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러스 크로싱 - 할인행사
조엘 코엔 외 감독, 가브리엘 번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장르에 대해 궁금할 때 코헨들에게 간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장르의 나선에 대한 생각들을 할 때, 코헨들을 생각한다. 코헨들의 영화에 꾸준히 나오는 원과 원 운동이라는 기호는, 내게 철저히 장르의 나선이란 의미로 다가선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밀러스 크로싱은, 어떻게 장르 관성에 대처할 것인가에 관한 영화이다.

  밀러스 크로싱은 필름 느와르에 대한 패티시가 흘러넘치는 영화이다. 이야기 또한 장르 컨벤션을 가지고 유희한다. 보스가 나오고, 보스의 여인이 나오고, 보스의 여인은 팜므파탈을 자처하고, 주인공과 보스의 연인은 밀애관계이고, 보스는 연인의 요청에 눈이 멀어 나쁜 선택을 하고, 주인공 또한 보스의 연인과의 관계로 위험에 처하는 등등, 어떤 면에서 볼 때 창조에 대한 욕심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밀로스 크로싱은 그리 녹록치 않은 영화인데, 장르의 컨벤션이란 이야기와 컨벤션이 요구하는 선택들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야기가 맞물려 진행되기 때문이다.

  맞물리는 두 이야기의 구분 점은 인물들이다. 장르의 관성에 등 떠밀리는 인물들의 선택의 논리는 결국, 장르의 논리이다. 그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웃고 화내고 총격전을 벌이고 죽는다. 예를 들어, 경철서장과 시장이란 캐릭터들은, 권력의 정점에 선자가 누구이건 때에 맞추어 아부하러 가고, 권력자에게 대항하는 갱을 처단하기 위해 때 맞추어 진압에 나선다. 관성적인 움직임이 이들을 하나의 톱니바퀴로 만들어 버리고, 이들의 행위들은 장르라는 하나의 기계를 보게 인도하고 기계의 꾸준한 관성을 보게 한다. 적절한 순간 적절한 곳에 버니로 여겨지는 시체가 등장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톰은 버니를 죽인 적이 없었고, 살려준 버니는 그에게 찾아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사실로 협박까지 한다. 그 때문에 톰은 죽어야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한 구의 시체가 그를 구원한다. 나중에야 그 시체가 스티브 부세미의 것임을 알게 되지만, 시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 장소 그 시간에, 어떤 시체이건 그 자리에 놓일 것이다. 장르는 성실하고 꾸준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톱니바퀴들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주인공 톰이다. 톰은 여기저기 기웃되면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한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 정보를 통해 조직의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안위를 지킨다. 톰의 행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보는 자의 위치에 머문다는 것과 그가 사건에 개입할 때 하지 않는 행동들이다. 그는 돈을 쫒지 않고 총을 쏘지 않는다. 엄청난 도박 빚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보스들의 도움의 손길을 뿌리친다. 버니를 죽이기 위해 총을 쏘지 않는다.

  필름 느와르 장르의 법칙을 무식하게 정의하면 '총과 돈을 탐하는 자 죽음을 맞나니'라고 할 수 있겠다. 톰의 위치와 그가 하지 않는 행동들은, 그가 장르의 나선에 안착하지 않았음을 혹은 안착하지 않으려 함을 보여준다. 장르의 나선 밖에서 모든 것을 보는 남자가 바로 톰이다. 그런 톰은 자신이 살려준 버니를 처단하기 위해 총을 쏜다. 하지만 이것이 톰의 일관된 논리를 벗어난 선택은 아니다. 죽었어야할 인물인 버니가 톰을 찾아온 뒤, 톰을 수라장에 끌어들이고, 그런 버니를 처단하기 위해 달려드는 톰의 시도는 좌절된다. 그때 버니는 톰에게 "자신이 살려달라고, '다시' 애원하면 놓아 줄 것"이라며 호언장담한다. 이 말은 톰의 선택이 관성에 수렴되었다는 선언이다. 톰은 이 때의 깨달음을 잊지 않은 것뿐이다. 그러니 톰의 발포는 그 관성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장르의 관성에 대항하는 톰은 시종일관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속마음을 볼 수 없다고 단정하거나 질문한다. 그때 상대편들은 자신만만해 하며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차이는 토대의 차이이다. 장르의 나선에 안착한 이들은, 순환의 논리만 알면 되고, 그것이 다른 안착자들의 다음 행위를 예상안으로 가두어 둔다. 하지만 장르라는 타성을 거부하는 인물인 톰은 당연히 그들의 속을 모른다. 알 것은 알고 모를 것은 철저히 모르는 남자 톰은, 필요한 앎과 모름으로 인해 수렁에서 빠져 나온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시퀸스로 간다.

  보스는 제 자리를 찾고, 버나는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 모든 사건들을 건너온 톰은 결국 조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보스와 버나는 떠나간다. 아마도 버나는 결혼 생활에 질려 어리숙한 남자하나를 끌어들이고, 그 남자는 버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보스를 속이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결국 밀러스 크로싱의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시체로 발견 될 것이다. 톰은 그것을 알고 있단 표정으로 떠나가는 보스를 바라본다. 나는 톰의 시점 쇼트인, 떠나가는 보스를 담은 쇼트에, 영화 속에서 잉여로 남아 있던 쇼트가 디졸브 한다. 영화의 타이틀 롤이 뜰 때, 나오는 세개의 쇼트들. 숲에서 하늘을 수직으로 바라보는 두개의 트래킹 쇼트와 바람에 유려히 날아가는 모자를 담은 쇼트. 앞의 두 쇼트는 버니의 시체를 찾으러 간 밀러스 크로싱에서 설명이 되었지만, 뒤의 쇼트는 설명되지 않은 체 남아 있다. 우리는 이 쇼트를 톰의 시점 쇼트에 디졸브 해야 한다.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 타성에 움직이는 기호, 장르의 관성에 실려 나가는 보스. 우리가 밀러스 크로싱을 본다는 것은, 톰의 위치에 서서 저 무기력하게 날아가는 모자가 자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성에 의해서 날아감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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