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사라진 알베르틴 ㅣ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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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는 더이상 사랑하지 않고 귀찮기만 한 알베르틴이 나보다 먼저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버렸을때 주인공이 겪게되는 마음의 고뇌, 대책, 분노, 그리고 마침내 치유되는 과정에 대한 심리묘사가 이책의 주요 내용이다.  심리묘사... 내 어휘력의 미천함으로 책을 이 4글자로밖에 요약할수밖에 없음에 미안함을 감출수 없다.  

믿을수 없음, 수소문을 해보아 자존심을 지키며 연인을 되돌아오게할 방책을 강구하고, 이것도 통하지 않게되자 자존심을 버리고 매달리게 되지만 결국 영영 이별을 하게 되버린후, 생활의 모든시 공간에서 되살아나는 사랑의 추억에 의한 고뇌 번뇌, 사랑하는 연인이 죄를 지었다는 관념에서 생긴 배신감, 그리고 그죄를 내가 알고 있다고 연인과 대면하여 폭로하고 싶은데 그럴수 없다는데에서오는 좌절감, 그리고 결국 완전한 망각이라는 과정에의해 이별에 의해 상처받은 자아를 새로운자아가 대체하면서 치유되어 알베르틴에 대한 추억이 전혀 괴롭지 않게 되는 무관심의 상태. 즉 결국에 이별한 여인에 대한 거의 모든 추억이, 이미 가슴에 불안한 압박을 주지않고, 감미로운것만을 주는 제 2의 화학적상태에 이르러 있게되어 , 그녀에 대한 기억이 더이상 슬픔을 동반하지않게 되고, 단지 사랑의 분해로만 인식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묘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별에 의한 마음의 고뇌는 시간이 해결하게 되고, 그당시 유일한 사랑이라고 믿었던것도 단지 한순간 그얼굴에 비치는 서광을 사랑하고 있을 뿐, 영원성이나 필연성은 없다는 것이다. 

스완이나 주인공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해 이미 애정도 사라졌고 흥미를 잃은 권태로운 시점에서 이별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스완은 오데뜨와 결혼하여 번뇌하고 사랑의 환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채 생을 마감하는 약간 지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주인공은 비자발적인 이별에 의해 고뇌하다가 시간에의해 치유되면서 그사랑이 별것아니었음을 깨닫게되는 보다 높은정신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하지만 스완이 사랑했던 오데뜨, 주인공이 사랑했던 알베르틴은 결코 지적인 여성캐릭터들은 아니었다.그렇다면 여성의 캐릭터가 주인공이 찬미하는 베르고트나 엘스테르같은 매우 높은 정신적 깊이에 이른인물이라면 이성간의 사랑도 영원하고 유일한 가치있는 것이 될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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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서의 도피 ㅣ 범우사상신서 1
에리히 프롬 지음 / 범우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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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은 즉시 잔상이 비교적 명확할때  리뷰를 쓰는편인데 이책은 도무지 그럴수가 없었다. 끝까지 읽었으니 책이 특별히 무지막지하게 어려웠던것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막상 글로 쓰려하면 한꺼번에 수많은 개념과 주제들이 밀려와 모든것이 엉켜버려 어떤것을 선별해서 리뷰를 써야할지 종잡을수 없어 몇번을 임시저장하고 지우기와 포기를 반복하였다.

