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용어 바로쓰기
박명림, 서중석 외 지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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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간 우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각종 시험에서 한국사가 필수가 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에 대해 법정에서 많은 공방이 오고 가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벌이고 있는 소위 동북공정은 우리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심지어 최근 일본 정계에서 다시금 과거 그들이 자행한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 재해석하려고 하는 작태까지...

하지만 우리의 우리역사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자문해 본다. 중국이나 일본의 행위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좀 더 이성적으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역사용어 바로쓰기]를 읽었다. E. H. 카도 말하고 있듯이 과거의 역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바로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에 의해서 역사는 끊임없이 새롭게 재해석되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이 용어이다.  서양의 인문학자인 알튀세르는, 흔히 호명테제로 불리기도 하는 말에서 , 인간의 사회화과정의 출발은 호명(interpellation), 다시 말해, 이름이 불림으로써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한 사건에 대한 이해는 바로 그 사건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바로 역사용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과거에 배우고 들었던 언어나 표현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된다. 우리 시대의 한국사와 연관된 많은 학자들의 고민과 우려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과거의 잘못된 용어를 수정할 것을 제안할 뿐아니라 달라진 역사적 시각에서 과거 역사 또는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전체 우리 역사는 아니지만 역사의 여러 단면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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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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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영어로 genocide, 우리말로 인종학살 또는 인종말살. 그 의미를 알고 보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제노사이드는 항상 있어왔다. 그렇지만 제노사이드가 공식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언급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히틀러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서부터이다. 그후 제노사이드는 유엔헌장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록되었고 유엔에 속한 많은 나라는 이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인간은 제노사이드를 자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신문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본다.

사실 제노사이드의 이런 측면에 대해 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알고자 이 책을 주문했지만 알고 보니 소설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반감되었다. 하지만 우연히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들어 8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을 단숨에 읽었다. 한 마디로 재미있었다. 그리고 제노사이드을 소재로 한 픽션이지만 그 안에서 제노사이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이론서가 있을테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제노사이드에 대해 이해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듯하다.

줄거리를 말하면, 특히 소설의 경우 그 재미가 반감되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재미는 제노사이드를 소재로 하면서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는 진화생물학과 관련된 우리의 생각의 한 단면, 어쩌면 약간의 공포와 두려움을 다루고 있다. 만약 진화론에서 우리의 계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네안데르탈인을 거쳐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조건을 다른 생명체보다 월등하다고 자부하며 만물의 영장으라고 스스로를 천명하였다. 그런데 우리 호모 사피엔스 이후 새로운 진화된 인간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두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간은  우리보다 월등할 것이고 그것은 지금껏 우리가 자부하던 가장 큰 자랑거리를 상실하는 것일 것이다. 이 글의 주는 공포과 스릴은 그런 측면에서 독특하다. 또한 제노사이드를 하나의 본능처럼 행하고 있는 인간은 얼마나 추악한가를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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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서설 - 구송에서 기억으로, 고대 그리스의 미디어 혁명 현대의 고전 2
에릭 A. 해블록 지음, 이명훈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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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국가]에서 플라톤은 시인을 자신의 꿈꾸었던 이상사회에서 추방하고자 했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플라톤은 한 마디로 문학 또는 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플라톤이 왜 시인을 추방하고자 한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에 플라톤 당대의 상황과 연관지어 설명하고자 한 것은 드물다. 해블록의 이 책은 이런 측면에서 상당히 관심을 끌만한 저작이다.

해블록은 이 책에서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에 대한 문화적 고찰을 시도하고 있다. 해블록에 따르면, 플라톤의 [국가]를 그의 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국가]는 당대 그리스의 교육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철학교육에 대한 주장이다. 이 책의 부제인 "구송에서 기록으로"는 당대 그리스의 구송 문화에서 기록문화로의 변천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요구된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한 설명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전체 2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주로 1부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설명하면서 서사시가 그리스의 전통적인 교육의 텍스트였음을 주장하고 그 호메로스의 서사시, 특히 [일리아스]를 통해 그리스의 교육과정과 내용을 설명한다. 2부는 전통적인 구술문화에 대비를 이루는 기록문화에서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따라서 이 책은 플라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줄 뿐 아니라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동시에 구술문화와 기록문화에 차이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플라톤 서설"(Preface to Plato)은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하기에 앞서 읽어야 할 책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말고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해블록의 [국가]에 대한 태도이다.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그가 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책인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다양한 내용을 수용한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글읽기는 책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 내용을 확인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즉 해블록의 연구는 바로 적극적인 플라톤 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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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의 승리 -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존 올콕 지음, 김산하.최재천 옮김 / 동아시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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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내놓은 이후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기원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이는 종교, 특히 기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한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어찌 인간이 원숭이랑 비교가 될 수 있어!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니 말도 안돼! 이런 말들이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논쟁과 싸움이 에드워드 윌슨이 1975년 [사회생물학]을 내놓으면서 다시금 불타올랐다. 인간의 다양한 사회 활동이 더 이상 인간 만의 행동이 아니라는 내용을 그 밑바탕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생물학계 내부에서는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고 진화론을 받아들여진 마당에 다시금 윌슨은 동물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의 유사성에 대한 논의는 생물학계 내부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생각인 듯 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제목이 언급하고 있듯이 사회 생물학의 기본적인 주장은 사회 전반에서 수용되고 있는 분위기다. 한 마디로 우리에게 [이기적 유전자]로 널리 알려진 도킨스의 말을 빌면 사회생물학과 그 밑바탕에 있는 진화론적 사고틀은 처음에는 오를 수 없어 보이던 산의 정상에 우뚝 섰다. 그리고 그 사회 생물학은 국내에서도 최재천이라는 걸출한 스타 교수와 함께 상당한 주목을 끌고 있으며 점점 학계와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열에 나도 은근슬쩍 합류하였다.

