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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ㅣ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다윈과 스펜서 이후 인간의 대한 믿음은 점점 어두운 심해 속으로 가라앉은 듯하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들을 짓밟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목격하게 되는 세상사는 그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윌슨의 이 책의 제목 또한 그런 면을 얼핏 담고 있다. 인간은 지구의 정복자다. 다른 존재들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군림하는 정복자인 것이다.
하지만 윌슨은 거기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이타적이다라고. 그리고 그 이타적인 태도가 인간의 역사를 개미와 다르게 만들었고 지구의 정복자가 되게 하였다고. 이제 인간은 다른 존재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심지어 자신을 그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윌슨과 같은 최근 생물학자들에 의해 한층 깊어지고 새로워졌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윌슨은 최근 새로운 생물학을 이끌고 있는 학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자나 추천사를 쓴 최재천에 따른다면 윌슨은 단지 그들 중의 한 학자라고 치부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윌슨이 새롭게 또한 높게 평가받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새로운 접근법을 인간에 대한 이해로 확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새로운 계몽과 그의 유명한 통섭(consilience)로 이해될 수 있는 새로운 인식론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최근 진화생물학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한층 심화시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인물이 리처드 도킨스과 그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과 그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의 종식을 확인한다고 광고도 되고 있다. 물론 이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이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도킨스의 주장은 유효하며 진화론의 개념을 심화시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윌슨은 도킨스의 주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포괄적합도 이론 대신에 집단선택을 인간의 사회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틀로 제시하고 있다. 이 분야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마땅히 은퇴했어도 당연하게 여겨질 노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나와 이 분야의 연구 방향을 새롭게 재정립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두번째로 이 책이 새로운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생물학적 접근법을 제시한 사실보다 이를 인간에 대한 이해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전반부가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윌슨의 전문분야인 개미를 중심으로 집단선택이론의 적절성을 설명하려는 장이라면 후반부는 그 집단선택이론 하에서 인간의 삶, 즉 정치, 종교, 문화, 언어, 심지어 예술을 설명하고 이해하고자 한 윌슨의 노력이다. 이렇게 생물학을 인간 사회 전반으로 확장시켜 설명하고자 할 때 윌슨이 강조하는 것은 마지막 장의 제목인 "새로운 계몽"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새로운 계몽은 가지말아야 할 방향의 선택인 것이다.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방향이 금지되어 있는 것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인간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금지와 한계를 뛰어넘음으로써 지금의 역사를 형성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정착이 아니라 유목이 세계 역사의 토대라고 주장한 학자의 말은 설득력 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만약 극복의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노학자 윌슨은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윌슨이 이제는 인생을 정리해야 할 마당에 새롭게 방향을 선회한 것은 스스로 한계 극복의 의지를 실천한 것이다. 윌슨의 통섭이 그 힘을 발휘하는 지점에 바로 이 곳이다. 그는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통섭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런 통섭의 태도를 통해 자연과학(natural science)과 인간과학(human science)가 만나서 이해해야 하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재천 교수가 말하듯이 인간이 '지구의 정복자'라면 윌슨의 '학문의 정복자'라 할 수 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윌슨의 통섭은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인간의 사회성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집단 선택이론 나아가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을 동시에 설명하고자 하는 다수준 선택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통섭처럼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심지어 자신의 이기심을 억누를 수 있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말 책 제목은 '지구의 정복자'이지만 영어본 제목은 The social conquest of earth이다. 이 둘을 같이 나란히 놓으니 윌슨의 의도가 더 잘 보이는 듯 하다. 지금의 정복은 바로 사회성에 있음을 윌슨은 제목에서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