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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는 왜 맞을까? 국민서관 그림동화 20
게르트루드 쭉커 그림, 페터 아브라함 글, 강석란 옮김 / 국민서관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영리한 생쥐 뾰족귀 로버트는 생쥐학교 2학년이다. 로버트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 사이에 있는 쥐아파트 18층에 산다. 쥐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는데, 가끔은 아주 오래 쥐 전용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서지 않고 휙 지나쳐 버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쥐가 타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는 18층에 재빨리 내려서 도시가스관 옆 작은 구멍에 쏙 들어가 엄마 아빠가 오기를 기다린다. 거의 매일 오후 로버트는 꺅! 하고 인디언 소리를 내며 튀어나오고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는 깜짝 놀란 척을 한다.
“학교에서는 어땠니?”
“받아쓰기에서 ‘가’를 맞았어요.”
“뭐, ‘가’라구?”
“거짓말! 로버트는 ‘우’를 받았어요”
엄마는 뽀뽀를 해주고 아빠는 꼬리를 잡아당기며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여늬 때와 똑같이 인디언 장난을 쳤을 때 엄마 아빠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른다.
“받아쓰기에서 ‘가’를 맞았어요”
“뭐? 하긴 멍청한 짓을 해도 아들 편만 들잖아요.” 하면서 엄마와 아빠는 다투기 시작했다. “장난이예요. ‘우’받았어요.” 엄마 아빠는 갑자기 싸우기를 멈추더니 “세상에, 부끄러운 줄 알아! 거짓말을 하네!”하며 철썩 따귀를 때렸다. 갑자기 따귀를 맞게 된 로버트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 옥상으로 간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누군가 햇볕을 쪼이려고 갖다 놓은 선인장 화분을 보고는 홧김에 힘껏 발로 차 꽃을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위태위태 처마끝에 올라가 거리를 내려다 보며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이 꼴을 보았으면 좋겠어. 걱정이 돼서 꼬리를 물어뜯었을 텐데!’
갑자기 까치 아저씨가 나타났다. “얘, 너 미쳤어? 날개도 없잖아?”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예요?” “음, 너 뾰족귀 로버트구나. 너희 아버지와 난 오늘...”
로버트는 까치 아저씨에게 하마터면 낮에 아버지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을 뻔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저씨도 그래서 괜히 아들의 따귀를 때리셨나요?” “그건 또 네가 어떻게 아니?” 까치 아저씨는 창피했던지 인사도 없이 빠르게 날아가 버린다.

로버트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쩌면 모든 부모는 집에서 아이들에게 공정하지 않은지도 몰라! 그런데 사람들도 그럴까? 상상이 안돼.’
우연히 같은 반 토끼이빨 리타를 만나게 된다. 리타는 꽃이 부러지고 내동댕이 쳐진 선인장 화분을 발견했다.
“누가 그랬지?“
”내가 그랬어.“
”왜?“
”우리 엄마 아빠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어.“
”아마 누구나 가끔은 공정하지 않은가 봐.“
리타는 홧김에 동생에게 꿀밤을 한 대 먹인 것이 생각나 “난 공정하지 않은 적 없어.”라고 말하면서 얼굴이 빨개진다.
“야, 이제 그만 하고 사람들 약이나 올리며 엘리베이터 타고 놀자.”
리타와 로버트는 마침 쥐 운행 중인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층마다 다 누르고 오르락 내리락거리며 사람들을 골탕먹인다.

뾰족귀 로버트는 왜 따귀를 맞았을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홀긴다’는 속담처럼 단순히 아빠생쥐가 죽을 뻔 했었던 일때문에 화가 가시지 않아서 그럴까?

