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튀는 공무원이 세상을 바꾼다 - 색깔 있는 공무원들의 비범한 생각
부천시 기획도서 출판팀 지음 / 넥스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공직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 회의를 하고, 능력없는 공무원은 퇴출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 퍼져있던 公의 영역에 대한 불신은 그의 개혁을 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권위주의, 복지부동의 대명사였던 公의 영역은 물론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公의 변화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려가 되는 부분이 많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 초기 국가는 오로지 치안과 국방 등만을 최소한으로 책임지는 야경국가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했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므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었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극심한 기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1848 혁명 등을 계기로 초기 자본주의 국가관은 수정되기에 이르렀고 현재 거의 모든 선진국은 복지국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 公의 영역은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간접 자본을 이용하지 않고는 그 어떤 민간기업도 자본증식을 할 수 없다. 악법의 대명사로 꼽히는 각종 규제는 시장이 독식되지 않고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모든 사람이 내기 싫어하는 세금은 바로 이러한 일들을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명박이 잠도 자지 않고 이야기하는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위해서도 이러한 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자칫 이러한 公의 역할을 무력화 시킬 가능성을 담고 있다. 각종 복지예산의 감액, 교육, 의료 등에 대한 사유화 등은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부천시 현직 공무원들이 직접 쓴 이 책은 公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내부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특히 7장 등의 에피소드는 직접 시민을 상대하는 하급 공무원들의 글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저자들이 꼽는 부천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문화산업인 듯하다. 책의 전반에서 문화산업을 시의 동력으로 만들어낸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예전만큼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직 유지되고 있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다양한 주제의 연주회를 계속해서 열고 있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천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굳어진 만화 등은 물론 매우 긍정적인 사업이다. 하지만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문화산업의 의의나 원동력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부천에서 진행 중인 문화사업은 경제적인 잉여를 창출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을 넘어 문화는 모든 것이 경제적인 논리로만 움직일 수 없음을 말해주는 영역이다. 직접적인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오케스트라, 박물관, 도서관 등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지 않는 국가에서만 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부천의 문화산업은 단순히 새로운 성장 동력 등으로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책의 몇 부분에서 저자들은 CEO형 리더가 사업성공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위로부터의 변화'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더, 부천이 자랑하는 문화 사업을 과연 모든 시민이 즐길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무료이거나 저렴한 이용료는 그것의 이용에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지만 빈부격차 등에 의해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소외계층에 대한 특별한 지원이 없다면 좋은 문화 사업일지라도 그것은 소수만을 위한 것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문화사업과 더불어 행정영역에 있어서 다양한 혁신과 인재양성 등도 부천이 내세우는 강점인 듯하다. 공직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시민에게 좀 더 편리함을 주기위한 다양한 변화의 모습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공무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은 정규교육을 마치면 더 이상의 공부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변화의 큰 성과로 언급되고 있는 주민 참여 행정에서 언급된 시민단체 중 관변단체의 성격을 갖는 단체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작은 의문이 생긴다.
공무원이 하는 업무와 관련된 글도 포함되어 있다. 가까이에서 공무원의 업무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들의 업무가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 채워진다는 것이 상당히 왜곡된 인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들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듯이, 공무원은 국가에서 정년을 보장받고, 이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 시장의 유연화로 최소한의 생계조차 보장 받은 수 없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와 비교할 때, 그 어떤 혜택보다도 큰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바로 公의 영역이 시장이 챙기지 못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들도 인식하고 있듯이 공무원들이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사회, 경제적으로 가시적 성과가 있는 부분이 아니라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공무원은 그 존재의 속성상 경쟁에 의해 소수만이 이익을 독식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훈련이 되지 않은 저자들이라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반드시 지적해야 할 문제점이 글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먼저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의제'라는 의미로 사용한 '프로파겐다'는 어떤 사물의 존재나 효능을 선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의제'라는 말의 영어 표현은 '아젠다'가 적절하다. 이런 무분멸한 외국어의 오, 남용은 저자의 기본적인 소양을 의심스럽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습관에 대한 비판의 글(서래서굴식건)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부천의 녹지조성 사업의 예로 든 것(p.96), 찰스 다윈을 인용한 것(p.121), 역사에 있어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의미하는 카의 명제를 인용한 것(p.155) 등은 매우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의 내용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반성하지 않는 개인이나 집단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이 책은 대부분의 내용이 부천시의 행정을 홍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직접 자신들의 업무가 어떤 의의를 갖는지 반성해 보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공무원 집단에서도 이런 시도가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