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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평점 :
촌놈들의 제국주의. 이 책은 결국 책명으로 정리된다. 촌놈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부를 위해 파시즘을 선동하고, 능력도 없이 제국주의를 실현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 촌놈들의 삽질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평화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런 촌놈들의 삽질의 시작은 충격적이게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DJ의 독트린에 있다. 평화를 부르짖으며 북한 개방을 시작한 DJ의 선택이 모든 삽질의 시작이 되었고, 그 시작은 노무현을 만나 지독한 민족주의자들과 결합하여 제국주의 열망의 기운을 퍼트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MB를 만났다.
책을 읽기 전에도 난 남과 북이 통일되면 북한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거란 상상을 하곤 했다. 이 책에서 언급한 건설자본의 투입과 북한과 남한의 통일로 인한 시너지로 촉발될 군수복합체를 차치하더라도 부동산으로 부를 채운 투기꾼들이 북한 땅을 밟고 섰을 때의 표정을 상상하기란 쉬웠다. 그리고 그 상상은 금강산 골프장이란 모습으로 구현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게만 생각되는 홀인원 전용 코스는 북한에 진출한 촌놈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들이 팔만 휘둘러 홀인원하는 좀비 골프를 하는 동안 금강산이란 자연은 쉽게 얻는 쾌감의 가중치를 얹은 등가교환 하듯 처참히 희생되어 갈 것이다. 그런 멍청한 홀인원에 환장한 촌놈들이 조성한 남한 사회의 앞날이란 코스는 온갖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쇼비니즘 마케팅의 달콤한 유혹을 거쳐 제국주의 열망을 향한 장렬한 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의 핵심에 아쉽게도 북한이 있다. 저임금 시장, 개발이 안 된 토지들 등 촌놈들이 침을 질질 흘릴 요소가 한 무더기로 쌓여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그 통일의 가치가 이리도 흉악스럽기에 이를 악 깨물고 통일의 의미를, 우리가 통일에 갖는 바람을 제 반추 해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촌놈들의 욕망을 ‘그런 놈들이니까’란 냉소를 내걸어선 안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놈들이 끌고 올 것이 제국주의란 비윤리적 행동만이 아닌 전쟁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시니컬한 태도가 아닌 평화에 대한 열망이다. ‘순진무구한 로망이다’, ‘촌스럽다’고 말하려는 태도는 버리고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이 우석훈이란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고픈 선물일 것이다.
동북공정, 독도 이것들이 자극하는 건 애국심의 저변에 깔린 증오다. 자제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상당기간 멍하니 촌놈스럽게 살아서인지 독도란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레 증오가 싹트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빠방하게 군수강국이 되어 ‘땟놈’과 ‘쪽바리’를 까부시는 골수 마초적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내 양심을 속이는 짓이 될 것이다. 허나, 단순 쾌감을 얻기 위해 한 증오와 상상이 요구하는 값은 쌓이고 쌓여 전쟁이 될 것이다. 국가란 이름 아래에 휩쓸려 희생되는 것이 우리가 증오하고 태왕사신기스러운 상상을 한 결과가 될 것이다. 쥐뿔도 없어서 ‘나’란 것의 가치를 유일하게 설정해줄 민족주의에 열렬히 기댄 것의 결과가 요구하는 것은 애국의 이름 아래에 우리를 군사란 숫자로 취급하여 개죽음 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평화란 단어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 세계화에 열광하며 ‘경제’적 합일과 ‘경제’적 침략 등에 대한 강력한 힘의 욕구만 팽배할 뿐 다른 나라와 같이 다함께 잘 살자는 정신을 자꾸 잃어버리는 지금 필요한 건 긴박한 평화에 대한 논의뿐이다. 마초적 로망이 아닌 하얗게 빛나는 평화의 로망에 대해 생각할 때인 것이다. 이런 근본적 요구를 촌스럽다 여기지 말자.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런 시니컬한 태도가 얼마나 촌스러운지 생각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평화에 구현에 앞서 생각할 것이 있다. 우린 쉽게들 미국의 제국주의 기질에 대해 욕하곤 한다. 우리가 과연 그런 식의 비판을 할 윤리적 위치에 서있기나 한 것일까? 박태환, 김연아, 한류, 박진영, 심형래, 황우석, 자원외교 등이 지목하여 우리를 열광시키는 것이 무엇일까? 그 열광의 핵심이 온전히 윤리적 위치에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쇼비니즘에 열광하는 지금, 자국 우수성에 열광하는 지금, 한국이 결국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될거란 광고가 판치는 지금 우리가 과연 미국과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언더그라운드’를 만든 에밀쿠스트리차 감독이 집시밴드와 함께 내한 공연을 와서 한국에 대한 인상에 대해 말할 적이 있다. “굉장히 미국적이다.”란 것이다. 정책적 목표 등을 차치한 한 국가의 도시에 대한 이미지에 한한 인상이였을 것이다. 허나 우리의 미국스러움이 과연 인상에만 머물겠는가? 국민 대다수의 찬성으로 인한 이라크 파병을 잊어선 안된다. 그들이 전원 복귀하지 않고 주둔하고 있는 지금을 망각해선 안된다. 자국의 자원 확보에 대한 열망만 있을 뿐 한국 기업이 침투해 쑥대밭을 만들 그 나라들의 생각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란 결국 비루한 결과만 나올 뿐이다.
솔직히 전문가의 분석을 차치하더라도 한국의 민족주의나 패권주의의 성향이 짙은 것은 사실이다. 힘에 대한 열망이 강력한 것이 사실이다. 자신들을 진보 진영이라 언급한 이들이 쇼비니즘과 그것으로 선동하는 건설정책과 뉘앙스만 부드럽게 꾸며놓은 자원외교 등에 앞서고 좌익을 자처하는 이들이 북한의 핵 보유를 찬성하는 모습은 비밀이 아니다. 부국강병을 꿈꾸는 모습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기자.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필요하다. 단일 민족이라고 좋아 죽을 때 우리가 잃는 것은, 한류라며 한국의 문화 바람이 아시아 최고라며 좋아 죽을 때 우리가 잃는 것이 무엇인지, 박진영, 심형래, 황우석 등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우리가 잃는 것이 잃는 것이 무엇인지 복기할 때가 왔다. 평화의 가능성이다. 평화는 공공재이기에 평화를 얻는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아무생각 없이 무임승차를 한 것이다. 그런 망각을 부시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전쟁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다면 정말 값질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그렇기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냉소로 점철된 내 모습이 지금만큼 허접할 때도 없다. 한 시대의 지식인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진심을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정말 멋진 로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