명색이 어린이 동화이기는 하나 어른들도 읽고 여러 면으로 생각해 볼 단서를 주는 어른동화이기도 하다. 크게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처럼 능동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고, 작게는 가정에서 내 아이들에게 난 어떤 이유로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렸을까를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은 특이하게 컬러가 아닌 흑백 그림이 있는 동화이다. 컬러 사진의 유행이 한참 무르익은 후 복고풍으로 바랜듯한 흑백사진이 유행하더니 동화그림도 그런가 보다.
울긋불긋한 컬러에 익숙해 있던 눈에 흑백의 감각이 신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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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포 반사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10
김영주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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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포반사>를 읽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초등학교 시절의 아련한 추억에 잠시 잠겨 보았다.
학생 수는 많은데, 건물은 작아 오전/오후 나뉘어 수업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한 학년당 학급 수가 열 번대가 넘어갔던 시절이었다.
커다란 밀가루 쏘세지 부침은 최고의 도시락 반찬이었고 어린이 신문의 만화며 광고가 온통 진주햄으로 도배되었던 시절. 생라면 부스러뜨려서 먹는 것이 고급 간식에 속했었다.

요즘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왕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도 여전히 있었던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왕따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주로 공부를 못하면서 소심한 성격이거나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다. 또한 왕따는 어린이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직장에서 왕따를 하거나 왕따를 경험한 성인들이 36.7%라는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다.

김영주 작가가 쓴 동화집 <쥐포반사>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두 이야기 모두 왕따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첫 번째 이야기 <쥐포반사>는 글을 잘 못읽어 바보라고 놀림받는 선화의 이야기이다. 선화는 학급의 반장인 민구와 같은 책상에 앉았다. 난로를 피우면서 고구마나 오징어등을 가져와 구워먹는 이벤트에 선화도 참여하려고 모처럼 쥐포를 가져왔는데 민구는 “바보공주 선화가 가져온 쥐포를 먹을 사람이 누구냐”면서 아이들을 선동하고 다녀 아무도 선뜻 먹겠다 소리를 못하고 “쥐포반사”, “자동반사”, “영원히 반사”를 외친다. 아이들과 나눠먹을 기쁨에 부풀었던 선화는 그만 눈물이 맺히고 선생님께 “아이들이 제가 가져온 쥐포를 안 먹는대요”하고 선생님께 고하고 만다. 빛나리 담임선생님은 사태를 이미 파악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쥐포를 구워 선화와 나눠 먹는다. 쥐포를 쭉 찢어 한입에 넣고 “너희들 정말 안 먹을 꺼야”하니 군침이 돌면서도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한 아이가 “저 주세요”하는 소리에 너도 나도 나가서 쥐포를 받느라 교실이 운동장이 되었다. 결국 혼자 남아 머쓱해진 민구에게 선화는 “이거 먹어”하고 나누어 주고 민구는 “쥐포 안반사, 미안 미안”하고는 쥐포를 받는다. 선화는 친구들과 쥐포를 구워 나누어 먹는다는 기쁨에 “좋아 좋아” 가슴을 두드리는 것으로 따스하게 이야기를 맺는다.

