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지식인의 정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오랜 공부를 통해 특정 분야에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일까. 그런 사람은 그저 지식 기술자에 불과하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이란 바로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문제 등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 아닌 자신의 실존에 관계된 문제로 파악하고 적극적인 행동과 실천을 하는 사람.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에 지식인이 있기는 한걸까. 이 책은 단호히 지식인은 죽었다고 말한다. 과거 그것이 논쟁의 대상이 되기는 하겠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은 길을 갔던 지식인은 이제 없다. 그저 지식인은 자신의 전문 지식을 무기로 각종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보다 조금 아첨을 잘하면 그 자신은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지식인의 정치참여는 자신의 소신을 실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위가 되어벼렸다. 여기에는 진보, 보수도 좌,우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운하가 부정적인 것이라는 학자적 견해는 권력의 힘압에 대운하 찬성으로 쉽게 돌아서 버린다. 유력시민단체의 대표는 환경파괴를 자행하는 기업의 사외이사로 들어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교수는 돈벌이를 위해 학문적 양심에 스스로 재갈을 물리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책은 이러한 지식인들이 '양산'되는 내부적인 이유도 거론한다. 그 중심에는 미국중심적인 학계와 한국의 '학술진흥재단'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지식인들을 질식시키고  있는(지식인들 스스로는 질식당하는지도 모르게)신자유주의는 바로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며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들은 마치 그것이 만고의 진리인양 인식하게 된것이다. 간혹 그것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은 매장당하게 되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식사회는 다시 '학진'에 의해 철저하게 지배당한다. 교수의 연구성과는 학진이 정해놓은 '증재지' 게재논문 건수로 평가당한다. 독창적인 글쓰기, 사유 등은 모두 인정받지 못한다. 학진의 연구비를 많이 받은 지식인이 학교의 권력을 장악하고 그 밑의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포기하고 프로젝트에 매달리게 된다. 당연히 이러한 구조에서 지식인 양산의 악습은 끊어지지 않는다. 

지식인의 죽음과 관련된 논의의 하나로 '대중지성'도 거론된다. 지식인의 죽음이 비단 자식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더이상 아카데미즘 안의 지식인을 필요로 하지 않고 대중이 지식인이 되는 대중지성이 도래했기 때문이라는 논의가 이어진다. 지식의 대중화라는 면에서 의미있는 담론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대중지성'의 정의를 만약 '대중들의 논의가 지성인들의 논의보다 의미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는 대중지성에 유려를 표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디워 논쟁을 대중지성과 아카데미즘 지성의 논란으로 이야기한다면 대중지성은 한낱 바보스러운 대중들의 억지 정도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지성'을 '아카데미즘의 지성을 갖춘 지식인들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대중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대중들도 공개된 지식을 토대로 지식인과 함께 토론이 가능한 열린 지성'으로 이해한다면 대중지성은 분명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된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에 이은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의 성과를 엮은 책이다. 일간지 언론이 이런 깊이있는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게다가 언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취재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터뷰와 분석을 시도한 것도 긍정적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지식인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한번쯤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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