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22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조직이 대의를 내세우며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굉장히 혐오한다. 함께 행복하고, 개인의 욕심에 의해 다수가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선 대의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허나 그런 뜻으로 사람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난 뒤, 조직 속 개개인은 사라지고, 조직과 대의만 남아 희생을 요하는 상황은 끔찍할 뿐이다. 대의에 함몰당해 대의의 가치에 대해 열 번을 토하는 놈들도 끔찍하다. 이러한 상황들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기에 굉장히 혐오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혐오스러운 상황이 점점 내 주변에 자주 돌출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나인지라, 주변에 있는 친구들 대다수가 군대에 복무 중이거나 제대를 한 상황이다. 그런 친구들이 휴가나 제대 후 국방의 의무니, 국가를 위한 헌신이니, 남자라면 군대 등의 말을 내뱉을 때의 스트레스란 여간한 것이 아니다. 군 내부의 폭력은 내무반 속 남자들의 의리로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은 군인이란 것의 본질을 미화시키는 모양이다. 몇몇의 친구들이 애국반공마초로 변한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이렇게 대의에 함몰 당했거나 대의를 따를 것을 요하는 친구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들의 주댕이를 한방에 닥치게 할 만한 것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들이 내뱉는 숭고한 것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프고, 서로 얼굴 붉힐 일만 생기곤 했다. 이제 그런 걱정이 많이 줄었다. 드디어 그들을 한방에 보낼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난 이제 그들과 입 아프게 언성 높일 필요 없이 책 한권을 던져주며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키며 ‘꺼져’를 외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상황은 정리 될 것이다. 그리도 위대한 책은 바로 조지프 헬러의 ‘catch-22’다.

  ‘catch-22’는 이탈리아 해안의 피아노사란 섬에서 복무하는 미 공군 폭격수 요사리안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catch-22'는 미친놈의 이야기인데, 소설 속 인물들이 확고히 인정하는 미친놈은 요사리안뿐이다. 요사리안을 미친놈 취급하는 소설 속 인물들을 잠깐 설명하자면, 야한 사진을 찍기 위해 설치지만 영원히 찍지 못하는 놈, 걸리지도 않은 폐렴을 치료 안하고 죽겠다는 놈, 군목이면서 죄악을 저지를 때마다 기분이 좋은 놈, 목표물 폭격은 상관없이 탄착점 패턴만 예쁘길 바라는 놈, 7센트를 주고 산 달걀을 5센트를 받고 팔아 이윤을 보는 놈, 강간한 창녀를 창문으로 던져 죽이고 죄의식 없이 낄낄되는 놈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언급한 놈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소설 속에 이것보다 더하거나 덜하거나 비슷한 놈들이 한 가득이다. 분명한건 이런 놈들이 소설 속에서 정상인 취급을 받는다는 거다. 또 분명한건 저것들이 죄다 미친놈이고, 저런 미친놈들이 소설 속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그 미친놈들이 일으킨 사건들은 얽히고 연쇄되어 다른 미친 상황을 만든다. 앞서 언급했듯 소설 속 수많은 미친놈들은 요사리안을 미친놈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정상인 요사리안이 미친놈들 사이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수많은 미친놈들이 정상인인 우리의 주인공 요사리안을 미친놈 취급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소설이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미친놈들은 전쟁 속 질서, 군대 속 질서로 보았을 때는 지극히 정상이다. 이 말은, 전쟁과 군대 속에서 질서에 순응하는 놈들은 미친놈이란 말이기도 하다. 소설 속 미친놈들은 너무도 진지하게 군대와 전쟁 속 질서에 복종하고 행동하기에 우리의 웃음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함몰시킨 질서를, 그 질서 안에서만 합리적인 대의를 질서 밖의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그걸 보고 웃지 않기란 힘들다. 온갖 부조리한 명령에도 상하복종이 완벽하고, 국가를 위해, 선임들을 위해 목숨 받쳐 죽으려 발광하고, 쓸데없는 열병식에서 한 동작도 틀리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광경은 끔찍하거나 우스울 뿐이다. 한껏 인상을 Tm고 근엄한 척을 해도, 그것들의 본질이 지니고 있는 부조리함은 지울 수 없다. 'catch-22'에선 우리가 숭고하다고 여기고, 질서라고 여긴 것들이 종이 한 장 정도의 가벼운 차이로 폭소를 자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온갖 미친놈들이 과격한 소꿉장난을 버리며 일으키는 부조리극은 초중반에 몰려있다. 소설의 초중반은 5분에 한 번씩 폭소를 터뜨릴 수 있다. 하지만 너무도 아둔하고 부조리하여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는 소설 속 인물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후반부에 들어설수록 우리는 그 웃음 또한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비웃고 조롱한 상황들이 끔찍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참혹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미련한 소설 속 인물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헤친다. 얼마나 손쉽고 간단하게 내부의 희생자를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군인들의 자의적 희생을 만들어 내고, 군 상층부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한지 등을 들어낸다. 소설은 숭고한 대상을 인지시키고, 그것을 차분히 해체해 나간다. 전쟁과 군대에서 멈추지 않고 이데올로기에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얼마나 등신 같은 짓인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 실체란 것이 ‘자신이 미친놈임을 아는 미친놈은 미친놈이 아니기에 귀국할 수 없다.’란 소설의 제목인 ‘catch-22’만큼 부조리한 것임을 들어낸다. 너무도 아이러니하고 통쾌하게 그것을 입증시키는 대목이 있는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함축하는 말을 매음굴을 관리하는 노인의 입을 빌린다.