두 번째 이야기 <무말랭이>도 역시 혜순이란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다. 지능이 조금 모자라고, 머리를 제때 감지 않아 지저분하게 하고 다니는 혜순은 항상 혼자다. 같은 책상에 앉은 진호는 책상에 금을 긋고는 혜순이가 조금이라도 넘어올세라 눈을 부릅뜨고, 혜순의 뒷자리에 앉은 병재는 진호와 같이 어울려 바보라고 괴롭힌다. 의례적으로 진호와 병재가 혜순을 놀리면 주변의 아이들도 덩달아 같이 놀리고, 혜순은 그만 책상에 엎드려 울게 된다. 혜순은 “내가 왜 바보야”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아이들이 왜 자기를 바보라고 하는지 이유를 모른체 화장실 다녀 오는 복도에서 비오는 창밖을 ‘참 슬픈 것’을 느끼며 한참을 내다본다. 아침자습 시간에 외우라고 과제를 내준 동시를 혜순도 열심히 외웠다. 동시를 못외운 사람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진호와 병재등 여러 아이들이 앞으로 나간다. 당연히 혜순도 못외웠을 거라고 생각한 아이들 앞에서 혜순은 보란 듯이 멋지게 “한솥밥”이란 동시를 외웠던 날 점심급식의 반찬이 무말랭이었다. 혜순도 싫어하는 무말랭이를 입에 넣었다가 뱉으러 나간 사이에 진호와 아이들이 자기 몫의 무말랭이를 모두 혜순의 식판에 옮겨 놓았다. 산더미 같이 쌓인 무말랭이를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급식을 남겨 청소를 하게 된다. 엎드려서 울고 있는 혜순에게 “그만 울고 밥 먹으라”며 점심을 다 먹고 운동장으로 나가는 성직에게 혜순은 관심을 보여줘서 너무나 고맙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생각 못하는 혜순이는 성직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큰 소리로 표현을 하게 된다. “나는 성직이가 좋다. 정말로 좋다” 다시 한번 혜순이는 아이들의 장난의 표적이되고, 검은 얼굴의 큰 키, 떡 벌어진 어깨를 지닌 성직이는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른다. 혜순이가 성직이에게 쓴 편지에 아이들이 장난으로 쓴 답장을 보며 낙심한 혜순이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어울리는 장기자랑 시간에 혜순이는 혼자서 눈물을 글썽이며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난 바보다.
친구들도 바보라고 부른다.
밥도 혼자 먹는다.
난 늘 혼자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정말 좋겠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물론 괴롭지만,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도 한편으론 괴롭다. 왕따에 동참하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나도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몇몇 아이의 선동에 참여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될까?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상처받는 아이를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지, 두려움 반. 장난 반으로 왕따를 시키는 어린 악동들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왕따 설문조사에서 “직장내에 왕따가 있는가”란 설문에 64.2%가 “그렇다”고 나왔다는 응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둥바둥 나만 잘살겠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하면서도 한편으론 ‘남에게 뒤쳐지지는 말아야지’하는 마음에 초조해지는 에미는 오늘도 머릿속이 사나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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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라 여행
앙리 갈르롱 그림, J.M.G. 르 클레지오 글,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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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어린이 동화라고 집어들은 게 잘못(?)이었다. 셍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처럼 어른이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었다.

지은이 J.M.G.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문학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우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는 거장이다. 클레지오의 작품세계에서 변함없이 나타나는 주제 중의 하나인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소년과 나무의 이야기로 풀어 나간다.

오래 전부터 소년은 숲 속을 거닐 때마다 나무들이 마치 말을 걸고 싶어 몸을 뒤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하루는 이쪽으로, 또 하루는 저쪽으로 걷다 보면, 나무들이 꼭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쳐다보면 나무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가지를 벌린 채 수많은 잎사귀를 바람에 팔랑대며 서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들이 한자리에 머문다고 믿게 할 속셈을 지닌 나무들의 속임수이다. 하지만 소년은 나무들은 꼼짝 않고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무들은 수줍음을 많이 탄다. 그래서 사람이 다가오면 뿌리에 바짝 힘을 주고 죽은 체하는 것이다.

