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공문서 - 일제시기 기록관리와 식민지배
박성진.이승일 지음 / 역사비평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모든 기록물과 기록이 생산되는 과정은 그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사회를 알고자 할 때 그 사회가 생산해낸 기록물을 살펴보고 그 기록물이 생산된 프로세스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더욱이 그것이 근대 국민국가에 있어서 유일한 절대 권력으로 자리하는 국가가 관련된 기록물일 경우 그 중요성은 더욱 배가된다.

한국사에 있어 일제강점기는 생각하기 싫은 과거이다. 그렇기에 그 시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오히려 필수적이다. 역사라는 학문이 과거의 잘못을 통해 현재의 방향을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때 일제강점기는 한국사의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중의 하나가 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한국은 일본을 통해 근대화되었다. 근대화라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국가권력의 작용이 제정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과정이 철저히 문서로 남는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일제시기 조선의 중앙행정기관이었던 조선총독부의 공문서는 그 당시 조선의 식민 지배 정책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사료이다. 동시에 기록관리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조선총독부가 시행했던 기록관리 정책은 최초의 근대적 기록관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사학에서는 그동안 조선총독부의 기록물을 내용을 사료로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기록물은 담고 있는 내용의 중요성과 함께 그 기록물이 생성된 과정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일본 본국과 제령 등의 법률 제정을 위해 논의한 기록의 생성을 살펴보면 그 당시 식민지 지배에 있어 조선총독부와 본국의 관계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기록물을 생산한 단위 과의 업무분장 등을 통해 일본이라는 근대적인 식민권력이 어떻게 조선이라는 식민지를 통치했는지를 파악 할 수 있다. 이렇게 기록물은 역사학에 있어 새로운 방법론적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 기록물 수집정책에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총독부는 조선에 일본의 제도와 흡사한 기록물 관리, 수집 정책을 수립하였다. 현대 기록학에 있어서 기록물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의 중요한 목적은 국가의 행정작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일제시기에 있어서 이러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록물의 관리는 행정과 식민지배의 효율의 위해서만 이루어졌다. 대한제국이 생산한 기록물을 관리하고 민간의 기록물을 수집하여 만든 조선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식민사관의 확립을 위해 저술된 것이었다. 식민지배의 영향은 기록물에 있어서도 확연히 드러났으며 기록물은 식민지 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중의 하나로 활용되었다.

조선총독부의 기록물 관리에 대한 현대적인 평가는 지금 왜 조선총독부의 기록물이 조금 밖에 남아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 연구를 통해 일제시기 식민지 권력이 어떤 식으로 기록물을 관리했으며 그것이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었는지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앞으로 조선총독부의 기록물을 어떤 식으로 수집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의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서라는 텍스트를 통해 역사학과 기록학이라는 학문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앞으로의 역사는 아키비스트가 선별해 남기는 기록물을 통한 역사학자의 연구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아키비스트는 단순히 기록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학자와 함께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록 없는 역사연구는 불가능 하며 역사의식 없는 기록물 관리는 불가능한 이유이다.

