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한길그레이트북스 43
플라톤 지음, 김태경 옮김 / 한길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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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플라톤은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산이다. 같은 대화편을 읽어도 어제 읽을 때와 오늘 읽을 때가 다르니 수번을 읽고 또 읽어도 놓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진다.
플라톤의 「정치가」도 바로 그런 저작 중의 하나이다. 바로 이 대화편에서 파생된 논의들은 전부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이다. 그래도 꼭 하나 꼬집어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연구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되는 플라톤의 ‘파이데이아(paideia)' 개념을 바로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가」 바로 이전에 쓰인 「소피스테스」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다행이도, 매번 볼 때마다 길 잃고 헤매는 독자를 위해서 약 80페이지에 달하는 자세한 설명이 앞어서 읽을 수 있으니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먼저, 이 대화편에서 내가 주목해서 보는 부분은 인식적(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구분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분류는 서양 문화 전체에 크게 이어져 왔으니 그 어찌 중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는 인식적 지식을 다시금 지시와 판단이라는 범주로 나누어 보는 것보다 더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역시 독자가 얼마나 찾아내는 것에 달린 것이다.

또 하나, 플라톤에 주목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들을 아주 근본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해주기 때문일테다. 막스 베버의 용어를 빌려다 보면, ‘이상형’으로서 나오는 ‘왕도적 치자’는 역시, ‘이상형(idealtypisch)'의 어원이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완성적이고 이데아적 상황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정치가의 전체적인 내용 자체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크게 감명 깊을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관점에서 ‘이상형’에 대한 논의를 살펴봄으로 해서, 즉 이 대화편을 통해서 더 나아가 플라톤의 「국가」를 통해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국가, 어떤 통치자가 좋은 통치자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째서인지 지금 여기서 다시 물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현대에서는 하나의 통치자, 혹은 소수의 통치자를 기본으로 하지 않고, 모든 시민들이 참여한다. 즉 정의를 구현하는 주체가 모든 시민에게 있다. 하지만, 역시 플라톤의 논리도 전혀 설득력이 아니다. 내가 이빨이 아프면, 치과에 가지 친구들과 가족들과 상의하고 있지는 않는다. 전문적인 통치자를 설정하는 부분이 아마도 이러한 것에 있지는 않을까?
지금 모든 시민들이 통치자가 되었을 때, 과연 이 사회에서의 ‘왕도적 치자’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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