나무들은 휘파람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새와 매미를 겁내지 않는다.
소년은 나무를 길들이기 위해 조심조심 숲속을 걷다가, 빈터 한가운데 앉아서 부드럽게 휘파람을 분다. 한동안 휘파람을 불면 나무들은 조금씩 몸에서 힘을 뺀다. 커다란 가지가 우산처럼 조금 더 벌어지고, 느슨해진 뿌리가 천천히 땅 밖으로 나온다. 뿌리와 가지의 힘이 풀리면 숲 곳곳에서 이상한 커다란 하품소리가 들려 온다.
나무를 길들일 줄 모르는 사람에게 숲은 고요하다. 하지만 새처럼 휘파람을 제법 불 줄 알면, 곧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심장이 뛰는 듯한 묵직한 소리, 한꺼번에 바스락거리며 가지를 뻗고 잎을 살랑거리고 줄기의 주름을 펴는 온갖 소리, 그리고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들이 나무들의 말로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새들의 지저귐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새소리와 닮긴 했어도 새소리가 아니다. 나무들이 휘파람을 부는 것이다. 소년은 나무들의 휘파람 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다. 나무들이 하나 둘 말을 하기 시작해서 다 함께 이야기를 할라치면, 떠들썩한 휘파람 소리와 하품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무들의 나라에서 나무를 길들이면, 나무가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무들은 곳곳에, 잎사귀 하나하나에 눈이 있다.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나무들이 수줍어 눈을 감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소년은 되도록 부드럽게 나무들처럼 한두 개의 음을 부드럽게 불었다. 그러면 흔들리는 작은 잎사귀마다 하나씩 하나씩 달팽이의 눈처럼 천천히 눈이 열린다.
까만 눈, 노란 눈, 분홍 눈, 짙은 파란 눈, 연보랏빛 눈, 온갖 빛깔의 눈들이 빈 터 한가운데 앉아 있는 소년을 바라본다. 나무들의 눈길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럽다.

나무들은 제각각이다. 이름이 ‘위뒤뒤뒷’인 참나무는 점잖다. ‘퓌우우윗티윗’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작나무는 놀 궁리만 하는 나무다. 존경받는 단풍나무의 이름은 ‘훗’이다. 숲의 왕인 늙은 참나무의 이름은 ‘폐하’라는 뜻의 ‘우투유’이다. 나무들은 소년을 ‘작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윗’이라 부른다.

나무들은 언제나 이야기를 나눈다. 비소식과 날씨, 폭풍우, 숲 반대쪽에서 날아온 소식들을 주고받는다. 자작나무와 사시나무는 귀가 아플만큼 쉴 새 없이 재잘재잘 이야기하는가 하면, 수많은 잎을 흔들기도 한다. 소나무와 주목과 수양버들은 침울하다. 개암나무와 호두나무, 밤나무는 모질고 사납다. 이따금 성을 내며 요란스레 딱딱거리기도 한다. 참나무와 단풍나무는 가장 말수가 적다. 은백양나무는 못말리는 수다쟁이들이다.

전나무들은 숲의 파수꾼이다. 누가 다가오면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바늘같은 잎을 바지런히 떨며 쏴아아 소리를 낸다. 그러면 나무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차려 자세를 한다. 눈을 감고 가지를 움츠리고 죽은 체하는 것이다.

“이윗, 오늘 밤에 춤추러 올래?” “그럴게.”
나무들의 초대를 받은 소년은 검푸른 하늘에 보름달이 환하게 빛날 때쯤 빈터에 다다른다. 나무들을 친구로 둔 소년은 무서울 게 없다. 어린나무들은 노래하고 늙은 참나무들과 존경받는 참나무는 망을 본다. 어린 나무들이 빈터에 둥그렇게 모여 노래하며 춤을 춘다. 마치 사람들처럼, 하지만 몸놀림은 느릿느릿, 흔들흔들, 뿌리 끝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소리친다. “티위투 티위 티위투!” 제자리에서 천천히 돌아 옆에 선 나무의 가지에 가지를 부딪치고, 반대 방향으로 빙그르르 돈다. 키가 비슷한 어린 삼나무와 짝이 된 소년은 한 바퀴 돌 때마다 팔을 뻗어 삼나무 가지에 부딪치며 웃음을 떠뜨렸다. “투웃 툿 툿 툿 투우웃.”
이윽고 달이 숲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자, 나무들의 춤사위도 멎는다. 참나무들이 온 숲에 들리도록 우렁찬 휘파람 소리를 낸다. “자, 이제 잘 시간이다!”