이 책은 역사의 주체로서의 역사학과 기록학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횡단함으로서 양쪽 분야에서 모두 상당히 커다란 학문적 성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록으로 여는 세상속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엮음 / 진리탐구 / 200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하나 들면 삶과 행동을 기록한다는 점이다. 기록은 몇 만년 전의 석기시대를 재현할 수 있게 하며 몇 년 전의 사건을 상세히 조사할 수 있게 해준다. 기록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과거를 기억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기록은 의의를 가진다. 어떤 이에게 기록을 생산하는 것은 투쟁이며, 존재의 이유가 된다. 또 어떤 이의 기록은 비록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삶을 기록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공식적인 기록이 담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기록도 시작되었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 인류는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들에게 동굴벽화는 단순한 삶의 기록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삶의 기록인 동시에 삶 그 자체였으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는 주술행위였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었다. 비로소 인류는 문자를 바탕으로 문명을 꽃 피울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록이 문자에 의존하고 있지만 모든 기록매체가 문자인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대와 문명의 장례풍속 등은 문자 못지않게 인류의 과거를 상세히 알 수 있게 하는 훌륭한 기록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류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어떤 형태로든지 기록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한반도에 존재했던 다양한 국가의 기록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의 방대한 기록 관리체계는 중앙집권국가와 왕권강화라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왕의 행적을 거의 완벽히 재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 거대한 공사를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기록 관리를 치밀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과거의 기록관리가 자신들의 삶을 보전하는데 힘썼다면 현대의 기록 관리는 민주주의라는 정치형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기록을 관리하는 의의도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록의 공개는 곧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며 반대로 기록의 비공개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 되는 것이다. 전자정부 등도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손쉽게 공공기관의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앞에 서술한 다양한 기록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용기록을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는 기록관리 서적의 틀에서 벗어나서 선사시대의 벽화까지 시선을 확장한 것은 기록의 의미를 넓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여러 주제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기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흥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여러 글을 포함시킨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양한 주제를 다룬 만큼 깊이가 없다는 것은 이 책의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6년전 출간되었다는 점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현대의 기록관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국가나 공공기관의 공식기록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한계급론 - 문화.소비.진화의 경제학 e시대의 절대사상 25
원용찬 지음 / 살림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소위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상표나 마크를 드러내지 않는다. 작은 기호로 옷 속에 숨기거나 아예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만이 아는 기호로 그것이 명품임을 은밀히 알린다. 명품을 감별해 낼 수 있는 감식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신이 남들은 알지도 못하는 계급에 속해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이러한 상류계급의 구별짓기(Distinction)를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전형적인 속성으로 그것이 원시사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뿌리 깊은 사회, 경제적 법칙으로 파악하였다. 그때까지 뉴턴의 기계론적인 사유에 따라 세상은 목적을 향해 움직여가고 모든 경제주체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신화가 지배했던 학계는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 의해 일대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유한계급은 결코 노동을 신성시 여기지도 않으며 합리적 소비를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에 유용한 노동을 천시하며 자신이 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여가를 즐길 수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과시적 소비’를 일삼는다. 이런 관점에서 유한계급이 일삼는 스포츠, 도박, 사치 등의 속성을 명확히 파악하였으며 베블런이 살았던 미국 사회의 유한계급들의 행태를 폭로할 수 있었다.

베블런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유한계급의 형태는 결코 같지 않다. 그 당시 유한계급들은 완전히 드러나는 사치, 화려한 연회 등을 구별짓기의 도구로 사용하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사치를 일삼는 유한계급임을 감추기 위해 노력한다. 주말농장에 가서 땀 흘려 일하고 오지 체힘을 한다. 기업의 CEO들은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햄버거로 식사를 하며 일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베블런적인 의미의 유한계급의 행태로 파악할 수 있다. 여가란 결코 시간의 의미 없이 낭비한 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구별짓기는 더욱 정교화 되고 차별화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블런의 통찰이 지금도 의미 있는 이유이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의 해설한 이 책은 베블런의 사상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다. 베블런의 사상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도도하게 내려다보는 화려한 백화점 쇼 윈도우에서 눈길을 빼앗겨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
리햐르트 반 뒬멘 지음, 최용찬 옮김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역사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인기가 있는 역사학 서적은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별로 새롭지도 않은 '고구려, 발해'류의 민족주의적 감성에 기댄 책들이 있다. 또 그동안 주류 역사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서술한 책들이 있다. 이 책들은 역사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대담론이라는 편견을 거부하고 역사란 주목받지 못했던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민중들의 일상, 풍속 등에 주목하고 독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인 이러한 역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은 역사에 대한 학문적 관심의 배경과 연구방향을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데 이 책은 아주 좋은 개설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좋아했던 일상에 대한 연구가 어떤 학문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주요한 연구주제는 무엇인지 저자는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먼저 저자는 사회사와의 관계속에서 역사인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탄생과정을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거시사와 구조를 비판한 역사인류학자들의 학문적 논의와 그것을 뒤바침 해주는 지원 속에서 역사인류학은 탄생 할 수 있었다. 이어서 저자는 역사인류학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와 시각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동안 역사는 몇몇의 영웅들이나 거대한 구조속에서 움직인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다양한 개인들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는 역사인류학자들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였고 또한 근대를 중심으로 놓고 전근대와 중세를 비판하던 사고방식을 뒤집어 보게 하는 기능을 하였다. 요즘 관심의 대상이 되는 미사사적인 연구방법에 대한 개척은 물론이고 맑스나 베버 등의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은 역사인류학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인류학의 여러 주제를 다루는 장은 최근 역사학계가 주목하는 다양한 민중들의 일상과 관습에 대한 연구가 바로 역사인류학이라는 학문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마녀, 육체와 성, 개인주의, 독서 등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파편적으로만 보였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하나의 일관된 학문적 성향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사인류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특히 거시사의 강점과 미시사의 강점을 언급한 부분은 되새겨 볼만 하다. 
 

