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 - 끝나지 않을 몸짓 현대 예술의 거장
마리온 마이어 지음, 이준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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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다.

생전에 사적인 삶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기피했던 전설적인 무용수 피나 바우쉬, 2009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저널리스트 마리온 마이어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서 신비로운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발자취를 객관적으로 되살려냈다.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인간 실존을 독창적인 사유와 예술로 승화시킨 현대무용의 대명사, 피나 바우쉬! 책 속에는 그녀만의 자유로운 색깔로 탄생한 안무와 110여 점의 사진이 함께 담겨 있다.

피나 바우쉬, 그녀를 처음 만났던 때가 언제였더라?

21세기 초,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라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된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 이후 그녀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하고 그녀의 세계에 한발 더 다가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영화에 삽입된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는 목가적 분위기와 고통에 찬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울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피나 바우쉬는 스토리를 만들어 표현하는 서술적 발레보다 이야기가 충분히 빠져나가서 응고된 발레에 더 흥미를 느꼈기 때문일까? 그녀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1959년 당시 무대에 대한 결정적인 자극의 원천이었던 뉴욕 줄리아드스쿨 근처에 방 하나를 얻고 부지런하고 야심 있는 학생 시절의 피나 바우쉬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1년 동안 그곳에서 경험을 쌓은 그녀는 뉴욕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돈을 아끼고 장학금을 받고 절약하고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그녀는 창백하게 야위어갔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더 말라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점점 더 내 안으로 귀 기울여 들어갔습니다. 내 움직임 안으로요. 나는 내 안의 무엇인가가 점점 더 순수해지고, 점점 더 깊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을 쓰는 무용가는 다르구나. 내 안으로, 내 움직임 안으로 들어가면 더 순수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을 가져보고 싶다. 피나 바우쉬를 읽으면서 더 많이 걷고, 덜먹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는 체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입에 즐거움보다 몸에 즐거움도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니 모든 걸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춤은 자신을 가장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형식이며 가장 가까운 언어였다. 피나 바우쉬는 뾰족 슈즈가 권투 글러브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발을 손처럼 자유롭게 느끼고 싶어 했다. 이후로 그녀의 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새로운 형식을 향해 출발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그녀는 말한다. "최상의 표현 방식은 노래일 수도 있고, 문장이나 장면일 수도 있으며 모든 게 가능하다"라고. 자신이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것을 말로 말고, 감정이나 질문'들로. 그렇다. 우리는 결코 답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지 않은가. 질문하고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어느 날 다른 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질문하고. 가장 잘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또 질문하고 답하는 형태가 아닐까?

피나 바우쉬는 그때부터 질문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그녀의 열린 작업 방식에 불을 붙여나갔다. 작품의 방향이 어디로 전개되는지 알 때까지 자료를 수집하고 질문하고 적절한 표현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이어갔다. 그래서 어쩌면 관객은 그녀의 작품 자체가 연습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 들 수 있기에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다.


피나 바우쉬의 작업에서는 "확실함이란 없다. 무엇인가를 시작하지만, 그게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전혀 모른다. 그것은 그저 두려움만은 아니다. 뭔가 아주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브라질, 로스앤젤레스, 인도, 한국(세종문화회관 첫 내한공연, 1979년 ), 일본, 빈, 마드리드, 홍콩, 리스본, 부다페스트, 이스탄불, 칠레와 함께 한나라의 영향을 가져와 가공한 인상과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으로 공연을 했다. 피나 바우쉬는 이런 파트너십 공연에 대해 "약간은 마치 우리가 지금 결혼한 것 같아요"라고 했다.

2001년 5월에 초연된 <물>은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명랑한 단계의 정점이었다. 브라질과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관객에게 영혼의 향유 香油를 선사한다. <물>은 해넘이, 야자수, 파티가 있는 열대지방에서의 짧은 휴가처럼 보인다.


 

피나 바우쉬의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 <물>이라는 작품과 <보름달>의 물장난에 유독 관심이 가는 것은 계절 탓일까?

빔 벤더스의 영화 <피나>에서 무용수들은 안무가에 대한 오마주로서 보여 주고 싶은 개별 장면들을 카메라를 향해 되풀이했다.

피나 바우쉬는 개성에 관심이 많았다. 앙상블 선발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녀에게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강력한 영향력과 무대 존재감, 매력을 지닌 무용수들을 찾았다. 무용수를 선발할 때 피나 바우쉬는 한 인격체가 지닌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상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인가, 묻는다면 '그건 내가 그저 느낄 수만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 일례로 도미니크 메르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영어를 못하고 독일어는 아예 못하는데, 피나는 불어를 못해요. 우리는 그다지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어요. 서로 바라보고는 아마도 서로를 이해할 거라고 믿었죠.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연결선이 바로 있었어요. (……) 그녀의 강인함은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철두철미한 작업이요. 그녀에게는 여러 일을 병행하면서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거의 항상 연습에 참석했고 연습 사이에는 사물실에 있었어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면 새벽 2시까지도 여전히 그것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밖에 안 잤습니다. 언제나 계속해 나갔죠. (피나는 절대 월계관 위에서 쉬지 않았어요.)"