나무들은 하나 둘 잎사귀의 눈을 감고 잠이 든다. 소년도 잠이 쏟아진다. 소년은 빈 터 한가운데 융단처럼 깔린 이끼 위에 누워 눈을 감는다. 함께 춤추던 나무들이 내뿜은 온기로 잠자리는 훈훈하고 포근하다.
늙은 참나무가 곁에서 밤새 지켜주고, 소년은 아침 이슬이 내릴 때까지 달디단 잠을 잔다.

앙리 갈르롱의 신비롭고 독창적인 그림과 함께 이야기에 빠져 들다 보면 어느새 어른들의 무딘 마음도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과 같아져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집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몇 번이고 손길 가는 대로 읽어볼 참이다. 그러다 보면 대충 한 번 읽어내고만 우리 딸래미도 어느 날 문득 엄마처럼 읽고 느낄테니까. 엄마와 딸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 그만큼 더 우리 모녀의 영혼도 가까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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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버들 2005-07-1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 드려요. 제가 아는 분 맞죠?
여기 RG 전용무대 같아요.

spring 2005-07-1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양버들님 덕분에 이/깁/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RG화이팅!!!

아영엄마 2005-07-1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여기가 님의 서재였군요~ 수양버들님이 리더스에서 다신 댓글 보고 이번에 어떤 분이?? 했어요. 저도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spring 2005-07-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RG님들 정말 반가워요!
 
나무 나라 여행
앙리 갈르롱 그림, J.M.G. 르 클레지오 글,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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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어린이 동화라고 집어들은 게 잘못(?)이었다. 셍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처럼 어른이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었다.

지은이 J.M.G.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문학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우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는 거장이다. 클레지오의 작품세계에서 변함없이 나타나는 주제 중의 하나인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소년과 나무의 이야기로 풀어 나간다.

오래 전부터 소년은 숲 속을 거닐 때마다 나무들이 마치 말을 걸고 싶어 몸을 뒤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하루는 이쪽으로, 또 하루는 저쪽으로 걷다 보면, 나무들이 꼭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쳐다보면 나무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가지를 벌린 채 수많은 잎사귀를 바람에 팔랑대며 서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들이 한자리에 머문다고 믿게 할 속셈을 지닌 나무들의 속임수이다. 하지만 소년은 나무들은 꼼짝 않고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무들은 수줍음을 많이 탄다. 그래서 사람이 다가오면 뿌리에 바짝 힘을 주고 죽은 체하는 것이다.

나무들은 휘파람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새와 매미를 겁내지 않는다.
소년은 나무를 길들이기 위해 조심조심 숲속을 걷다가, 빈터 한가운데 앉아서 부드럽게 휘파람을 분다. 한동안 휘파람을 불면 나무들은 조금씩 몸에서 힘을 뺀다. 커다란 가지가 우산처럼 조금 더 벌어지고, 느슨해진 뿌리가 천천히 땅 밖으로 나온다. 뿌리와 가지의 힘이 풀리면 숲 곳곳에서 이상한 커다란 하품소리가 들려 온다.
나무를 길들일 줄 모르는 사람에게 숲은 고요하다. 하지만 새처럼 휘파람을 제법 불 줄 알면, 곧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심장이 뛰는 듯한 묵직한 소리, 한꺼번에 바스락거리며 가지를 뻗고 잎을 살랑거리고 줄기의 주름을 펴는 온갖 소리, 그리고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들이 나무들의 말로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새들의 지저귐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새소리와 닮긴 했어도 새소리가 아니다. 나무들이 휘파람을 부는 것이다. 소년은 나무들의 휘파람 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다. 나무들이 하나 둘 말을 하기 시작해서 다 함께 이야기를 할라치면, 떠들썩한 휘파람 소리와 하품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무들의 나라에서 나무를 길들이면, 나무가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무들은 곳곳에, 잎사귀 하나하나에 눈이 있다.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나무들이 수줍어 눈을 감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소년은 되도록 부드럽게 나무들처럼 한두 개의 음을 부드럽게 불었다. 그러면 흔들리는 작은 잎사귀마다 하나씩 하나씩 달팽이의 눈처럼 천천히 눈이 열린다.
까만 눈, 노란 눈, 분홍 눈, 짙은 파란 눈, 연보랏빛 눈, 온갖 빛깔의 눈들이 빈 터 한가운데 앉아 있는 소년을 바라본다. 나무들의 눈길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럽다.