  “국가가 뭐지? 국가는 흔히 인위적인 경계선으로 사방을 둘러싼 땅 덩어리에 지니지 않아. 영국 사람들은 영국을 위해 죽고, 미국 사람들은 미국을 위해 죽고, 독일 사람들은 독일을 위해 죽고, 러시아 사람은 러시아를 위해 죽지. 지금 전쟁에서 싸우는 나라의 숫자는 쉰이나 예순쯤 되지, 그렇게 많은 나라들이 모두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분명히 거짓말이야 ...(중략)... 그리고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할 가치가 있지”

  개인적으로 소설 속에서 가장 빛났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마일로에 관한 것이었다. 마일로는 전시 상황에서 신디케이트를 통해 기업을 운영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거래하는 곳마다 시장이 되고 후작이 되는 등 권력 층 꼭대기에 자리 잡게 된다. 적과 아군 가리지 않고 거래하며 권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마일로는 그 자체로 전쟁의 속성을 들어내고, 자본가가 얼마나 흉폭할 수 있는지 들어낸다. 바로 2차대전에서 미국이 전쟁을 통해 돈 맛을 보는 속성을 들어내고, 그 전쟁에서 자본가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들어내는 것이다. 마일로가 주창하는 시장의 자유, 그 자유를 통해 활성화 된 시장이 경제적 이익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이익은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며 포장되고, 애국의 상징이 된다. 이것이 마일로가 이익 창출을 위해 자국 부대를 자신의 기업이 소유한 폭격기로 폭격하고도 추앙 받는 대의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 사는 우리는 이런 식의 포장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정부 측 발언, ‘경제 활성화’와 ‘애국이란 이데올로기’를 조합한 기업들의 쇼비니즘 광고 등을 통해 쉽게 봐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들어내는 마일로의 말이 있다.

“우린 국민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돈은 우리가 간직하고, 중간 과정은 생략할 수 있죠. 솔직히 얘기해서 전 정부가 전쟁에서 손을 떼고 그 일을 전부 개인 기업에 맡겼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가진 돈을 모두 정부에 지불한다면, 그것을 즉 자기편 장병과 비행기를 스스로 폭격하는 개인들의 기를 꺽고 정부만 옹호하는 샘이 됩니다. 우린 그들의 보상을 박탈하게 되는 셈이죠.”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마일로에게 악의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충실히 시장이 이끄는 질서에 자신의 머리와 행동을 맡겼을 뿐이다.

  이런 부조리와 부조리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을 담고 있는 소설은 다소 특이한 구성을 담고 있다. 예를 들자면, 간혹 인물들의 대화는 말의 주인이 표시가 되지 않아 누가 말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되는 상황, 한 문단 속 공간과 시간이 별다른 표시 없이 쉼 없이 바뀌고, 대화 도중 쉼 없이 바뀐 시간과 공간으로 답변자가 바뀌는 경우 등이다. 이러한 공간, 시간, 발언자, 답변자가 쉼 없이, 그리고 갑작스레 바뀌는 구성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공간, 시간, 인간으로 촘촘히 엮어내게 된다. 그렇게 하여 응축된 것들은 부조리한 혼동, 그 자체를 들어낸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 누가 말하던 전쟁과 군대 속에선 죄다 미친 상황과 미친놈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전쟁이란 것이, 군대란 것이, 대의에 목숨 거는 것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미친 짓인지 들어내는 것이다.

  'catch-22'는 내가 본 반전 소설 중 가장 유쾌하고, 적나라하고, 슬프고, 참혹하며, 끔찍하고, 위대한 소설 중 하나다. 조지프 헬러는 소설 속 오르처럼 치밀하고 명랑하며 적나라하게 전쟁을 분해하고, 그 전쟁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를 해체 했기에, 소설을 읽고 남는 것은 감탄뿐이다. 이제 한없이 진지하게 구는 그 수많은 전쟁영화를 어떻게 감동하며 볼 것인가? 죄다 ‘지옥의 영웅들’, ‘닥터 스레인지러브’, ‘철십자 훈장’처럼 보일 것 같아 걱정이다. 인상을 찌푸리고, 흙먼지 뒤집어쓰고 폼을 잡아 멋있는 척하는 영화들이 얼마나 부조리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요사리안이 오르의 진실을 깨닫기 전, 자신을 강박적으로 괴롭히던 스노든과의 참혹한 기억이 갖고 있는 진리를 밝히는 글로, 이 글을 맺는다.

“그의 창자가 전하는 뜻은 이해하기는 간단했다. 인간이란 물질이다. 이것이 스노든의 비밀이다. 창문에 던지면 그는 떨어지리라. 불을 붙이면 그는 타버리리라. 그를 묻어 버리면 그는 다른 쓰레기나 마찬가지로 썩으리라. 영혼이 사라지면 인간은 쓰레기다. 그것이 스노든의 비밀이었다. 모두가 곪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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