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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 -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감성혁명과 예술진화의 역량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49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5년 1월
평점 :
많은 서구 사회학자들이 인정하고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근대 사회의 도래는 근대 이전의 공동체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이를 근대 사회의 개인주의의 탓으로 돌린다.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할 때, 언어를 비롯한 예술의 본질적 또는 기능적 가치에 문제가 제기된다. 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예술의 출현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고찰할 것을 요구한다. 구석기의 동굴벽화 이후 예술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이었다. 벽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생물학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그들은 예술을 통해 선대의 활동을 공유하고 동질감과 결속을 강화해 왔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특징은, 예술의 의사소통적 기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함께 감동하고 그 정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한 마디로 예술작품을 통해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에 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근대는 그런 예술의 기능을 파괴하였다. 예컨대 근대 미술, 즉 인상주의 이후의 미술이 보여주는 난해함이 그것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아래 예술의 다른 모든 가치를 폐기하고 예술은 그 예술의 토대인 사회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은 포스트모던 사회에도 여전하다. 예술의 소외는 바로 인간의 소외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징후이다. 하지만 이를 인과적으로만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예술의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 인간 소외의 극복의 첩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정환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 또한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 예술의 소외와 종말을 주장하는 시기에 예술의 본질적인 공동체적 특징을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인간 회복의 긍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제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자동기계처럼 수동적이고 순응하던 현대인이 현 상황을 인지하고 능동적이고 변혁의 주체가 될 계기를 예술의 종말론과 소외라는 현 상황을 통해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조정환이 말하는 다중의 의미이다.
물론 예술의 부정 또는 종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언어에서 유효하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 사회, SNS가 중요한 의사소통말이 된 사회에서, SNS 등을 인간의 소외를 더욱 촉발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SNS 등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하려 하지만 점점 더 인간적 소통이 단절되고 있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에 주어진 인간적 특권은 문제시되고 언어가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한 장치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언어와 예술은 현 시대의 점점 교묘하게 숨겨진 사회적 소외를 고찰하고 감지할 수 있는 매체가 될 뿐만 아니라 극복의 힘을 마련해준다.
예컨대 많은 인문사회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경제의 영역 안에만 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그 힘을 사회 전체로 확산하였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에까지 그 촉수를 뻗었다 (맑스의 판다스마고리아를 생각해보라). 이 자본주의의 힘을 부정할 수 없는 사황에서 언어와 예술은 자본즤의 한계와 문제를 까발리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이 조정환의 믿음이고 의지이다.
한편으로 이 책의 의미는 조정환의 노력이다. 니체는 인류의 발전은 또는 진정한 철학자의 본질은 회의에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확신이 인간의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무엇인가를 의심하고 회의를 인식의 지속적인 추동력으로 삼는 것이 진정한 철학자이자 지식인이라 할 때, 조정환이 이 책에서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은 지식인의 회의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바탕이 될 수 있는 모든 바탕(이론)을 점검하고 그것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성을 담보하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조정환의 회의의 밑바탕에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것이 이 책을 비판인 아닌 하나의 비전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