더 말할 나위 없이 미시사적인 시각과 거시사적인 시각은 나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거시사 없는 미시사는 인식능력을 상실할 것이고 반대로 미시사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거시사는 실제에의 근접성과 폭넓은 인식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모든 시각을 고려하는 객관적인 역사는 환상의 제국에나 있음직 하다. 따라서 모든 역사가들은 자신의 연구목표에 대해 분명히 밝혀야 하고, 자기가 표현하는 것들의 구성적 성격을 의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대상'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해석 또한 그에 따라 점점 변하기 마련인데, 이는 그 해석이란 것이 개인이 어떤 인식을 얼마나 얻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큰 것뿐만 아니라 작은 것도 항상 다양한 관계성 속에서 주시하는 과정이며 오로지 접근만을 약속할 수 있는 과정일 따름이다.  - p.146.

구체적인 역사를 다루는 서적을 읽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따르고 있는 방법론이나 학문적 배경에 대해 한번쯤 알아두는 것은 구체적인 역사를 파악하는 것 만큼이나 필수적이다. 리하르트 반 뒬멘의 이 책은 역사인류학이라 불리는 역사학 방법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이하 CO conscientious objector)는 이제 공론화 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병역거부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었던 것에서 이제는 찬반을 토론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입법을 추진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상황이 진전되게 된 데에는 CO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세상에 꺼내놓았던 김두식 교수의 역할이 크다. 이 책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책의 내용에 있어서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는 없다. CO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CO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소수라는 점에서 이 책은 터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추상적이고 담론적으로 평화, 반전을 이야기 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파병을 무조건 지지하고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을 긍정하는 한나라당도 반전, 평화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이렇게 말로만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으며,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확신하에서 반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진정 평화, 반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려지는 부분은 자신의 신념에 의해 많은 피해가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실제로 불이익을 당함에도 그 신념을 포기하는 않는 행동일 것이다. CO도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전쟁 반대, 평화에 이르는 가장 확고한 수단인 CO를 어떤 피해를 각오하고서라도 실천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말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CO를 비양심적으로 매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평화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은 전시상태이며 그렇기에 CO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의 허구성도 드러난다. 실제로 위협이 전혀 없는 상태라면 평화에 대한 진정한 신념의 척도인 CO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담론과 실제적인 신념의 차이는 비단 평화나 반전의 영역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나 인권의 문제 같은 거대담론에서 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까지 이런 논의는 이어질 수 있다. 말로만 여성평등을 주장하지만 명절에 모든 일은 당연히 여자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남성, 탈 권위주의를 강조하지만 술자리에서 부하직원에게 술을 강요하는 상사는 부력사용을 긍정하는 평화주의자처럼 엄청난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 때문에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거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을 때 그것을 지키느냐 포기하느냐에 따라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CO에 대한 인정여부는 단순히 병역을 거부하는 소수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인정할 줄 아는 사회적 관용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