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늑대인간 werewolf가 있다면 일본에는 인간늑대 인랑이 있다. 늑대인간이 신화적 요소를 담고 있다면 인랑은 첨단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서양의 늑대인간은 '달'이라는 외적 자연의 기운이 충만할 때 늑대로 변하지만, 인랑은 그와는 상관없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기에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여전히 늑대, 짐승이다. 늑대인간이 늑대와 인간이라는 이중의 실체로 갈등하고 있지만 인랑은 인간의 외양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날을 쓰고 있기에 다른 인간들은 인랑 또한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동일한 인식과 감성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런 인간의 착각이 인랑의 존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짐승은 짐승일 뿐 인간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인간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속까지 인간이 될 수 없는 인랑. 철학자 레비나스 식으로 타인의 얼굴을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인랑. 현대의 과학과 인간의 탐욕, 이기심, 그리고 그로 인한 동물적 생존 본능. 이것들이 현대 사회 사람들 사이에서 인랑이라는 인간 늑대를 만들어낸다. 한 마디로 서양의 늑대인간은 자연의 직접적 영향권 안에 있던 시기의 인간의 두려움, 공포, 나아가 상상력의 산물이라면 인랑은 현대 인간의 파괴적인 욕망의 산물이다.

영화에서는 서양의 유명한 동화 [빨간 두건]의 이야기와 인랑이 중첩된다. [빨간 두건]의 늑대 또한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결말을 가진 여러 판본에도 불구하고 [빨간 두건]의 늑대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인랑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본성의 산물이기에 불멸이다. 이것이 이 만화를 우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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