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작 20대 초반이라 그런지 성장소설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편이다. 내가 성장하며 겪고 있는 일과 유사한 에피소드들이 주는 공감과 작가의 선경험이나 그 경험을 통해 유추된 사회에서 발생될 에피소드들이 주는 애환은 강렬한 이입을 일으키곤 한다. 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읽은 성장소설 중 단연 최고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다. 소설은 한 인간의 성장이 주를 이루는 ‘인간실격’은 잦은 자살시도, 약물 중독, 아내의 강간 목격 등 수많은 실패와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허나 삶에 대한 온갖 비관으로 얼룩진 소설이 우리에게 냉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처절한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하고 답을 찾을 것을 요한다고 생각한다. 그 절망적인 삶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임이 들어 났을 때, 소설을 읽고 있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였음이 들어날 때의 감동이란 쉽게 표현하기 힘들다. 

 

  천둥의 계절 또한 성장소설의 분류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을 하게 되며 겪는 공포를  ‘바람와이와이’란 정령에 의지하여 돌파하는 이야기가 주인 판타지지만 온이란 곳이 비밀의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도쿄의 다른 차원이 듯 현실의 자락을 쉽사리 놓지 않는다. 도쿄와 온은 서로의 과거인양 미래인양 은유로 작용되고 있다. 여러 명의 버림받고, 혼자가 될 것을 강요받는 이들이 성장하며 맞닥뜨리는 공포는 자신이 의지하던 세상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악행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과 그 질서의 요구에 모든 것을 증발시켜 꼰대가 되어버린 실체와의 조우다.


  시스템 유지를 위한 폭력은 최근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하여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고 아찔한 부분이었다. 옛 멋을 간직하고 풀 냄새가 가득한 전원처럼 묘사된 가상의 공간인 온이 유지되기 위해 벌이는 사람들의 악행의 실체와 그 비정한 질서에 순응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주는 비관의 감흥은 강렬했다.


  시스템에 완전히 적응하여, 그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해 악행을 버리던 ‘도바 무네키’는 그 자체로 소설 속 극강의 악으로 그려지고 있다. 불멸의 존재로써 끊임없이 되살아나던 ‘도바 무네키’는 결국 참담한 최후를 맞는데, 심장을 뜯겨 봉인 당해 살아나도 곧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심장을 잃고 시스템에 천착한 (영겁의 회기를 하는) 악인의 소설 속 세계가 지옥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찌하여 ‘악인이 되어버렸냐?’만이 아닌, 어떻게 하여 ‘악인을 이겨내고 버텼는가?’다. 세상에 치여 아이다움이 증발하여 냉랭해진 ‘겐야’가 냉소에 함몰되지 않고 ‘바람와이와이’로 상징되는 ‘그것’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에 그 폭력에서 버텨 낸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 새로운 계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태도라 생각한다.

 

  수많은 인물들을 조리 있게 엮고, 재치 있는 복선과 서사가 주는 묘미와 그로인해 발생되는 반전은 꽤 흥미롭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인해, 흥미로운 기호들과 세계관이 증발하는 것은 큰 단점이다. 이러한 빠른 진행이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서사의 묘미가 주는 흥분과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그 속도에서 증발되는 수많은 것들이 못내 아쉽기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천둥의 계절 또한 풍부한 듯 묘사된 세계가 복기하면 분열되어 황량하게 붕 떠버린 느낌이 강하다. 그 풍부한 것 같은 세계는 읽고 있는 그 순간, 그 속도 속에서만 존재해 버린다 생각된다. 필연적으로 황량해질 세계란 단점과 함께 인물들의 사연 또한 속도 속 착각의 풍성함인 빈약함이기에 못낸 아쉽다. 속도로 즐기고 접어서 온의 저편으로 보내버리기엔 소설이 내세우는 기치가 너무 어울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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