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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평점 :
오래간만에 독특한 작품을 읽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시간이 그러하고 서술하는 형식 또한 독특하다. 우선 네 개의 작은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두 여성의 삶을 일인칭으로 서로 교차해서 쓰고 있다. 1장과 3장이 정애의 의식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면 2장과 4장은 정애의 고향 친구인 묘자의 의식을 중심으로하고 있다. 시간상으로 각각 첫 장이 어린 시절을 두번째 장은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다룬다. 두번째로 최근 우리 소설에서 다루지 않는 시대를 이 작품은 다룬다. 70년대에서 80년대 초, 박정희 정권 말기와 전두환 정권의 초기,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근대화의 시기와 5.18 광주사태로 대변되는 폭력의 역사가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다. 과거 많은 작가들이 이 시기를 다루었다. 특히 5.18은 우리 문단에서 중요한 소재였다. 예컨대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는 독특한 서술기법을 통해 5.18이 어떻게 어린 소녀와 어른에 의해 각각 체험되고 있는가를 잘 다룬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새마을 운동과 5.18이 함께 논의되는 작품은 드물다. 또한 그 사건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그 시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여기'만이 중요하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표피적이고 일회적인 것만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새마을운동과 5.18은 중요하다. 두 사건은 70년대와 80년대라는 각기 다른 시기의 사건의 중요한 사건이지만 한편으로 밀접한 연관을 띠고 있다. 정애와 묘자에게 특히 그러하다. 그들에게 그 사건은 다른 사람들의 일인 동시에 자신의 일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두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고 나아가 그들의 삶은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 그들은 역사적 시간의 도도한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급류에 휘말려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정애는 정신질환과 죽음으로 묘자는 감옥을 다녀오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독특함은 그 두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데 있지는 않다. 어떤 의미에서 좀 더 본질적인 것을 그 두 사건을 통해 그리고 정애와 묘자의 삶으로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역사와 신화를 다룬다. 정애와 묘자의 이야기는 합리적 이성의 근대가 자행하는 폭력에 망가져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물론 새마을운동으로 대변되는 근대의 폭력은 정애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개공창 안에 살던 실지렁이, 가재, 달팽이처럼 우리도 시멘트 반죽에 갇혀서 납작해졌다. 묘자와 나는 봄 내내 시멘트 반죽 속에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근대화는 묘자와 정애 뿐아니라 주변 자연까지도 피폐하고 하였으며 근대의 시장경제논리는 마을 전체를 관통하고 거대한 힘이 되었다. 아무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정애는 자신을 짓누르고 씻을 수 없는 폭력을 자행하는 역사의 흐름에 완전히 순응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근대의 논리는 정애를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박샌 등이 자행하는 폭력은 그녀의 육체라는 외피는 파괴했을지도 모르지만 정신은 건드리지 못한다. 정애의 정신은 근대 그리고 역사의 구조와는 다른 신화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신화는 전혀 다른 구조물이다. 역사가 구체적인 언어로 기록된다면 신화는 명확하지 않은 노래로 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애에게 아버지의 말은 알아먹을 수 없는 반면에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알아먹기 쉽다. 역사의 언어, 또는 말이 공적 담론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어머니의 울음 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주문과 같은 신화의 노래는 매우 사적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이상 역사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알 수 없는 노래가락과 같다. 하지만 그 신화의 노래가락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들의 삶의 한 축임에 분명하다. 정애는 바로 그 한 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때문에 정애는 마을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 주변 자연사물, 예컨대 심지어는 혐오스러울 수 있는 쥐와 박쥐와 대화한다. 20세기 초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1차세계대전이라는 근대의 역사를 논하면서 신화적 시간으로 회귀했다면 21세기 초 공선옥은 새마을 운동과 5.18의 역사를 통해 신화적 시간을 노래한다. 아마도 이 작품의 제목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물음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