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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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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강 언덕에 올라 흘러가는 강물에

마음을 띄웁니다.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약속을 생각합니다.

 

때 늦은 회한을

응어리로 앓지 않기 위해서

언젠가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강 언덕에 올라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신영복의 󰡔담론󰡕의 마지막에서 이 시의 일부를 만났다. 누구의 시인가 궁금해 검색을 하니 신영복 자신의 시였다. 󰡔담론󰡕에서 계속해서 강조한 것이 인간이었고 나는 이 책에서 인간의 냄새를 맡고 아름다운 한 사람을 또 만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 너무나 아름다운 권정생을 만났는데, 다시 또 한 분을 일주일만에 만났다는 건 행운이다. 충분히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다른 한편으로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이라도 다행이고 그래서 행복하다.

신영복 선생은 흑색종암이라는 희기한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병은 햇볕을 받지 않은 데서 생긴다고 하니 그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분의 생애가 어떠했는지를 한 눈에 보게 한다. 권정생 선생의 폐병이 그의 평생의 지기였다면 흑색종암은 신영복 선생의 평생지기이었나보다.

신영복 선생은 󰡔담론󰡕의 핵심이 관계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인간으로 보인다. 관계와 관련된 많은 현대 철학 이론이 가끔씩 나오지만 그 어려운 내용이 여기서는 인간이라는 말과 의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이 생각한 인간의 삶이 위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반성하게 한 그리고 내가 살아갈 지평과 같은 말로, 신영복 선생의 따사로운 봄바람처럼 나에게 온기를 전해준 󰡔담론󰡕에 대한 단상을 마칠까 한다.

다른 사람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그리고 나를 대하기는 가을서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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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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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쓴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축복이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부럽다.

하지만 유시민은 자신은 글쓰기의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의 치열한 삶 속에서 글쓰는 능력은 키워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중요했던 건 바로 어떻게 하면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그리고 잘 전달할 수 있을까였다. 그의 글은 바로 그 결과이다.

최근에 가끔 [썰전]을 종종 본다. 요즘과 같은 때에, 그 방송은 드라마보다 재미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 방송을 생각해 보니 내가 그 방송을 즐겨본 이유는 바로 그 방송에서 나누는 대화가 대단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방송의 핵심은 바로 특정 이슈에 대한 대담자들의 생각의 명료함과 그 전달력이었다. 말의 명료함이 글의 명쾌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명쾌함은 독자에게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오래전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즐겁게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세계사의 숨은 이야기, 그렇지만 세계사의 큰 획을 그은 이야기, 그걸 읽는 재미. 나에게는 그건 지적 유희였다. 하지만 그 책의 개정판은 유시민의 늘어난 근육량의 확인이자 생각의 확장이었다. 그 앞에 나는 왜소해지고 우울해진다.

글쓰기의 근본은 생각임을, 글을 통해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가, 이것이 글쓰는 작가의 소임을 유시민의 글을 통해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그의 글 앞에 왜소해지고 우울할 수 만은 없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나는 패배자로 인생을 마감할 테니.

아마도 영원히 유시민처럼 명쾌하게 말하고 명료하게 글을 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유시민의 글쓰기가 내 삶의 척도는 아니니 좀 더 자유롭게 가끔 글을 쓸 수 있을 듯 하다. 그 출발이 이 리뷰이다. 내 글쓰기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책장에서 소복히 먼지 쌓여 있는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바로 쓰기]를 다시 읽어야겠다.

유시민의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결국 나에 대한 다짐이었다. 그리고 유시민의 책에서 말한 대로 쓰려고 노력하면 이 리뷰를 쓰지만 쉽지 않다는 걸 다시 느낀다.  그렇지만 이 책이 책과 글이 주는 즐거움을 새롭게 다시 느끼게 하는 즐거운 책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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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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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쌍둥이 아이들에게 제목이 참 희한한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책을 사주었다. 사주면서 불편했던 건 때문이었다. 그렇게 권정생 선생을 처음으로 접했다. 잘 알려진 속담처럼 개똥도 약에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야기, 세상의 모든 하찮은 것도 누군가에는 귀할 수 있다는 걸 권정생 선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선생의 삶을 바라보면 마치 그 개똥과 같다. 아니 강아지 똥이다. 글을 통해서 접한 그의 세계는 위대하고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희망과 용기를 주지만 그의 실제 모습과 살아온 삶은 그냥 개똥이다. 개똥같은 삶을 살면서 강아지 똥의 위안을 남기고 10년 전 돌아가셨다.

