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독자는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장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에서 비정규직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거론한다. 노동 유연화전략이라는 이름 하에 해고가 쉬운 노동자를 찾는 기업의 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은 굉장히 적절한 고용형태라는 것이다. 3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이 적고, 항상 해고의 위험에 시달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삶의 조건이 파괴되는 것이며, 같은 직장에서 함께 어울리면서도 다양한 조건에 있어서 차별과 무시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식자리에 어울리지 못한다거나, 직장 동료들과의 사이가 서먹하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토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나누고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담을 쌓는 기업의 전략이 인간관계에 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해준다.

마지막 4장에서는 비정규직에 관련된 다양한 논란을 살핀다.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 탓이라고 말하는 경제인들의 논리를 반박한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하도록 하는 방법과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 두 가지를 거론하는데 두 가지 방법 모두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난점이 있다고 말한다. 근본적인 방법은 새로운 노동권의 성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분명히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노동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책도 비정규직의 경제적인 문제들을 객관적인 통계를 들어 설명하기 보다는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조건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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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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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를 신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는 캔버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미 특정한 상표의 브랜드를 구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상품의 품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키와 캔버스 운동화가 가지는 이미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가 만들어놓은 체제에 '순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캔버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나이키가 대표하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무언가 소비주의에 반대하고 '쿨'한 느낌을 갖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이키와 캔버스 운동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의 모든 면에 이러한 생각들이 스며들어 있다.

<혁명을 팝니다>는 소비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의 상품을 소비하는 또 다른 소비주의에 강도 높은 비판을 시도한다. 먼저 소비주의 비판의 토대가 되는 反문화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역사를 살피면서 反문화가 탄생한 경로를 파악한다. 바로 뒤에는 반문화의 토대가 되는 이론들의 탐구한다. 모든 자본주의 비판의 선두에 서는 마르크시즘과 자본주의 시대의 대중들이 억압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억압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한 프로이트의 이론, 게다가 최근의 이론에 해당하는 포스트모더니즘까지 反문화에 영향을 미친 이론들을 두루 살펴본다.

이러한 이론적 탐구는 결코 따분한 철학적 논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메리칸 뷰티>, <파이트 클럽>같이 저자가 反문화 영화라고 규정지은 영화를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음악과 소설 등 우리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反문화라는 틀에서 해석한다. 결국 이러한 특징은 저자의 주장을 한층 더 와 닿을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보았던 영화, 우리가 듣는 음악이 바로 그들이 사유하는 철학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까닭이다.

反문화는 당연히 소비주의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회가 받아들이는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反문화는 우리사회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체계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反문화와 反소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종의 제도와 규칙은 억압적이고, 인간의 '진정성'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반소비주의자들은 언제나 제도자체를 없애는 것이 목표가 된다. 따라서 제도의 틀 안에서 개혁을 한다는 것은 '파상적'이라는 공격을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비판한다. 사실 반소비주의자들이라는 히피들은 그러한 비판을 한다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사실 또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히피가 여피족이 되는 '배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들은 50년대 소비주의의 상징인 뷰익 승용차를 모는 대신에 SUV를 구입함으로써 자신들은 소비주의에 희생되지 않고 자본주의에 '순응'하지 않는 개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은 내세운다는 것이다.