프롬에 의하면 '자유' 라는 개념은 개인이라는 개념에 따라온것인데 중세유럽에는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며 사람은 그들의 사회적역할로만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세말기에 사회붕괴로 개인은 안정성과 소속감에서 풀려나 홀로 떨어져 경제적,정신적으로 고립되고 자유롭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는 상류계급에게는 실질적인 부와권력을 부여하였으며, 잃어버릴것은 별로없고 획득할것이 많았던 하층빈민계급에게는 희망을 주었으나, 새로운 자유로부터 많은 권력과 안정을 획득할수 없었던 중산계급은 상대적으로 고독과 무의성 그리고 증오감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는 그러한 중산계급의 평균적 구성원이 느꼈던 무의미성과 증오감을 인간 그자체의 성질에서 유래한것으로 정당화시킨후 극도의 자기천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회의와 불안을 극복할수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중산계급의 성격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성격이 이번에는 도리어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더욱 추진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한 근대의 자본주의 사회의 고도한 발달은 종교개혁기에 일어났던 일과 동일한 방향으로 인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근대화 산업제도는 인간을 보다 더 독립적 자율적 , 비판적으로 만들었고 그와 동시에 보다더 고립되고 격리되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인간은 외부적인 속박의 낡은적으로 부터는 해방되었으나 내부적인 적이 대두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것이다. 예를 들면 언론의 자유를 말하지만 근대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것의 대부분이 누구나가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것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은 이런 자유의 반대급부인 고독과 회의에서 구원되기 위해 더크고 강력한 전체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권위에 의지하여 개인의 자아라는 무거운 짐을 제거하고 안정감을 얻으려는 도피의 심리과정이 생기게 되며 이런 방향에서 나치즘의 심리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우리도 익명에의 권위에 자아를 상실하였으며, 그결과 자신들의 참된소망을 알고 있다고 모두 생각하지만 사실은 참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며, 그것은 어떤사람이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곤란한 문제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본래 자유인으로 태어났다'고 정의하였다. 지금 까지 내가 생각했던 자유의 개념도 여기서 벋어나지 않았고 그것을 어떤 진리처럼 믿어왔던것도 사실이다. 프롬은 물론 내적자유를 획득하라고 애기하고 있고 나또한 그러한 부분에 동의하지만 자유의 태생과 숨겨진 비밀을  엿들은 나는, 인간에게 자유가 절대선, 최고가치, 변치않는 진실이라는 예전의 믿음에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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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의 초대
피터 L.버거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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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번째 읽은 사회학입문서 이다.  이책또한 사회학이 무엇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라고 볼수있다.책의 목차에서 확인할수 있듯이 뒤로갈수록 사회학의 대상범위가 폐쇄되고 고정된 개념에서 벗어나 점점 넓어지고 주변으로 침투 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번 엘리야스 책과 비교를 해본다면,  엘리야스가 쓴책은 1970초판이 나왔고 78년 3판을 번역한것이었다. 버거가 쓴 이 책은 63년 초판으로 66년판을 번역한것이므로, 버거의 가장넓은 개념인 인간주의적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에서 더욱더 넓어진 개념으로 엘리야스가 발전사회학을 말한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신학이나 경제학의 주제에 관한 인간의 사고가 항상있어 왔던 반면 전에는 없던  사회학이 나타나고 필요하게 된것은 무엇인가? 수면아래 숨겨진 '사회'라는 틀은 공식적이고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규범적 구조의 붕괴가 있을때 가장뚜렸하게 보이게 되는것이므로, 평상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어의 장막을 궤뚫고 들어가 정체를 폭로하거나,고상한 특정세계관만을 받아들여햐 한다는 점잖은 전제를 거부하고,사람들이 생각하는 절대적인 옮음에 대한 주장을 상대화시켜 보거나,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및 행동방식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가짐으로써, 오늘날의 사태 진전을 똑바로 볼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눈을 가진 사람이 사회학자이므로  현대의 삶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학문으로 나타났다고 하는것 같다.

이런 각성상태의 사람들이 통제체제에 대해 거부방법이 여러가지로 나타날수 있다. 개인적 일탈이나 혁명, 또는 사회를 변형시키거나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부로 움츠러들어가기, 그리고 또한가지의 방법인 사회를 철저하게 이해하면서도 사회적 구조를 교묘히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에 따라 사회에 길을내는 사회적 마키아벨리주의즘인데, 이 사회적 마키아벨리주의는 다른사람에게 당연시되는 운명,본질적인것을 작전이나 편리한 위장쯤으로 취급해버리는 버림으로써  자신은 엑스터시 상태에 있게 된다.  개인이 다양한 엑스터시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사회적 통제로부터 개인은  사회학적 우울증을 해소하고 약간의 자유를 가질수 있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사회가'잘못된 믿음' 이나 '세인'의 장치를 제공하여 개인은 자유로부터 도피하거나 진실하지 못한 실존을 믿게 된다. 그러므로 저자는 사회학자와 우리에게 사회의 당연시 되는 상례로 부터 걸어나와 인간조건과 대결함으로써, 과학적인과율의 고리로서가 아닌 진정한 사회속의 자유를 얻을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꼭두각시와는 달리 우리는 행동중에 멈추어 서서 고개를 들어 우리를 움직인 장치를 지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행위에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 놓여 있다. 그리고 바로 이행위에서 우리는 인간주의적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의 결정적인 정당화를 발견한다.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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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이란 무엇인가 ㅣ 나남신서 372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 나남출판 / 198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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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직 엘리야스에 대한 관심만으로 이미 절판된 이책을 중고책방을 뒤진후 간신히 구할수 있었다. 번역자에 대한 정보도 없고 책의 목차조차도 알수 없는 상태에서 책을 기다리는 심정은 기대반 근심반이다. 87년 출판된 것이니 책의 상태는 포기한 상황이었는데, 군립도서관이란 명찰을 달고 다가온 이책은 세월에 따른 변색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않은 순결한 모습이었다. 도서관 귀퉁이에 콱 박혀있다가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중고서점으로 건너간뒤 나에게로 날아온듯 싶다 이럴때 나는 이책은 제본이 끝났을 그순간부터 몇년뒤에 나의 소유가 될 운명으로 정해졌던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환상에 빠진다.  

