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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본능 -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며 현실을 부정하도록 진화했을까
아지트 바르키 & 대니 브라워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우선 제목부터 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말 번역의 제목은 부정본능이지만 영어본 제목은 본능이라는 말이 없는 "부정denial"이다. 이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부분이다. 아마도 출판사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었을 게다.( 최근 많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대중적 연구서들이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설명하고 있으니까. 예컨대 언어학자 스티븐 핑거는 언어본능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다.) 그래야 독자의 관심을 끌테니까.
하지만 단지 광고 또는 프로모션의 일환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완전히 규명된 것은 전혀 없다. 연구자의 깊은 성찰과 관심 그리고 지속적인 연구의 결과가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낳았을 것이고 최근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그것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다양한 본능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여전히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이해에서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본능이라는 말이 담지하고 있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인간의 유전지도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그래서 그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편리하게 우리를 설명할 수 있다. 이 말인 이와 연관된 기존의 연구자들의 연구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우리는 여전히 우리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 과정에 본능을 접미사처럼 붙이는 것은 참으로 편리하며 최근 인간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다윈의 진화론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더욱 그럴 듯하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사실 우리말 번역의 부정본능이라는 제목 또한 이 책의 전체적인 부분을 아우르는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영어본 제목이 부정이라는 것은 이에 대한 또다른 이해를 제공한다. 이글의 저자 바르키 또한 최근의 유행을 알고 있었고 충분히 부정에 본능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은 것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자신의 인간에 대한 연구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언급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여전히 문제가 있고 완성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고 있기에 본능이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은 것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와 같은 미완성의 글을 출판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이것이 저자 바르키의 장점이며 이 글의 핵심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글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온전히 그의 것은 아니다. 공동 저자로 게재된 대니 브라워의 독창적인 생각과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바르키가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한 것은 개인적인 관심사와 연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르키와 브라워가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자면 현대의 많은 시인들은 시의 본질을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들 인간의 삶이 아이러니칼하고 패러독스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은 삶은 매우 복잡다단하고 매우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가득하다. 왜 인간은 초지일관된 삶을 살아오지 못했을까? 한편으로는 생의 충만으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찬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배니타스vanitas로 인간의 필멸을 슬퍼하고 있으니. 참으로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노력은 바로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것을 밝히는 것이니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바로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 중의 하나인 이율배반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부정"을 제시하고 있고 이는 부정본능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앞에서 언급한 카르페 디엠과 배니타스를 부정 개념으로 설명하면 인간은 현실에서 절실하게 직면하고 있는 필멸성의 한계를 '부정'함으로써 살아있는 현재의 삶을 더욱 더 만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할 수 있다. 바르키에 따르면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세상의 암울한 사건을 볼 때마다 가슴아파 하지만 그 슬픔은 지속적이지 않다. 바로 부정이 작동하면서 다음 날 우리는 살아있음의 한 부분을 즐길 것이다. (오늘 밤에 나도 장례식장에 가고 그 과정에 나 또한 언제가 죽는다는 사실에 가슴은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분명히 뭘하면서 주말을 즐겁게 보낼까 생각할 것이다.)
바르키는 부정 개념을 좀 더 폭넓은 정신 또는 마음 이론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전유물이었던 정신을 과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면서 마음 이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니 완성된 이론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이론이 매력적인 부분은 인간의 진화과정에 육체의 진화 뿐 아니라 정신의 진화를 설명하고자 하며 그 근간에 완전한 마음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이해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대의 철학자 레비나스가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데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바르키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지금의 인간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인간의 근간이라니 자본주의와 그 바탕의 사유재산은 어찌보면 인간을 거꾸로 퇴보시켰다고 생각하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너무나 슬프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좋은 점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과 같은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제간 연구에서 촉발된 이와 같은 연구는 참으로 다양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뭘 먼저 읽어야 할까 고심스럽다.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 너무나 많이 나오고 있으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이와 관련해서 이 책의 전반부는 그와 관련된 전부는 아닐지라도 주요한 부분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의 전반부는 그와 같은 혼란스러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