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험이 끝났다. 귀국 후 두 번째 시험이었다. 첫 시험인 중간고사엔, 시험 발표 2주전부터 죽을똥 살똥 아이를 붙잡고, 밥 먹는 시간 빼고 시험공부에 올인했다. 물론 평소에도 주말마다 지난 일 주일간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중간점검은 했었다. 결과는 개판이었다. 충격이었다. 마치 내 시험 결과를 마주한 허탈함이었고 분노였다. 학년 평균에 가까운 성적. 결과를 듣는 순간 기운이 싹 빠져 나갔다. 귀국한 아이들이 사회과목같은 경우40점 정도 받는 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미국에선 시험 공부란 걸 한 적이 없었으나 아이는 학교 톱이었다. 아이는 그저 책읽기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책읽기에 한참 흥미를 느껴 역대 AR포인트 최고점을 얻어 학교에 일 년간 아이의 사진이 걸려있는 영애도 얻었다. 역대 최고점에 200점이나 넘는 경이로운 포인트였기에 아이는 물론이고 나도 덩달아 동양인으로서 큰 자긍심을 느꼈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학교 공부와 과외 활동으로 자신이 운영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란 없었다. 아이의 과외 활동이라야 태권도 한 시간. 본인의 거부로 중도 하차하여 8주동안만 다닌 영어학원 정도인데.
한국은 아이 본인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다. 뭘 하고 싶은지 생각조차 않는 것 같았다. 우선, 해 가야 할 일이 산더미였으니까. 그리고 준비물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난 매일 문구점에 다녀와야 했다.
중간 고사 성적 발표후 전략을 바꿔,매일 학습 내용- 매일 복습 체제로 운영했다. 그래서 더욱 개인 시간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태권도 학원 다녀오고 학교 공부 복습하면 바로 취침 시간이다. 한국 어휘가 생소한 아이에겐 학교 수업 내용 반도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 복습이란 것이 아이에겐 새로 학습하는 것과 다름 없었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은 '크기'가 뭐야? 라고 묻는 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또, 내 대신, 전화 걸려온 핸드폰을 가져다 주길래 누구야?하고 물었더니 "발신자야"....할말없이 웃음만 나왔다.
어제 아이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결과는 아직. 아이의 어휘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한 지금, 결과에 별다른 기대는 없다. 아이에대한 실망도 없을 것이다. 다행이다. 앞으로의 시간을 아이 본인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는 범위의 결과 정도... 이번 방학엔 아이가 원하는 형태로 시간을 쓰고,눈 구경 못하고 지나간 세 번의 겨울을 멋지게 만회할 수 있는 하얀 겨울이 되었으면 바래본다.