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맙소사의 연속이었다. 닳고 닳은 표현이지만 한번 펼치면 엉덩이 때기 힘들었고, 늘어가는 책장의 수가 몹시 서운했다. 호들갑이지만 관촌수필에 대한 호들갑은 마음껏 떨고 싶다. 조급할지 모르나 관촌수필에 사로잡힌 수많은 이유 중 하나를 어서 들고 싶다. 바로 근대화가 지닌 추악성이다. 내가 관촌수필에서 감탄한 모든 것들은 근대화가 지닌 추악성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에 비해져 더욱 가치를 발하고 있다. 항상 근대화에 대한 고민을 지니고 있었던 바, 그 테마를 관촌수필에서 격조 있게 다루는 것을 목격했을 때 어찌나 통쾌하고 감동했는지 모른다.

 

 

  여기서 잠깐 내가 왜 근대화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 설명하려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왔다. 11년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 동네는 다른 곳에 비해 공사가 잦았던 곳이다. 지금이야 서울, 아니 지방 곳곳 공사가 끊이지 않지만 이사 왔을 당시만 해도 위협적이었을 만큼 공사율이 현격히 높았던 듯하다. 코 흘리고 만화 케릭터 딱지를 모으며 놀던 시절부터 눈에 뵈는 동네 풍경엔 공사판이 꼭 끼어 있었다. 집체만한 트럭이 차도를 가르고 인도를 막고 동네를 가르며 돌아다녔고, 공사 장비의 소음과 위협적인 공사 자제들은 산속 새 울음과 나무마냥 동네를 수놓았다. 재개발이나 집값 시세 등의 단어는 아이들 입에서 쉽게 달려 나왔다. 그만큼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부실 것 다 부시고 세울 것 다 세웠다고 여길 때 쯤 부동산 투기 활성화로 조금만 늙어 뵈는 건물이란 건물은 죄다 헐리고 허연 대리석 건물이 동네를 채웠다. 눈에 항상 보이기도 보이고 공사란 것이 꽤나 흥미롭기도 한 광경이기에 자연히 머리에 중요히 들어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리에 중요히 들어찬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다. 추억이 서린 공간에 대한 향수에 연유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옛스러움이 지닌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공사에 대한 생각이 잦고 깊어질수록 옛스러운 것이 주는 맛에 대한 생각 또한 잦고 깊어졌다. 공사하여 새로 들어선 건물들은 깔끔하고 사람 살기 편해 보이긴 하나 그 건물 전에 있던 것들에서 느껴지는 향수에 비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암튼 지랄 맞게 미친 것처럼 공사로 동네를 들쑤시는 것을 멈출지 모르는 곳에 살았기에, 또 그 공사로 앗아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가 커다랬기에 근대화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관촌수필에 두 손 다 들고 뿅 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이면서 주인공이기도 한 이문구가 옛 고향 관촌부락을 방문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때부터 놀라울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죄다 살아나는 관촌에 대한 묘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세밀한 묘사로 살아나는 이문구의 기억 속 관촌의 풍광은 구수한 문체와 풀내음 나는 단어들로 직조되어 그 자체로 과거의 가치, 그리움, 아쉬움,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한다. 자잘한 수많은 사물을 애정 어린 묘사로 인해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그래서 인지 슬레이트 지붕 등 근대화의 표상으로 묘사된 사물은 눈에 보이듯 불편함을 일으킨다. 그렇게 미려한 문체는 변해버린 현재의 관촌과 과거의 관촌을 자연스레 비교하게 한다. 그 비교 속에서 수많은 발전과 시간의 흐름 속에 채워지기 보단 부재한 것이 현격히 많음은 자연히 들어난다. 그런 부재의 씁쓸함을 느끼다 보면 순간 더욱 씁쓸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 씁쓸함이란 바로 책속에 새겨진 단어들이 지금은 눈에 익지 않은 잊혀진 단어란 사실이고, 과거와 비교되어 많이 황폐해진 현재의 관촌도 소설 밖 현재와 비교하면 정겹기만 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잊혀진 단어 중 방언과 비속어가 더러 있긴 하지만 그 많은 단어들의 잊혀짐은 그 단어들이 묘사할 사물의 결여와 굳이 묘사할 가치나, ‘때’가 없음을 고스란히 들어내고 있기에 씁쓸함이 더욱 크다. 그 잊혀진 단어가 묘사할 사물이나 그 뜻이 몹시도 따스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관촌수필을 읽으며 이문구 선생에게 정말로 감사한게 있다. 바로 옛 것의 그리움이 수구적 태도를 지닌 꼰대의 잡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어릴적 놀이와 마을 잔치, 동네 뒷산과 갯벌의 풍광,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가치일 것이다. 그 상실된 가치에 대한 기록과 증명이자 안쓰러운 현재가 ‘요즘 것들이 못 되 처먹어서’가 아닌 근대화란 이데올로기의 폐해임을 들어내고 있기에, 그것에 대한 안쓰러움이기에, 그 태도에 정말로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관촌수필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가장 감동스러운 편(篇)으로 꼽을 공산토월에서 서울로 가는 주인공과 작별을 고하는 석공이 한 말이다. 


  “부디 성공해서 옛말 허며 살으야 되어. 원제던지 편지허구, 한번이나 내려오게 되면 내 집버텀 들르야 허네.... 기별 자주 허구, 몸 성이 잘 올러가게....”


  이 석공의 말에서 옛말하란 당부가 내 마음을 심히 흔들었다. 사람의 생각이란 말의 직조로 형성되는바, 생각의 기초를 다진다 할 수 있다. 옛말을 하란 말인 즉 옛 정신을 버리지 말고 품고 살라는 당부이면서 관촌수필이 반복해 말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관촌수필이 증명하는 가치에 동의하고, 석공이 작가에게 하는 당부이면서 작가가 우리에게 하는 ‘당부’이기도 하니 심히 감격스러웠다. 공산토월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 마음 씀씀이가 굉장히 커다란 어른의 진심 어린 당부인 탓인지 굉장히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석공이 백혈병에 걸리고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작가와 악수를 할 때, 일주일간 울음을 참던 작가가 “나는 울었다”며 고백할 때, 나 또한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그런 진심어린 당부가 기록된 책이 출간 된 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분명 옛 정신은 더욱 많이 지워졌으리라 생각된다. 그 정신과 가치가 지워진 자리, 그 공백에는 돈의 가치와 힘의 가치가 채워졌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석공과 작가의 고별에 난 울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단 생각이 든다. 돈이나 힘의 가치를 쫒는 세상에 별 생각 없이 또는 무의식에라도 동조했을 것이란 생각에 염치가 없어 울 수가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