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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1 : 거대한 전쟁의 시작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오우삼 감독, 금성무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오우삼. 난 그가 ‘페이첵’ 이후 끝났다고 생각했다. 오우삼의 다음 행로는 장 클로드 반담과 재회하거나 스티븐 시걸과의 만남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헐리우드에 머물수록 그는 처참해질 거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다행히 그는 돌아왔다. 자신의 땅으로 돌아온 그의 복귀작은 적벽대전이었다. 기대를 하고 싶지만 걱정이 앞섰다. 철혈가두의 성취보단 윈드토커의 실패가 떠올랐다. 영화는 개봉했고 기대반 걱정반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오우삼은 걱정이 되었고 양조위를 보고 싶은 맘이 컸다. 영화는 시작했다. 그리고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상이 빗나가는 것이 이렇게 흥분이 될 줄 몰랐다. 터져나오는 탄성을 억누르느라 힘겨웠다.
영화를 보기 전 가장 궁금한 것이 있었다.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까?’가 머리에 맴돌았다. 삼국지는 유명했다. 삼국지가 유명한 만큼 적벽대전도 유명했다. 적벽대전이란 이야기를 알만한 사람의 수가 조조의 대군을 쉽사리 짓밟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영화를 어찌 진행 시킬지 궁금했다. 관객 모두들 다음을 알고 의자에 앉았다. 영화가 진행되어도 사람들은 그보다 앞서 다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의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오우삼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위해 힘을 쓰지 않았다. 그는 누구나 알기에 이야기를 헐겁게 만들었다. 이야기의 포인트들을 끄집어내어 헐겁게 나열해 놓았다. 후반부 조조군과 손권군의 책략 대결은 교차 편집으로 전체적 인상만 남기고 빠르게 지나갔다. 책략으로 인한 두뇌 싸움, 그로써 발생되는 이야기의 감흥을 미룬 후 그 책략 대결의 결과인 팔괘진법을 구현해 조조군을 격파한다. 애매한 대사들과 눈빛 교환으로만 구성되던 책략이 팔괘진법의 묘미를 살려 조조군을 격파함으로 서스펜스는 이어지고 감흥은 배가 된다. 이야기가 주는 감흥을 버린 대신 오우삼은 이미지들이 일으키는 감흥과 인물들이 일으키는 아우라 그리고 그런 인물들이 엮임으로 일어나는 기운을 잡아내는데 주력했다.
삼국지의 장점은 결국 인물이다. 수많은 책략들과 흥분을 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넘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힘을 얻는 건 인상적인 인물들의 역할이 크다. 또 누구든지 삼국지의 수많은 영웅호걸 중 마음에 품고 있는 영웅호걸들이 있다. 그만큼 캐릭터가 주는 영향이 큰 이야기다. 그런 삼국지의 장점은 ‘적벽대전’은 완벽히 활용한다. 이야기를 차지하는 비중이나 출현 횟수를 떠나 상당수의 인물들의 매력이 넘쳐나기에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 인물들의 매력을 구현시킬 때 중요히 여겨지는 것은 전장에서의 일기당천의 액션이 아니라 클로즈업이다. 슬로우 모션의 빈도가 전작들의 비해 적을지 모르지만 아쉽지 않다. 적벽대전의 클로즈업은 오우삼 슬로우 모션의 성취를 이어 받는다. 설전을 벌이는 인물들의 수많은 숏들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뒤엉킨 전장의 숏들 속에서 인물들의 클로즈업이 출몰하여 그 상황 속 감정을 지연시키고 그 상황의 인상을 들어낸다. 슬로우 모션이 처절하면서 직설적으로 내꽂는 느낌이 강했다면 클로즈업의 성취는 편집으로 이루어내는 감흥으로 인한 품위다. 같은 것을 지향하지만 품위는 더욱 향상되었다. 인물들의 율동은 흐릿하지만 편집의 율동은 용솟음치기에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 매력적인 클로즈업과 그로인한 편집으로 인물을 주목하게 되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펼치는 인물들은 고스란히 자신만의 매력을 내뿜는다. 그렇기에 적벽대전에서 인물들의 등장 빈도는 중요치 않다. 영웅들 개개인의 무게감이 발휘되어 이야기를 휘어잡기 때문이다.
