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안무가가 소천한 뒤에 아들 '잘로만 바우쉬'가 창립한 피나바우쉬재단이 피나 바우쉬의 유산을 유지하고 계속 확산하는 일을 맡고 있다.
조 앤 엔디콧은 말한다. "그녀를 생각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답니다."
1973년 런던에서 피나 바우쉬와 처음 만났을 때 첫눈에 반한 피나 바우쉬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굴, 눈, 당신 안으로 파고드는 직접적인 첫 시선, 우아함, 그리고 이 카리스마! 단순한 아름다움,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더랬어요. 그녀는 너무 예쁘고 단순하고 검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큰 걸음올 걷더라고요. 나는 그녀의 손이 얼마나 긴지 모았죠.(……) 그녀는 나를 바꾸려 들지 않고 받아들엿어요. 내가 훌륭한 무용수라는 걸 보았지요. (……) 그녀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감정, 관거ㅖ< 경험, 사랑받고 싶은, 유년기, 어른됨, 죽음 사이의 유희를 많이 보여 주죠. (……) 피나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힘이 잇지요. 피나는 멈춰 서 있지 않았어요. (……)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신의 작품들 속에 살아 있어요. 그녀가 이룬 것은 어마어마해요. 그녀는 세계의 불가사의예요."
그렇다. 피나 바우쉬는 분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표는 "눈에 띄려 하지 않기,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기, 분장하려 하지 않기"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대 위의 사람들을 무용수만이 아니라 관객들이 인격체로 인식해 주는 것이다. 인간으로, 춤추는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녀의 그런 진정한 예술 철학이 관객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으리라.
피나 바우쉬는 음악은 250번 들어도 여전히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공연 연습을 하다 싫증 난 기색이 보이면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은 완전히 다른 음악을 틀 수 있는 자유를 허용했다.
"전에 우리가 낭만적인 희롱 장면을 낭만적인 희롱 음악으로 반주했던 지점에서 그냥 뭔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시도해 보았다. 거칠고 섬뜩한 음악이었다. 몹시 신선했고 머리가 맑아졌다. 갑자기 아주 멋들어진 장면들이 생겨났고, 그중 일부는 그대로 작품에 남았다"라고 회상했다.
이때 단원들의 표정들이 궁금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해답을 찾았을 때의 낯선 기쁨, 예술을 통한 환희 뭐 그런 느낌들 아니었을까?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감정들이지 않은가?
"음악을 통해 다른 체험 차원으로 옮겨 간다. 음악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다른 조명 아래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피나 바우쉬의 음악 취향은 완전히 열려 있었고 섬세한 귀를 지니고 있었다.
앨리스터 스폴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나는 예술 여행 중에 절대 멈춰 서지 않았답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그녀는 모든 것을 우리와 다른 레벨에서 경험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세밀한 것들을 알아챘고 호기심과 애정이 가득했습니다. 내가 이제껏 알았던 사람 중에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머 감각도 대단했고, 그야말로 멋들어진 대화 상대였습니다."
피나 바우쉬와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피나 바우쉬야 말로 정말 완벽한 여성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다른 레벨에서 경험하는 여성, 거기에 유머 감각까지, 누군가에게 멋진 대화 상대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것을 피나 바우쉬는 많은 이들에게 느끼게 하고, 깨닫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아름다움이 뭔지를 알게 해 준 장본인이었다.
그녀의 생명이 끝난 것이지 그녀에 대한 기억은 영원하다. 그녀가 세상에 남긴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살아 있으며 불가사의한 그녀의 생명력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