책은 사회학이 무엇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는 입문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되어온 사회학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자연과학쪽을 전공한 나는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사회학이 무엇인지도 모른뿐더러 사회학이란 단어도 생소한데 그것과는 다른 방향이라니... 책을 읽어나가 면서도 도대체 내가 사회학의 어느지점에서 이렇게 해메고 있는것인지 몰라서 더욱더 답답했다.   

저자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폐쇄된 개인외부에 단독으로 존재하는사회가아닌 상호의존하는 인간집단으로 파악하는 결합체개념,그리고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강제력이 아닌 인간상호간에 형성된 강제력으로 파악하는 개념, 결합하는 과정의 중심에 내재하는 변화무쌍한 긴장,즉 유동적인 세력배분과 그에따른 권력투쟁의 개념으로 사회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는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학은 다른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에 비해 학문적 자율성이 있으므로 자연과학에 사용해왔던 사고수단이나 언어수단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새로운 수단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사회학적 지식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서양인문학이 학문적 작업의 과학성을 인정받기위해 과학의 형식과 방법,언어를 가져다 썼다는것, 인간을 폐쇄적인간으로 보았다는것, 모든 변동에대해 설명하는데 무엇인가 불변적이고 본질적인 원리에서 찾으려했다는것 ,그러나 점점 이러한 방식의 문제점과 한계를 인식하고 변동의 내재적인 질서의 추구로 방향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책을 통해 신영복의 '강의' 초반에 나왔던- 유럽근대사의 구성원리가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사회 구성원리는 관계론이다- 는 문장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할수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관심을 가져야할 곳이 역시나 동양고전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책장을 들여다 보아도 책에대한 나의 이해력이 의심스럽지만 이 글이라도 써놓지 않으면 그나마의 기억조차 훨훨 날아갈까 두려워 하는 마음과 나의 의식의 성장과 흐름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결합되어 머리를 쥐어짜가며 리뷰를 썼다. 책을 읽어가는데 번역이  거슬리지는 않았는데 내가 저자의 다른저작물로 배경지식이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던것인지 번역이 잘되어서 그런건지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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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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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훑어보다가 난데없이 이책을 집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갑작스레 도스토예프스키라는 내입맛에 딱맛는 소설이 생각나기도하고,  한번 읽었는데 별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찜찜함도 있었으리라. 책장을 넘겨 보니 06년 12월에 읽었던 흔적이 있다. 당시 나의 지적수준은 카라마조프, 죄와벌, 백야 만을 읽은정도로 지금 이책의 내용을 기억하는게 없는걸보니 아마도 그때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듯싶다. 

'모든 아름답고 고귀한것'을 분명히 의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추악한짓을 하는것 , 자기자신의 굴욕감속에서 조차 쾌감을 발견하는 인간, 정해진 길을 고지식하게 걸어가기가 싫어서 오기로라도 그와는 다른 고통스런 모험의 길로 들어서는 인간,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 보다는  설사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대되더라도 하고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야 마는 인간, 자기가 한낫 핀이 아니라 어엿한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서 배은망덕을 저지르고야 마는 인간 

인간이 오직 정상적이며 긍정적인것만,무사안일만이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것,이성과 수학의 추론에의해 보증된 것만이 인간에게 참된이익이므로 온인류가 마땅히 준수해야할 법칙이라는것, 을 어떻게 확신할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확신할수 있다는 말인가?..... 

악령의 스따브로긴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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