이 책은 선생의 세계를 한 눈에 보여준다. 어떻게 해서 개똥처럼 살면서 강아지 똥으로 생을 마치게 되었는지를.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 삶의 불안과 실존, 그리고 그 결과 평생의 병이었던 결핵을 앓았던 그. 그 가운데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주위의 고통과 아픔에 등 돌려 외면하지 않은 그였다. 그래서 그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슬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삶 또한 선생의 삶처럼 절망은 없다.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

이런 선생의 삶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가 쉬지 않고 말하는 에 있다. “꽃들은 더욱 절실하게 생명을 노래하며 태어났다가 죽어간”(290)다고 그는 말한다. 꽃들의 피고 짐에는 생에 대한 애착이 있고 선생은 그걸 빌뱅이 언덕에서 체득하였던 것이다. 들판에 피는 꽃들에게도 절실한 생명에의 애착이 선생의 삶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그 삶이 글로 기록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은 한 마리 작은 새의 죽음을 슬퍼하고 한 그루 꽃나무의 죽음에도 안타까워”(279)한다.

선생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명상은 인간에게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꽃의 보여주는 생명의 환희 그리고 마지막에 대한 인식은 그 꽃과 자연과 함께 하고 그에 동화하고 공생하는 인간에게로 나아간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278)게 된다.

한 마디로 선생은 세상의 크고 작은 일에 눈감지 않는다. 반대로 그 일에 대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항변하고 분노한다. 그렇기에 선생의 세계는 조용한 빌뱅이 언덕에 머물러 있지 않다. 책의 말미에 선생의 말은 그렇게 큰 울림을 준다.

재 주위는 항상 조용하다. 아니, 조용한 것 같다. 그러나 소리 없이 흐느끼는 영혼들의 울음소리로 내 귓전은 조용하지가 않다. 착각도 환청도 아닌 그 소리 때문에 나는 신경과민에 빠져 있다.”(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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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함에 대하여 - 악에 대한 성찰 철학자의 돌 2
애덤 모턴 지음, 변진경 옮김 / 돌베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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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TV, 심지어 인터넷을 보면 가슴 한 쪽이 꽉 막혀 있는 느낌이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3포를 지나 5포 그리고 이제는 n포세대라고 한다. 모든 꿈과 이상을 포기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더욱 참혹하고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을 "악"이라는 말로 수렴될 것이다. "악의 축"이라는 말이 한 때 세계를 흔들었으며 그 말은 여전히 지금도 세상을 이해하고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인 듯하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 '악'이라는 개념과 존재를 상정해왔다. 그리고 세상의 불편함을 그 악에게 전가해왔다. 다시 말해 악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해왔다. 그러나 재미 있는 사실은 그 악에 대해 누구나 말하지만 그 누구도 악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옛 모 방송프로그램의 "나만 아니면 돼"가 악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원리인 듯 하다. 

이 책에서 모턴은 인간의 잔혹함과 그 근원에 있는 악에 대해서 "현실적인" 이해를 하려고 한다. 이 책은 악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아니고 심리학적인 고찰도 아니고 과학적 탐구도 아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악과 잔혹함에 대한 이해 노력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턴이 주장하는 기본적인 악은 우리의 외적 존재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악이라고 상정하는 개념과 존재는 우리의 내부 안에 있다. 누구나 악이 또는 악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모턴도 슬쩍 언급하고 있지만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악의 근원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한 마디로 우리의 의지에 의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모턴이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데에는 단지 악의 내재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모턴은 악이 우리의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통해 이 세상을 휘두르고 있는 악과 그 악의 잔혹함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모색으로 이 세상의 악이 사라질 수 있을까? 아마도 모턴 또한 그와 같은 기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인지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 살기가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출발선에 놓일 수 있다는 확신에서이다. 그렇다면 모턴이 말하는 출발선은 무엇인가? 그 바탕에 사람에 대한, 특히 타인에 대한 이해라는 정신적 성숙이 자리잡고 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간을 키우고 그 정신적인 성숙함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를 가진 사회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즉 악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출발은 개인에 있지 않고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악과 악한 행동은 흔히 범죄 드라마에서 말하는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부재에 있다. 그러니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함이 우리를 악의 구렁텅이로부터 우리는 구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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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본능 -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며 현실을 부정하도록 진화했을까
아지트 바르키 & 대니 브라워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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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부터 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말 번역의 제목은 부정본능이지만 영어본 제목은 본능이라는 말이 없는 "부정denial"이다. 이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부분이다. 아마도 출판사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었을 게다.( 최근 많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대중적 연구서들이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설명하고 있으니까. 예컨대 언어학자 스티븐 핑거는 언어본능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다.) 그래야 독자의 관심을 끌테니까.