수많은 매력적인 영웅호걸들이 등장시킨 적벽대전을 왜 오우삼은 지금 내놓은 것일까? 주유는 유비와의 만남에서 짚신을 예로 들며 단결을 외친다. 모든 책략의 끝은 결국 진법이다. 뭉쳐서, 단결하여 싸우자고 외친다. 손권이 유비와의 연합을 천명할 때의 행동은 그 어떤 때보다 단호하다. 팔괘진으로 조조군을 무찌르는 장면은 적벽대전1의 클라이맥스다. 개인의 욕망을 위해 대군을 전진시킨 조조에 대항하여 오군은 대의를 명분으로 뭉치고 단결을 외친다. 쏟아져 내려오는 적이 너무나 거대하기에 그들의 의리에 대한 외침은 최근의 어느 영화보다 긴급하다. 내부의 적을 찾는데 혈안이 되거나, 의리의 가치 없음을 이야기하거나, 아예 의리란 없음을 외치는 영화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오우삼은 다시금 의리에 대해 강조한다. 흩어짐의 결과를 구현하고, 매력이 쏟아지는 인물들의 연합을 그려내며 의리에 대해 강조하고 의리의 매력을 인식시킨다. 허나 때가 때인지라 오우삼의 의리에 대한 외침에 적극적으로 동의함이 망설여질지 모른다. 단결의 기치가 ‘무찌르자’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망설여야할지 모르지만 그 영웅들이 결국 이루려는 것은 모두 단결하여 ‘지키자’이다. ‘힘’으로 황제를 등에 업고 ‘황제의 명’인냥 ‘수’로 치고 내려오는 조조에 대항하여 ‘지키자’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이 백성이고, 백성의 자녀들이고, 나이 많은 노인의 소이기도 하다. 치기어리고 단순하고 이상적이라고 가벼이 볼 수도 있다. 허나 가벼워 보이는 것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기에, 또 그것이 다만 오우삼의 나라에 국한 된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값지게 여겨진다.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소수의 힘. 대의를 위해 똘똘 뭉쳤지만 전장에서 장수들은 굳이 혼자 나선다. 소수가 다수를 꽤 뚫는 힘의 로망이다. 마지막 팔괘진 전투에서 볼 수 있듯 전투를 관람하던 주유가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그 저항의 움직임에 동참한다. 그런 소수란 로망과 관람자가 참여자가 되어 저항에 참여하는 행위의 친숙함에 더욱 화려하고 가슴이 들끓는다.
영화의 끝. 조조가 부하들의 경기를 보며 ‘싸움은 승패가 불분명해야 재미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시퀸스 전 주유는 ‘저들의 진법을 꿰뚫어야 이길 것’이라고 한다. 그 말에 제갈량은 미소를 띤 체 ‘그야 쉽다’며 ‘하얀 비둘기’를 날렸다. 아이 레벨로 단면만 보여지 던 조조군의 진영이 비둘기의 비상과 함께 정보량이 달라진다. 말 그대로 ‘bird's eye view’다. 그 거대한 막막함이 조금씩 허물어진다. ‘하얀 비둘기’가 적장을 날며 꿰뚫어 본다. 그 결과는 제갈량 말대로 쉽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느끼는 흥분은 설명하기 힘들다. 매력이 넘치는 영웅들이 쏟아지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주유를 흉내내며 미간을 찡그려야 할지 손권을 흉내내며 눈에 힘을 줄지 장비를 흉내내며 호쾌하게 웃을지 제갈량을 흉내내며 부채를 살지 고민이다. 그만큼 벅차게 흥분된다. 조만간 영웅본색이 재개봉하니 그 벅참은 감당할 차원의 것을 넘어 섰다. 올 여름은 오우삼을 되새겨야 한다. 그렇게 신나서 한참을 걷다 번쩍 든 생각이 있다. 뒷통수에 짜릿짜릿함이 한껏 흐른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적벽대전1을 봤다는 것이다. 그 말은 결국 적벽대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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