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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ㅣ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최근 ‘반려동물’이란 말이 ‘애완동물’이란 표현을 대체하고 있다. 愛玩이란 말의 한자말은 둘 글자 다 사랑한다는 말이 있어 실상 나쁜 표현은 아니나, ‘玩’자에서 나쁜 어감의 느낌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伴侶’라는 말은 우리말로 표현하면 ‘짝꿍’과 같은 말이다. 주로 배우자에게 쓰이는 표현이 동물에게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만 보아도, 일부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네하라 마리의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는 바로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내고 있다. 역시 제목부터 느껴지듯이 ‘반려 상대방이 꼭 이성의 사람일 필요가 있겠는가?’ 묻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과 짝꿍이 된 개와 고양이의 만남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에게 이 만남은 언제나 특별하고 감정이 넘쳐흐른다. 나는 반려동물이 없지만 이런 작가의 묘사를 읽으면서 러시아의 길목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특히 그 느낌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애묘인들이 흔히 묘사하는 ‘캣맘’이다. 캣맘은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 국내에선 주로 고양이를 짝꿍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고양이 전체에 대한 사랑과 관심 또는 측은함을 느끼면서 캣맘으로 활동하곤 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나와 같은 경우는, 역시 요네하라 마리 작가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만남을 통해서 캣맘이 되었다.
작년 봄 우리 아파트 단지, 그것도 나의 집이 있는 입구 앞에서 회색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고양이가 내 다리 사이를 비집으며 들어와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며 친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당시 학부전공과는 다른 대학원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늘 상 앉아서 책을 파고 있는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깨물어주고 싶은 고양이가 갑자기 나를 자극한 것이었다. 나는 바로 마트에 가서 고양이 먹이 (아니지 ‘푸드’라고 해야한다고?)를 사들고 와 작은 그릇에 덜어 고양이를 만난 바로 그 지점에 두었다. 그 때 이후로 비가 오나 폭설이 오나 개의치 않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길냥이들에게 무료 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그 깨물어주고 싶던 고양이는 아마도 집나온 고양이었는지 유기동물 보호소를 거쳐 입양되었다. 하지만, 그 고양이를 주려고 내놓은 먹이를 다른 고양이가 와서 먹는 것을 보고 지속적으로 급식을 하였다. 그 사이 밥그릇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급식위치도 바꾸었고, 밥을 챙기는 고양이의 수도 3~5마리로 늘었다. (3마리는 매일 매일 보는데, 2마리는 종종 보게 된다.)
한 마리가 폭설 이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그 아이가 늘 밥 먹던 자리에서 울었다. 나는 감정기복이 없었다. 아마도 생활이 건조한 탓인지 기쁨도 슬픔도 잘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고양이를 만나고 나서는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 왜, 종종 부부 사이는 관계에서 기쁨도 슬픔도 잘 느끼지 못할 때 끝난다고들 하지 않는가. 고양이들은 이점에선 변함이 없다. 내게 늘 기쁨과 슬픔, 걱정과 우스움과 같은 복잡한 감정을 짧은 시간 내에 최대로 끄집어낸다. 고양이를 만나는 저녁 즈음의 30분은 하루의 활력이다. 이렇게 동물과의 관계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요네하라 마리 작가의 글들의 반은 무리와 도리, 겐과 타냐와 소냐 그리고 노라가 쓴 것이리라. 만남과 잃음의 사연과 그들과 함께 했을 때의 짝꿍과 나를 둘러싼 세계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틀림없다. 모든 순간들은 특별하다.
오늘도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집에 들어오니 우리 가족은 내게 물어보았다. ‘오늘은 어땠어?’, ‘오늘 올블랙은 어떻더냐?’하고. 노랑이와 이쁜이와 올블랙과 깡패와 주둥이 흰 아이와의 만남은 늘 특별하기 때문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짝꿍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