하지만 단지 광고 또는 프로모션의 일환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완전히 규명된 것은 전혀 없다. 연구자의 깊은 성찰과 관심 그리고 지속적인 연구의 결과가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낳았을 것이고 최근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그것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다양한 본능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여전히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이해에서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본능이라는 말이 담지하고 있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인간의 유전지도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그래서 그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편리하게 우리를 설명할 수 있다. 이 말인 이와 연관된 기존의 연구자들의 연구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우리는 여전히 우리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 과정에 본능을 접미사처럼 붙이는 것은 참으로 편리하며 최근 인간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다윈의 진화론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더욱 그럴 듯하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사실 우리말 번역의 부정본능이라는 제목 또한 이 책의 전체적인 부분을 아우르는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영어본 제목이 부정이라는 것은 이에 대한 또다른 이해를 제공한다. 이글의 저자 바르키 또한 최근의 유행을 알고 있었고 충분히 부정에 본능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은 것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자신의 인간에 대한 연구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언급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여전히 문제가 있고 완성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고 있기에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은 것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와 같은 미완성의 글을 출판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이것이 저자 바르키의 장점이며 이 글의 핵심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글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온전히 그의 것은 아니다. 공동 저자로 게재된 대니 브라워의 독창적인 생각과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바르키가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한 것은 개인적인 관심사와 연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르키와 브라워가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자면 현대의 많은 시인들은 시의 본질을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들 인간의 삶이 아이러니칼하고 패러독스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은 삶은 매우 복잡다단하고 매우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가득하다. 왜 인간은 초지일관된 삶을 살아오지 못했을까? 한편으로는 생의 충만으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찬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배니타스vanitas로 인간의 필멸을 슬퍼하고 있으니. 참으로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노력은 바로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것을 밝히는 것이니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바로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 중의 하나인 이율배반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부정"을 제시하고 있고 이는 부정본능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앞에서 언급한 카르페 디엠과 배니타스를 부정 개념으로 설명하면 인간은 현실에서 절실하게 직면하고 있는 필멸성의 한계를 '부정'함으로써 살아있는 현재의 삶을 더욱 더 만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할 수 있다. 바르키에 따르면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세상의 암울한 사건을 볼 때마다 가슴아파 하지만 그 슬픔은 지속적이지 않다. 바로 부정이 작동하면서 다음 날 우리는 살아있음의 한 부분을 즐길 것이다. (오늘 밤에 나도 장례식장에 가고 그 과정에 나 또한 언제가 죽는다는 사실에 가슴은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분명히 뭘하면서 주말을 즐겁게 보낼까 생각할 것이다.)

바르키는 부정 개념을 좀 더 폭넓은 정신 또는 마음 이론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전유물이었던 정신을 과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면서 마음 이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니 완성된 이론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이론이 매력적인 부분은 인간의 진화과정에 육체의 진화 뿐 아니라 정신의 진화를 설명하고자 하며 그 근간에 완전한 마음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이해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대의 철학자 레비나스가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데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바르키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지금의 인간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인간의 근간이라니 자본주의와 그 바탕의 사유재산은 어찌보면 인간을 거꾸로 퇴보시켰다고 생각하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너무나 슬프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좋은 점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과 같은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제간 연구에서 촉발된 이와 같은 연구는 참으로 다양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뭘 먼저 읽어야 할까 고심스럽다.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 너무나 많이 나오고 있으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이와 관련해서 이 책의 전반부는 그와 관련된 전부는 아닐지라도 주요한 부분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의 전반부는 그와 같은 혼란스러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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