저자는 반소비주의자들이 가지는 체제에 대한 전복을 비판하며 제도와 억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실 그들이 비판하는 제도의 대부분은 인간들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반소비주의자들이 하는 행동을 모든 사람들이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질문으로 함축된다. 반소비주의자들은 그들이 문화적으로 소수이고 튀기 때문에 가치를 가지며 만약 모두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이 또 다른 규칙이 되고 억압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억압과 규칙을 없애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사회에는 더 많은 규칙과 억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본을 거부하고 억압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을 이상적으로 바라보았던 우리시대의 비판가들에게 확실히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 심한 모욕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그런 행동과 사고가 사실은 위선이며 또 다른 소비주의의 원동력이라고 과감히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비판가들의 감추어진 뒷면을 살펴보고 우리사회의 긍정적인 기능을 파악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상을 지지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뿐만 아니라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 유니폼의 기능 등도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으로 흥겨운 관념 뒤집기를 시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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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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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교수는 한국의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가 8년 만에 한국사회에 대한 비평서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출간했다.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만 그동안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분의 책이라 한껏 기대치가 높아진다. 또 책은 출간되기도 전부터 또 다른 진보진영의 대표지식인인 최장집 교수에 대한 실명비판으로 화제가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벌써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아도 큰 틀에서 이러한 짐작은 빗나가지 않는다. 저자는 한반도의 통일이 이미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핵 위기, 미국의 강경한 대북 노선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인 시점에 자칫 이러한 주장은 통일지상주의에 빠진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확실한 근거가 자리 잡고 있다. 6.15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는 6.15선언으로 이제 분단체제는 흔들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선언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특성은 오히려 남북의 합의를 위해 꼭 필요한 특성이었다고 주장한다. 분단은 선언이 있기 전부터도 이미 흔들렸다고 한다. 한국이 민주화를 겪으면서 분단체제는 확실한 타격을 입었고 그 이후에도 분단체제는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확실히 통일국가로 만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이렇게 어느 순간 통일된 국가를 이루어야 통일이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비판한다. 6.15선언에 근거해 남북이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해 나가다가 어느 순간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 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합의 하면 그것이 통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베트남의 무력통일과도 다르고 독일의 흡수통일과도 다른 한반도통일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이렇게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통일의 목적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통일의 목적은 순전히 통합된 국민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반도의 민중들이 조금 더 낳은 상태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만들기 위해 통일문제를 고민하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민족해방파, 평등파, 온건개혁세력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진보세력은 한반도의 분단이 다양한 모순을 낳은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중도적인 노선을 찾아 한반도의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반도의 통일이 다양한 사회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진보'만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말하는 지식인들은 통일을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장집 교수는 정당정치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분단체제를 외면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통일문제 외에도 저자는 원로의 안목으로 환경문제, 한반도의 발전전략,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통일론은 통일이 더 이상 최대의 이슈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통일 문제는 언제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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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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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없이 부끄럽다. 책을 다 읽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성을 갖춘 동물과는 다른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또 누구도 잊어서는 안 될 끔찍한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아이리스 장의 이 책은 바로 난징의 강간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난징의 강간은 군국주의적 욕망이라는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중국의 수도인 난징에서 벌인 6주간의 야만적인 살육행위를 일컫는다. 아이리스 장에 따르면 일본군은 사람을 단순히 죽이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녀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강간했고, 당연히 그들은 참혹한 방법으로 살해되었다. 군인을 가린다는 명목으로 남자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포로들은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집단으로 살해되었다. 또한 가옥과 찬란한 난징의 문화는 방화 약탈로 인해 파괴되어  버렸다.

당연히 이 책의 목적은 난징의 강간이라는 잊혀진 사건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다. 저자는 목적을 훌륭히 달성하였다. 아이리스 장은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그들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난징의 강간을 전쟁 중에 일어난 단순한 전투행위로 인식하던 많은 사람들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러시아의 집단학살 등과 함께 난징대학살을 기억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을 알리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바로 난징 대학살을 통해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아픈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런 역사는 되풀이 되고 만다는 외침은 우리가 난징대학살을 기억해야하는 진짜 이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말미에서 이야기하듯이 난징대학살을 기억하는 일본의 방식은 그런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난징대학살을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로 왜곡하고 있으며 학살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상부의 지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것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런 왜곡 속에서 일본의 교과서는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은 난징대학살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픈 역사를 바로보지 않으려는 세력들의 압력으로 인해 결국 아이리스 장은 자살을 택한다. 아픈 역사는 당사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줄 뿐만 아니라 그런 역사를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것이다.

난징 대학살에 대한 감추어진 진실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과 정당성에 대해서까지 이야기 하는 이 책은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는 모든 인간이 한번쯤은 읽고 느껴야 하는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훌륭한 책을 출판한 미다스 북스에 감사드린다. 하지만 이렇게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의 홍보문구로 '미모의 역사학자가 바꾼 기념비적 역작!!'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문구는 아이리스 장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알리고자 했던 아픈 역사를 담은 이 책을 예쁜 역사학자의 흥미로운 책으로 오해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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