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SE - (다큐멘터리 '동' 수록)
지아 장커 감독, 자오타오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영화는 워낙 많은 예술에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면 유치하긴 하지만 굳이 하자면 '영화가 소설보다 훌륭한 점은 정보의 함축성이다'. 흔한 이미지로 설명하자면 해질녘의 느낌을 글로 구구절절 떠드는 것보다 짧은 영상으로 보이는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즉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이 소리다.

  난 이 장점을 가장 영화답다고 생각하는데 이 장점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활용한게 네오리얼리즘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 가장 영화다운 장점을 거리로 들고나가 시대의 공기마져 포착할 수 있음을 위대한 발견을 하지 않았는가... 네오리얼리즘 작가들을 제외하고 이 장점을 가장 잘 활용한 작가 중 하나가 지아장커이다.

  still life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지아장커의 말. '난 앞으로 디지털로 영화를 찍을 생각이다. 지금 중국의 급격한 변화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이기 때문이다'. 그가 디지털을 선택한건 당연 기동성 때문일 것이다. 지아장커의 말 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현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또 반응하려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난 이 말만으로도 한상밍이나 셴홍에 주목하는 것 보단 그들의 뒤에 펼쳐진 '샨샤'를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서져가고 사라져가고 물에 잠겨 사라져가는 '샨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출연하는 어느 누구도 아닌 그들이 서있는 땅. '샨샤'다.

  공산주의가 사실상 몰락하고 중국에도 자본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치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엄청나 '지아장커'가 필히 디지털을 택하게 했고, 몇 천년 역사를 지닌 '샨샤'가 2년 만에 물에 잠겨 사라져가고 있게 되었다. 한산밍이 영화 초반 보는 유로화를 중국돈으로 바꾸는 마술을 보는 듯한 마술같은 상황. 그래서 그 누구도 갑자기 나타나는 ufo나 이상한 건출물이 로켓이 되어 날아가는 것을 놀라워하지 않는다. 몇 천년 역사가 2년만에 사라졌는데 그 이상 놀랄 것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영화에서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술,담배,차, 사탕'. 이에 대한 지아장커의 말. '중국인은 술,담배,차,사탕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피거나 마시거나 먹거나 혹은 그들의 중심에 놓여 우리의 시선을 잡는 이것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과연 행복한가?'. 부서져가는 '샨샤'에서 사라져가는 '샨샤'에서 당신들은 '과연 행복한가?'. 지아장커의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샨샤'를 부수고 있는 주범인 자본은 한샨밍과 셴홍의 사람들을 빼앗아 간다. 한산밍의 친구 (자본주의체제 홍콩에 열광하는)마크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셴홍의 (돈때문에 아내를 버린)남편은 사람으로써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마져 상실하게 된다. 또 지아장커의 카메라는 '샨샤'를 펼칠때 온건한 건물들에서 사라진 땅으로 혹은 사라진 땅에서 온전한 건물로 시선을 옴긴다. 부서짐만이 남았을 뿐이다.'당신들은 과연 행복한가?'

  지아장커는 공산주의의 자리를 자본이란 괴물에 빼앗겨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란 홍수가 '샨샤'를 앗아가 듯 인간의 존엄성과 문화를 앗아가는 현실을 괴로워하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샨샤'와 사라져가는 '인간들'. 초중반부 인물과 배경의 색의 확연한 대비로 분리되어 보이지만 후반부로 향할수록 인간들은 '샨샤'의 색에 물들어 '샨샤'와 하나가 되어간다. 곧 휩쓸릴 인간들에 대한 서글픔.

  영화의 마지막 폐허와 폐허 사이에 연결된 (시간의) 줄위에서 누군가 아슬아슬하게 건넌다. 그리고 그가 건너편에 다다르기 전 한산밍은 떠나고 영화는 끝난다. 한산밍은 그리고 우리는 그의 도착을 볼 수 없다. 그 줄위의 모습만이 우리에게 남겨진다. 우리는 질문해야 된다. '저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가 아닌 '어떻게 될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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