나무들은 제각각이다. 이름이 ‘위뒤뒤뒷’인 참나무는 점잖다. ‘퓌우우윗티윗’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작나무는 놀 궁리만 하는 나무다. 존경받는 단풍나무의 이름은 ‘훗’이다. 숲의 왕인 늙은 참나무의 이름은 ‘폐하’라는 뜻의 ‘우투유’이다. 나무들은 소년을 ‘작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윗’이라 부른다.

나무들은 언제나 이야기를 나눈다. 비소식과 날씨, 폭풍우, 숲 반대쪽에서 날아온 소식들을 주고받는다. 자작나무와 사시나무는 귀가 아플만큼 쉴 새 없이 재잘재잘 이야기하는가 하면, 수많은 잎을 흔들기도 한다. 소나무와 주목과 수양버들은 침울하다. 개암나무와 호두나무, 밤나무는 모질고 사납다. 이따금 성을 내며 요란스레 딱딱거리기도 한다. 참나무와 단풍나무는 가장 말수가 적다. 은백양나무는 못말리는 수다쟁이들이다.

전나무들은 숲의 파수꾼이다. 누가 다가오면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바늘같은 잎을 바지런히 떨며 쏴아아 소리를 낸다. 그러면 나무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차려 자세를 한다. 눈을 감고 가지를 움츠리고 죽은 체하는 것이다.

“이윗, 오늘 밤에 춤추러 올래?” “그럴게.”
나무들의 초대를 받은 소년은 검푸른 하늘에 보름달이 환하게 빛날 때쯤 빈터에 다다른다. 나무들을 친구로 둔 소년은 무서울 게 없다. 어린나무들은 노래하고 늙은 참나무들과 존경받는 참나무는 망을 본다. 어린 나무들이 빈터에 둥그렇게 모여 노래하며 춤을 춘다. 마치 사람들처럼, 하지만 몸놀림은 느릿느릿, 흔들흔들, 뿌리 끝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소리친다. “티위투 티위 티위투!” 제자리에서 천천히 돌아 옆에 선 나무의 가지에 가지를 부딪치고, 반대 방향으로 빙그르르 돈다. 키가 비슷한 어린 삼나무와 짝이 된 소년은 한 바퀴 돌 때마다 팔을 뻗어 삼나무 가지에 부딪치며 웃음을 떠뜨렸다. “투웃 툿 툿 툿 투우웃.”
이윽고 달이 숲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자, 나무들의 춤사위도 멎는다. 참나무들이 온 숲에 들리도록 우렁찬 휘파람 소리를 낸다. “자, 이제 잘 시간이다!”

나무들은 하나 둘 잎사귀의 눈을 감고 잠이 든다. 소년도 잠이 쏟아진다. 소년은 빈 터 한가운데 융단처럼 깔린 이끼 위에 누워 눈을 감는다. 함께 춤추던 나무들이 내뿜은 온기로 잠자리는 훈훈하고 포근하다.
늙은 참나무가 곁에서 밤새 지켜주고, 소년은 아침 이슬이 내릴 때까지 달디단 잠을 잔다.

앙리 갈르롱의 신비롭고 독창적인 그림과 함께 이야기에 빠져 들다 보면 어느새 어른들의 무딘 마음도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과 같아져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집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몇 번이고 손길 가는 대로 읽어볼 참이다. 그러다 보면 대충 한 번 읽어내고만 우리 딸래미도 어느 날 문득 엄마처럼 읽고 느낄테니까. 엄마와 딸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 그만큼 더 우리 모녀의 영혼도 가까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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