아직 사회생물학과 그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지만 "왜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은 그 불가능의 산을 오를 수 있었을까?"하는 물음을 떠올렸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일상의 삶이라고 할 때, 또는 유전무죄라는 말이 보여주는 세태에서처럼 이들의 승리는 자본의 힘일까? 물론 그 해답은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의 생각을 받아들인 많은 학자들의 과학적 연구와 태도가 정답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어떤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대변된다. 얼마나 열심히 꼼꼼히 자신의 가설을 설명하고 증명하려고 하느냐가 중요하다면 20세기 후반의 사회생물학자들은 그런 과학적인 태도에서 다른 연구자들보다 우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으로 인해 수많은 논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흐름으로 본다면 사회생물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생물학이 강조하는 유전자의 활동은 인간의 윤리나 도덕과 무관하게 활동한다는 데서 인간 또는 나에 대한 믿음으로 우울하다. 하지만 이 사회생물학은 세계 그리고 인간, 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또 하나의 도구로서 중요함은 부인할 수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의 언급은 그래도 위안을 준다.

"사실 매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자연선택된 유전자의 궁극적인 소망을 잠재우면서 산다. 자연선택은 이성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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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 51개의 질문 속에 담긴 인간 본성의 탐구, 동식물의 생태, 진화의 비밀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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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도 환경, 생태, 또는 자연에 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그 많은 책이 대부분 번역서라는 걸 보면. 전세계가 글로벌시대답게 한 목소리로 자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온난화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 재해를 긴장의 시선으로 바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관심의 촉구와 이해는 주로 자연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단순히 '자연은 인간의 문명을 발전, 진보시킬 토대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외치는 과정에서 자연은 하나의 대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는 이득이나 부를 창출해낼 수 있는 기반에 불과했다. 그러나 더 이상 자연을 하나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그 많은 환경관련책에서 지양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제 자연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필요성을 느낀다. 마틴 부버의 [나-너]가 다시금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목격하게 되는 많은 사건들, 예컨대 사대강과 관련된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 아직까지는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한다. 환경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적인 권력 구도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과의 관계 정립이 어려운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한다.  우선 자연과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서로 교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여기치 못한 자연의 변화들을 일으키고 있는지 인간에서 말해주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자연을 우리는 하나의 총체로 말하고 있지만 이 지구상에는 자연이라는 범주안에는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명체들은 인간에게는 자연이라는 큰 이름하에 간과되고 무시되고 있다. 다시말해 그 많은 생명체들도 각각 인간에서는 하나의 교감해야 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이런 상황에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책이 바로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이다. 원래 독일어로 출판된 이 책의 원제목이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과 동일한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말 제목은 환경 또는 자연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자연현상들과 수십억년을 지내온 자연은 제목처럼 주어이다. 다시 말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자연 속에서 더부살이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하고 의심/의문하게 된다.

저자인 요제프 라이히홀프의 생각 또한 그런 쪽으로 경도되어 있지 않은가한다. 진화생물학자로서 자연에 대한 시각은 시간적으로 굉장히 넓다. 어찌보면 그가 바라보는 시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제목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닌가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연은 인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인류에게는 자연이 필요하다. 인류가 개발한 온갖 기술은 자연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기술로 자연을 대체할 수는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이런 단언을 할 수 있는 것은 평생동안 그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 자신이 살아온 주변환경에 대한 애정에 기인한 듯하다. 나아가 지은이의 자연에 대한 애정은 진화생물학이라는 전문성과 만나면서 독특한 자연에 대한 이해를 낳은 듯 하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총체적 자연 뿐 아니라 자연의 구성원들인 수많은 생명체들에 있고 인간은 그가 볼 때 그 생명체들의 주인이 아니라 한낱 구성원일 뿐이다. 인간의 문명 또한 그가 볼 때에는 진화의 과정에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최근 많은 환경관련저서들이 지적하고 있는 환경파괴의 주범으로서의 인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언뜻보기에는 이 환경적 위기 또한 진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는 "동식물의 환경이 어떤 방향에서, 어느 범위로 변화할 것인지는 인류의 행동에 달렸다. 그리고 이 '행동'이 언제나 필수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 책의 재미는 이런 자연에 대한 거시적 이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꽃을 좋아하는가?에서 시작된 인간의 진화과정에 재미난 이야기 부터 조류, 어류, 포유류, 심지어 작은 곤충들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주변을 바라보도록 하는 재미까지 제공한다. (물론 아쉬운 점은 그가 말하는 동식물들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주변이 아니라 그의 주변이기에 약간은 낯선 면이 없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환경의 위기를 진단하고 천명하고 알리기보다는 지금의 위기에 대한 또다른 생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목시적이지 않고 우리의 환경에 근심과 걱정을 확인하는 책이 아니라 새로운 긍정과 작지만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듯 하다.

 

"포유류와 더불어 높은 체온으로 환경에 종속되지 않은 채 비교적 많은 자유를 누리는 조류와 같은 동물은 새로운 환경으로 압박을 받기보다는 대부분 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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