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혜원세계문학 23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혜원출판사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레마르크의 망명 문학. 망명으로써의 문학보다 절망으로써의 문학에 중점을 두고 싶다. 무엇에 대한 절망인가? 도례하는 전쟁인가? 그럴까? 인간에 대한 절망은 어떠한가? 레비크가 그렇게 시니컬한 태도를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절망이라 생각된다.

 

부질없음에 목매고 현실을 망각하고 내일의 기대를 하는 인간. 학습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절망. 라비크가 지나온 길의 모든 인간이 한번의 세계대전을 겪었으나 학습되지 못한 체 전쟁으로 달려 간다. 그 학습되지 못한 인간들은 오늘의 밥벌이와 옷차림, 설마라는 아닐꺼야라는 끝없는 자위만을 반복할 뿐 학습을 거부한다. 매달릴 뿐이다.

서사가 달리 프랑스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밖의 공간을 과거로 회상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은 학습되지 못하는 인간의 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현재의 공간이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로 인해 각국에서 피난민들이 몰려 와도 그들은 설마를 외치고 부질에 매달린다. 프랑스인들이나 프랑스 언론들의 설마와 다리한짝 보단 돈이 줄 내일을, 새로 차린 카페에서의 내일을 꿈꾼다. 그러나 그 내일은 전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망각한다. 학습되지 못한다.

그 학습되지 못함에 라비크는 벗어나는가? 그렇지 못하다. 그를 지탱하는 건 학습이 아닌 처절한 경험이다. 그로인해 그는 시니컬함을 가졌지만 결국 아둔한 인간으로써 돌아가는 것 뿐이다. 죽음이 지키고 있는 내일을 망각하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복수를 꿈꾸고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 사랑을 한다.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그렇게 한다. 그리 행동한다. 도래한 내일은 전쟁이다. 그는 수감소로 향한다.

개선문의 중요 이미지로 작용하는 개선문은 그들의 우둔함의 형성화다. 죽음이 다가오는 지금 과거의 승리의 기념품인 개선문은 단지 부질없는 돌덩이에 불과하다. 승리를 붙잡으려 개선문을 만들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건 전쟁으로 인한 승리의 기념품이 아닌 전쟁을 일으킨 것의 학습이다. 개선문이 그 자리에 있음으로 그들에게 당연히 전쟁이 도래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개선문은 어둠에 잠긴다. 죽음에 잠긴다.

레마르크의 시니컬한 시선은 단지 거기서 멈추는 것일까? 과연? 그렇게 믿는 순간 우리는 파리의 다리 잃고 돈을 챙겨 기분 좋은 소년에 불과하다. 극도로 높아진 전쟁의 기운. 이것을 망각하면 우리는 결국 전쟁을 맞을 뿐이다.

지금은 단지 학습되지 않은 우리의 마지노선이다. 우리는 전쟁에 문탁에 서있는 아둔한 사람이다. 우리는 끝없이 제2의 개선문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딸 김연아,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등... 우리는 한국의 승리에 매달리고 염원한다.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전투적 승리로 일루어낸 기념품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짜맞쳐지고 부족은 판타지로 매꾼다. 역사 속 인물들은 애국심을 위해 싸운다. 주신? 고구려? 애국심의 반향이다. 김연아는? 한국의 우수성을 끝없이 올리고 억지로 시선을 올리는 프로파간다로 소비된다. 김연아의 주 타겟은 아사다 마오고 우리는 열광한다. 무엇에 승리에 한국의 우수성에... 김연아는 애국을 했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우리는 학습이 되지 않았다.

중국은? 일본은? 동북공정과 끝없는 독도문제.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 '등등등..' 끝 맺혀야될 문장. 주변국도 마찬가지는 우리도 어느정도 대응해야 되지 않나? 학습의 문제.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다. 그 어떤식이 전쟁으로 종결 될지, 거창하지만 평화로 종결될지 정하게 된다. 과연 승리로써의 대응, 동북공정과 다를 바없는 역사는 실종되어버린 사극으로 불리는 것들이 합당한 대응일까? 과연? 애국심으로 향하여 광분하면 그 뒤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지 우리는 망각해 버렸다.

레마르크의 시선은 멈춰선 안된다. 우리는 아직 학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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