 

빔 벤더스의 다큐영화 <피나>는 앞으로도 피나 바우쉬의 유산을 널리 알리고 대중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피나 바우쉬는 분명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신의 작품들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녀는 용기를 갖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자신의 직관을 따르는 것이 그리고 자신의 꿈을 좇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해 보여 주었다.

"나는 늘 새로운 문을 열고 싶다"

피나 바우쉬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계속 살아 있다.

2009년 안무가가 소천한 뒤에 아들 '잘로만 바우쉬'가 창립한 피나바우쉬재단이 피나 바우쉬의 유산을 유지하고 계속 확산하는 일을 맡고 있다.

조 앤 엔디콧은 말한다. "그녀를 생각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답니다."

1973년 런던에서 피나 바우쉬와 처음 만났을 때 첫눈에 반한 피나 바우쉬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굴, 눈, 당신 안으로 파고드는 직접적인 첫 시선, 우아함, 그리고 이 카리스마! 단순한 아름다움,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더랬어요. 그녀는 너무 예쁘고 단순하고 검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큰 걸음올 걷더라고요. 나는 그녀의 손이 얼마나 긴지 모았죠.(……) 그녀는 나를 바꾸려 들지 않고 받아들엿어요. 내가 훌륭한 무용수라는 걸 보았지요. (……) 그녀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감정, 관거ㅖ< 경험, 사랑받고 싶은, 유년기, 어른됨, 죽음 사이의 유희를 많이 보여 주죠. (……) 피나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힘이 잇지요. 피나는 멈춰 서 있지 않았어요. (……)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신의 작품들 속에 살아 있어요. 그녀가 이룬 것은 어마어마해요. 그녀는 세계의 불가사의예요."

그렇다. 피나 바우쉬는 분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표는 "눈에 띄려 하지 않기,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기, 분장하려 하지 않기"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대 위의 사람들을 무용수만이 아니라 관객들이 인격체로 인식해 주는 것이다. 인간으로, 춤추는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녀의 그런 진정한 예술 철학이 관객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으리라.

피나 바우쉬는 음악은 250번 들어도 여전히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공연 연습을 하다 싫증 난 기색이 보이면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은 완전히 다른 음악을 틀 수 있는 자유를 허용했다.

"전에 우리가 낭만적인 희롱 장면을 낭만적인 희롱 음악으로 반주했던 지점에서 그냥 뭔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시도해 보았다. 거칠고 섬뜩한 음악이었다. 몹시 신선했고 머리가 맑아졌다. 갑자기 아주 멋들어진 장면들이 생겨났고, 그중 일부는 그대로 작품에 남았다"라고 회상했다.

이때 단원들의 표정들이 궁금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해답을 찾았을 때의 낯선 기쁨, 예술을 통한 환희 뭐 그런 느낌들 아니었을까?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감정들이지 않은가?

"음악을 통해 다른 체험 차원으로 옮겨 간다. 음악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다른 조명 아래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피나 바우쉬의 음악 취향은 완전히 열려 있었고 섬세한 귀를 지니고 있었다.

앨리스터 스폴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나는 예술 여행 중에 절대 멈춰 서지 않았답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그녀는 모든 것을 우리와 다른 레벨에서 경험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세밀한 것들을 알아챘고 호기심과 애정이 가득했습니다. 내가 이제껏 알았던 사람 중에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머 감각도 대단했고, 그야말로 멋들어진 대화 상대였습니다."

피나 바우쉬와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피나 바우쉬야 말로 정말 완벽한 여성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다른 레벨에서 경험하는 여성, 거기에 유머 감각까지, 누군가에게 멋진 대화 상대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것을 피나 바우쉬는 많은 이들에게 느끼게 하고, 깨닫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아름다움이 뭔지를 알게 해 준 장본인이었다.

그녀의 생명이 끝난 것이지 그녀에 대한 기억은 영원하다. 그녀가 세상에 남긴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살아 있으며 불가사의한 그녀의 생명력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경기도 안성, 웃는 돌로 자유로운 춤꾼이자 구도자인 홍신자 님의 춤 세계를 보러 친구와 함께 다녀왔던 것도 어쩌면 피나 바우쉬의 영향 때문이었다. 독일 순회공연 당시에 '한국의 피나 바우쉬'라는 평을 받기도 했던 홍신자 님의 <자유를 위한 변명>도 흥미 있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방문했던 그날 홍신자 님은 개인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지만 그녀에게 영향을 받은 제자 춤꾼에게 긴 시간 명상과 춤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웃는 돌 주변을 산책하며 홍신자 님의 철학에 대해서 언급했었지.

피나 바우쉬를 읽고 나니, 책장 한편에 꽂혀 있을 홍신자의 책도 다시 꺼내봐야겠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해야 할 일이 또 쌓인다. 피나 바우쉬를 처음 만났던 영화 <그녀에게>도 꺼내서 관람하고 싶고, 다큐 영화 <피나>와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 두 편도 재생해 보고 싶다.

현대무용과 안무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소신껏 자신의 일에 박차를 가하는 커리어 우먼들이 읽어보아도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많은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건네고, 멋진 대화 상대가 되어주며, 죽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여성을 만나고 싶은 분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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